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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Feb 09. 2023

찬란한 슬픔도 있어

문학이 필요한 시간

모임 날짜가 가까워오니 한 명 두 명 참석하지

못한다는 연락이 온다.

과반이상이 참석하지 않으면 모임이 취소되고

다음 달로 연기되는데

이번 모임에는 내가 처음 참석하는 자리라

다음 달로 넘기지 않고 다음 주로 미루었다.

거의 2년 만에 갖는 책모임이라 나름 기대하고

기다렸는지 내심 아쉬웠다.


동네 작은 공동체에서 이루어진 책모임에서는

월별로 책 한 권을 선정해 각자 읽고 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에는 내가 추천한 책이 선정되었고

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지난해 책 출간 후 바로 읽어보았는데

책모임에서 결정된 후

다시 또 읽었을 때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시리고 아프고 가슴 밑바닥에 묻히는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목적으로 읽을 때는

더 곱씹게 되어 그렇지 싶다.

암 진단 후 책 읽기를 완전히 중단하고 2년이 흐른 지금

처음 읽은 책은 제목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손바닥의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책 읽기도 훈련인지 이제는 제법 내용도 머릿속에

들어오고 읽다 훌쩍이기도 한다.


누군가가 이 책을 읽은 후 남는 건

읽고 싶은 책 리스트라더니

어느새 나도 다이어리에 책 속에서 언급한 책들을

적어 두었다.

단순히 책의 줄거리를 늘어놓고 감상평을 적어둔 것이

아니라 이미 읽은 책들과 아직 읽지 않은 책들,

그 속에서 건져 올릴 다양한 선물들을 하나라도 놓치는

일이 없도록 미리 귀띔해 주는 글들이었다.



절벽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아무 말 없이 꼭 붙들어 주는 것.
그곳이 절벽인지 모른 채 앞만 보고
마구 달려가는 사람들을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것.
문학은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는 우리를 붙잡아 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p75


읽어 보았으나 제대로 읽어 보지 못했던 책들.

특히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책들은 당장 다시 읽고

싶어 책을 주문했다.

어린 나이에 읽었던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었을 때

전혀 다른 내용인가 싶을 정도로

나에게 새로운 충격을 안겨준 내용들이 있었는데

 <어린 왕자>와 <연금술사>,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 있다.

아마도 그 나이에 맞게 번역되어진 혹은 내용이 각색된

책들을 읽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이미 유명한 책들은 꼭 원서 번역이 잘 된 책으로

다시 읽기를 추천한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만 같은

기쁨과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깊은 우울은 더 깊고 쓰라린 다른 우울의 힘으로 치유될 때가 있다.
그리하여 문학은 나보다 더 아프게 앓고 있는
타인의 슬픔 속으로 여행하는 일이다.
앉은자리에서 세상 모든 이의 슬픔 속을
여행하는 기적이,
문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p222



비록 문학 작품은 아니었지만 힘든 항암치료 중

보았던 영화와 드라마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을 얻고,

아픔을 이겨낼 웃음과 여유를 배우게 되었다.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암경험자들과

그들 곁에서 더 많이 아파하는 보호자들의 글들을

커뮤니티를 통해 읽으며,

이런 아픔 정도야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발로 땅을 밟으며 걷는 일들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으며

남편과 아이들의 존재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마음으로 읽고 깊은 슬픔까지 글로 피워낼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

다시 펼쳐보며 위로받을 수 있도록

내 찬란한 슬픔들을 담아

그렇게 오늘도 편지를 쓴다.




우리가 미처 위로하지 못한 슬픔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아무도 쓰다듬어 주지 못한 그 모든 상처는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다시 돌아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단지 피해자에 그치지 않고

'한사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 귀환해야 합니다.

저는 비로소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다시 돌아온

사람들의 눈부신 비상을 믿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오늘도 미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그럼에도 여전히 미치지 않은 척하면서

이 무시무시한 하루를 버티었겠지요.

내일도 답장을 보내지 않을 당신에게 내가 문학을 통해

수혈받은 모든 사랑과 희망의 언어들을 담뿍 담아 오늘도 변함없이 편지를 씁니다.

다행히 이제는 알아요. 당신이 온갖 핑계를 대며 답장을 해주지 않을 때조차 당신은 '나만이 쓸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불현듯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우리 이야기꾼들은 답장이 전혀 없는 그 모든

순간에도 한사코 침묵하는 독자들을 향하여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사랑의 편지를 씁니다.

작가란 어차피 답장을 받지 못할 줄 알면서도 끝없이

편지를 쓰는 사람들의 영원한 친구니까요. p291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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