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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임새 Feb 09. 2022

부엌 노동자의 하소연

요리를 비우고 자유를 얻고 싶다 




어느 날 점심을 차려 먹는 도중 “저녁은 뭐 먹을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갑자기 밥맛이 뚝 떨어지고 신경이 예민해진다. ‘뭐 먹을까?’라는 말은 메뉴 결정 고민, 요리 재료 준비, 음식을 만드는 작업의 피곤함, 뒷정리 설거지까지를 떠올리게 한다. 애써 식사를 준비한 사람에게, 그것도 릴랙스 시간인 식사 도중 쉽게 꺼내서는 안 되는 금지 어란 말이다. 매일 해야 하는 부엌일인데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짓눌리니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답답하다. 



먹는 즐거움을 위해 들이는 노동의 총합은 얼마일까. 내 계산법으로는 먹는 행위의 이익을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노동을 다 더한 값에 극히 일부분만 상쇄한다.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즐거움과 노동의 무게를 얼추 비슷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은 무엇일까. 

요리를 즐기는 사람은 요리를 만들며 창작의 기쁨을 맛보거나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요리가 제격이라 말하기도 한다. 다른 이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맛있다’는 반응에 수고한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요리를 ‘노동’으로 정의하는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명절 음식 준비를 앞두고 주부들이 갖는 부담감과 비슷한 종류를 나는 부엌에 설 때마다 느끼는 부류다.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하는 요리인데 채우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타입이다.



밥상 차리기 부담감을 줄여보고자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음식 재료 구입, 손질, 조리법을 익히면 수월해지리라는 기대감에 요리교실을 3년간 다녔다. 요리 선생님은 수강생들이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히라는 의도로 시연이 아닌 모든 프로세스를 우리가 직접 하도록 지도하셨다. 배우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요리수업 후 집에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3시간이나 하기 싫은 ‘노동’을 돈을 내면서까지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부엌을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로 채우면 흥이 날 거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앞치마를 사고 예쁜 그릇과 요리 도구를 모았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남편은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배달시켜 먹자’ 고 간단하다는 듯 말한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고 밥 해 먹는 수고를 줄여주는 서비스는 종종 이용하던 터였다. 매력 있는 제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매 끼니를 배달음식으로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몸이 원하지 않는 한정된 메뉴, 플라스틱 쓰레기 생산이라는 걸림돌도 나를 가로막았다.



먹는 것에 대한 고민, 수고스러운 부엌 노동에 지쳐갈 때 즈음 책 한 권을 추천받았다. 헬렌 니어링의 책이었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몸에 음식을 공급하는 일에 그리 공 들이고 시간과 힘을 그토록 많이 쏟아부을 필요가 있을까? 식사를 간단하고 쉽게 하면, 준비에 들이는 노고가 한결 줄어들 것이다.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최소화하고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자.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자연과 대화하고, 친구를 만나는 데 쓰자.



책을 읽으며 그래 이거다 싶었다. 조리법과 설거지도 단순한 음식을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영양가는 있되 준비의 편리함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불을 최대한 쓰지 않고 기름을 덜 쓰는 조리법. 유명 셰프의 레시피를 따라 하느라 이것저것 혼합하고 굽고 튀길 필요는 없다. 양념과 조미료를 덜 사용하고 최대한 자연 있는 그대로를 먹으면 될 일이었다. 먹는 음식 종류를 줄이면 필요한 부수 재료도 적어지고 메뉴 고민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꽉 차 있던 옷장을 비우고 최소한의 옷을 돌려 입는 미니멀리스트처럼 요리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면 되겠구나. 이 단순한 진리를 지금껏 몰랐다니… 지겹게도 헤매다가 이제야 돌파구를 찾은 것 같았다. 




이제 문제 해결의 유일한 장애물인 탐식을 뛰어넘는 일만 남았다. 

어쩌면 식사를 챙기는 일은 맛있는,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심을 채우려는 자발적인 노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적게 그리고 소박한 밥상을 추구했다면 식사 준비를 고된 노동으로 여기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생활에서 비우기 근육을 키우고 있는 <1일1정리> 카페에서 ‘K점 넘기’라는 테크닉을 배웠다. 더 이상 집안에서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 발상을 전환해 지금까지 버리겠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버리기의 한계점을 넘는다는 뜻이다. 먹는 일과 관련된 모든 일에서 ‘K점 넘기’를 시도해 볼 생각이다. 꼭 먹어야 직성이 풀렸던 음식 종류, 재료, 조리법, 그릇까지 비우기 임계점을 넘을 때마다 노동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리라 기대한다. 

당장 내일부터 아침은 나무 그릇에 과일식으로 간단하게, 설거지도 세제 없이 물에 한번 헹구고 말자. 점심은 삶은 감자와 당근, 파프리카를 얹은 샐러드로, 저녁은 쌈장과 밥을 넣은 상추쌈과 반찬은 무생채와 구운 두부만 준비해 봐야겠다. 특별한 레시피도 없는 단순한 밥상으로 K점을 넘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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