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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Jul 05. 2022

한국의 교육정책이 실패하는 이유

올해는 3학년 담임을 맡았다. 흔히 고3이라고 하면 입시를 위해 줄달음치는 학생들과 삭막한 교실 풍경을 떠올리지만,  요즘 고3교실의 풍경은 예전처럼 그렇게 삭막하지 않다. 교실 안에서는 적당히 농담이 오가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예전처럼 4당5락이니 해서 잠을 비현실적으로 줄이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죽자사자 공부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된 것은 일단 입시제도가 수시 위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고, 지금 일하는 학교가 그러한 제도의 혜택을 비교적 많이 받는 일반고인 까닭이 크다.  내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정기고사 기간에 학생들이 받는 압박은 약간 더 커졌지만, 12년의 공부를 수능일 단 하루에 평가받았던 그 가혹함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지금이 예전보다 낫지 않나 싶다.


외적으로 보면 한국의 교육 현장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나눠주며 최첨단의 교실을 지향하는 세종시교육청이나 야간자율학습 폐지, 혁신학교 등의 정책을 보급하는 경기도교육청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교사에 의한 부당한 폭력이나 금품 수수, 콩나물 교실, 군국주의적 잔재 등의 문제를 청산 혹은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한국 교육은 이전 시대의 부조리를 많은 영역에서 끊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갈 것처럼 보인다. 특히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초저가 교육 콘텐츠 보급이나(EBS), 자유학기제 정책 등을 보면 교사 입장에서도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많이 해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교육의 아킬레스건인, 사교육비는 계속 늘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의 사교육비 총액은 18.1조원이었는데, 이는 2015년의 17.8조원에 비해 1%이상 상승한 결과이다.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25만 6천원이었는데, 아마 이 통계를 말하면 자식 키우는 부모님들은 통계가 잘못되었다고 코웃음을 칠 것이다.  사실 사교육비가 줄지 않는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공교육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부실하다는 이야기인데,  분명 수십년 전에 비해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줄고, 교육 예산도 크게 늘어났으며, 여러 선진적인 교육정책과 미국에서 건너 온 핫한 입시제도도 도입되었다. 그야말로 옛날 어른들 말을 빌리자면 ‘공부를 하고자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사교육비는 날이 갈수록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인가?


일단 수시 위주의 대입 정책이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 대입에서 수시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학교 수업만 잘 받아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었는데, 학생들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진행되는 학교 수업을 100% 집중해서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어떤 학생이든 학습에 어느 정도 공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수능/정시 위주의 정책에서는 이 공백을 조금 내버려두었다가 고3 때에 한꺼번에 메워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정기고사 성적이 대입과 직결되는 수시제도 하에서는 이 공백이 생길 때마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에 이 공백을 메우는 차원에서 사교육이 다시 성행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교사가 진행하는 학교 수업만으로 학교 정기고사를 완벽하게 대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에(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고1 내신 문제에 가르치지도 않은 수능 기출문제를 낸다는 몇몇 학교들의 사례를 들어보면 기가 찬다.) 학원이나 과외 없이 학교 수업만으로 버티는 학생은 상당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용 문제가 사교육비를 계속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IMF 이후 한국에서 사교육의 역량은 급격히 성장하였는데, 정리해고와 실직 및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고급인력들이 대거 사교육계로 편입되면서 사교육계는 정부에서 어떤 입시제도를 내놓아도 그에 가장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다. 예전에 비해 많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교육 분야는 고학력 대졸자가 진출하기에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 이쪽은 학교 교사들처럼 불필요한 행정 업무나 공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철저하게 실적과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을 가르치는 기능만 두고 본다면 학교는 학원의 그 ‘악착같음’을 따라가기 어렵다.  게다가 이제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이전보다 사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한국의 교육은 그 뿌리가 입신양명立身揚名에서 시작되었으며, 아직 이를 극복하기에는 사회적인 합의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민중들의 울부짖음으로 가득한 땅이었다. 이 민중들은 식민지 시대의 경험을 통해 상급 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이 이 정글 속에서 얼마나 자신과 가족을 지켜줄 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알았고, 그 때문에 온갖 부조리를 겪으면서도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그 고생을 기꺼이 견뎌내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교육의 공공성이니 시민의 덕목이니 하는 것들은 배부른 것들의 사치에 불과했고, 교육은 철저히 이기적인 생존의 차원에서 다루어졌다. 한국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잔소리가 과연 공부하라는 뜻인가?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상급 학교에 진학해 월급 많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라는 뜻이다. 교육이 인간의 인간다움을 발현시키는 본래의 목적을 잃은 사회에서 입시제도나 정책의 변화와 같은 미봉책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저열한 인간들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다. 사교육을 악惡으로 적대시하고 억제하려는 수십 년간의 노력이 큰 효과가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미친 생존 경쟁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사교육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감히 누가 비판할 수 있는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는 하지만, 백년의 계책을 논하기에 대한민국은 아직도 너무 사회 시스템이 허약하다. 거제에서는 노동절 아침에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여섯 명이나 죽었고 정기고사를 망친 학생들은 모여서 한강 물의 온도나 검색해보며 졸업한 후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조적인 글을 쓰고 있다. 누군가는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지만, 그건 내 얘기가 아니다. 최저임금으로 아파트를 사려면 장수왕 때부터 일해야 한다는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비단 내 얘기만은 아니다.  그래서 아마 교육정책은 계속 실패할 것이며, 정부에서 아무리 교묘한 패를 들고 나와도 이 싸움은 한국 사회가 냉전적 대립과 입신양명의 전근대적 가치를 완전히 청산하기 전까지는 필연적으로  공교육의 패배로 끝날 것이다.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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