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 큰 나무의 미혜 Jun 28. 2024

02. 편안

바다의 방



편안 / 2024년 / 30.67X39.84 / Watercolor on paper



02. 편안 _ 바다의 방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별의 잔상일까요? 그녀가 물었다. 고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잔상을 주시했다. 하지만 너무 멀어서인지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직접 가서 보기 전까진 알 수 없을 거야. 이미 오랜 시간을 걸어서 발바닥이 아리고 발가락이 저렸지만, 별의 잔상을 향해서 걷고 또 걸었다.


별이 떨어진 자리에는 푸른빛의 문이 세워져 있었다. 이상했다. 사방은 벽도 없이 뿌연 안개로만 자욱한데 어떻게 문이 세워졌을지 궁금했다. 문 한쪽에 얼음처럼 박힌 투명한 문고리를 서서히 돌렸다. 열리는 문틈 사이로 짠 공기가 확 풍겼다. 문 안의 시린 빛에 감긴 눈꺼풀을 조심스레 뜨자 눈앞에 너른 바다가 펼쳐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안을 찬찬히 살펴봤다.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그녀가 문밖에서 안개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해무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온 바다를 뒤덮고 있었다. 발바닥을 부드럽게 마사지 해주는 듯한 모래사장은 눈이 부시도록 희고 고아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몽환적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굳은 다리를 쭉 폈다. 반복적으로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마치 우주에서 듣던 낮은 고요와 같았다. 바다는 그녀가 시작된 태초의 공간과 닮아서 단단히 얼었던 마음을 녹여주었다. 그동안 힘겹게 짊어지고 걸었던 낡은 마음을 모두 꺼내놓았다. 그리고 한참을 소리 없이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공간과 시간이 하나로 합쳐져 낮은 고요로만 가득 채워졌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편안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싶었다. 우주의 죽음이었을 적에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은 모습으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자신에게 기대어 흐르는 바람에 노래를 청했다. 흔들리는 파도의 춤에 맞춰 조용히 미소 지으며 허공에 떠오르는 안개에 눈을 맞췄다. 그렇게 그녀는 내면 깊숙이 들어갔다.





'편안' 작업노트>


우선 공책에 대략적인 생각을 옮기고 아이패드의 프로크리에이트로 선을 다듬었다. 그리고 종이에 다시 4B연필로 그리고 수채화로 채색했다.


오직 나를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쓰고 그리는 동안에는 내면 깊숙이 들어가 더 설레는 단어와 반짝이는 문장을 찾아 헤맨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그냥 하고 싶은 걸 한다. 적어도 내가 쓰고 그리는 종이 안에는 내가 있었으면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01. 설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