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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Dec 26. 2022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선량하고 아름다운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더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망하지 않고 굴러간다.

세상을 밝히는 건, 위대한 영웅들이 높이 치켜든 불멸의 횃불이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의 점멸등처럼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고 난 믿는다.

좌절과 상처와 굴욕이 상존하는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광채를 발화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담고 싶었다.

p7


나는 그동안 눈 감고 귀 막고 있었구나. 저자가 122명을 인터뷰하고 신문에 연재할 동안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5년 전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냥저냥 살고 있었겠지...


이 책에 나오는 열두 명의 사람들을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을까? 그 비슷한 사람들이라도. 그러나 왠지 이 책의 열두 명과 함께 웃고 웃으며 긴 시간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저자가 마치 빙의된 것처럼 그들의 마음과 생각, 행동과 말을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줘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세월호 시체 인양 작업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고 김관홍 잠수사의 부인 김혜연 씨의 인터뷰 중, 딸이 뉴스에서 원룸 화재 사건 때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은 목숨을 잃은 대학생을 보며 “엄마는 저게 좋아?”라고 질문을 했다. 아빠도 의인이라고 그러던데, 그게 좋으냐고. 자신은 의인이 되기보다는 가족들이랑 함께 오래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다고. 그때 그녀는 아빠의 선택이었고 아빠가 한 일로 292명의 가족들이 위안을 얻었으니 좋은 일을 한 거라고 말했다 한다. 나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 냈을 것이다. 그러니 참 존경스럽다.


아는 사람이 나와서 반가웠다. 이국종.

왜 이렇게 멋있는지. 너무 멋있다. 계속 멋있다. 끝까지 멋있다.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라고 하면서 묵묵히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갈 것 같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의사로서의 원칙’은 뭐예요?

의사고 뭐고, 그냥 직업인으로서의 원칙이라면...... ‘진정성’이요. 진심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 인생을 돌이켜 볼 때 정말 진정성 있게 일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마음.

p55


잠시 나를 되돌아보니 때로는 타협하고 굴복하고 거짓으로 상대의 눈을 가리고 나를 포장하고... 머리를 흔들며 지금까지의 그런 나는 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경받는 사람들 훌륭하다 생각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노태강.

공무원의 특성은 맡은 일이나 신분의 공공성에 있다. 공무원은 숨 쉬는 것조차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 (...) 공무원이 공무원일 수 있는 것은 국민이 공무원을 공무원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의 충성 대상이 되는 것은 국민이다. p92


공무원은 청렴보다는 비리, 세금 축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저 뉴스나 인터넷에서 일부 내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듣던 나에게 세게 뒤통수 한 대 쳐주시는 이 분의 말들이 나를 정신 차리게 한다.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면서 계속 나 자신에 대해서 메모를 했어요.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최대한 집중해서 나를 해부하고 나 자신에게 해명하고 싶어요. 누구나 살면서 숱한 시행착오와 오류를 남기는데, 그런 자기 삶을 스스로 어떻게 해석하고 규정하느냐, 그게 남은 삶을 사는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p140


아직 나는 나를 ‘해부’까지는 못 하겠다. 그래도 독서를 하고 독서일기를 쓰고 나를 들여다보는 일, 힘겨웠던 지난 사건들을 되짚어 보는 일을 시작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해부’하고 자신에게 ‘해명’할 수 있겠지.


가장 가슴 아프고 눈물 흘리며 읽었던 레즈비언 딸을 둔 엄마의 인터뷰. 상상도 할 수 없고 상상하기도 싫지만 이 세상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들 아닌가. 정말 다시 한번 이런 분들을 찾아 인터뷰해준 작가에게 고마웠다.


끝으로, 여전히 고민하는 성소수자들에게 엄마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 (고개 숙이고 한참 생각하다가) 행복해야 해! 인내심 있게. (...)

“자녀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임을 믿기.”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는 세상의 증오와 편견에 부딪쳐 싸우고자 한다. p184


미술이라는 건, 자기를 들여다보고 관찰하면서 나 자신을 깎고 또 되새기는 작업의 총체적인 결과물이라 하는 ‘우아한 미친년’ 윤석남. 자신의 인생과 문학을 일치 시키는 작가가 되고 싶다던 민초들의 이야기꾼 황석영. 생각은 저항하고 거부하는 것이고 모든 진리에 대해 회의하는 것이라는 거리의 철학자 채현국.


이번 주 중학교 수업시간 아이들과 화관 만들기 수업을 하였다. 자신의 작품에 이름 붙이고 누구에게 선물할 것인지 적어보았다. 작성지를 받아보고 두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데 울컥하여 겨우 눈물을 참았다. 엄마를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만들고 이름 붙여주는 너희들의 마음이 있는 이 시간이 정말 반짝이는 순간이구나.


나머지 110명의 인터뷰도 찾아 봐야겠다.

진심이 열리는 열두 번의 만남을 통해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 또 깨달음을 얻고 나를 돌아본다.


#당신이반짝이던순간 #이진순 #문학동네 #독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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