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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Nov 02. 2021

어머니의 열무김치

2019년 11월 18일

<우리는 여전히 ‘내 집‘을 꿈꾼다...... 지역 사회권은 우리 집과 지금의 삶을 다시 설계한다. 내 집 빗장을 풀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집... 새로운 생활방식의 제안이다. 야마모토 리켄 마음을 연결하는 집 중에서>


오늘은 24절기 중 19번째 절기인 입동이다.

설입(立), 겨울동(冬) 겨울이 자리를 잡는다. 이제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을 보름 앞두고 있다. 앞집 형님댁 지붕엔 흰서리가 형님의 나이만큼이나 두껍게 내렸다. 우리 집 고양이도 추운지 온실에서 잠을 자고 있다. 밥 달라고 할 때만 ˝야옹˝ 하는 녀석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밤새 돌아다니다 아침에 들어왔다. 날이 추워졌는지 깜선 생(고양이가 완전 검은색이어서 붙인 이름)이 요즘은 자기 집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늘의 별도 많아지고, 이웃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정말 겨울이 시작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 동네는 겨울 추위가 매섭다. 영하 25도까지 내려갈 때도 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내 목은 자라목이 된다. 봄이 되어서야 나에게 목이 있었구나를 실감할 정도로 어깨를 움츠리도록 하는 추위가 센 동네에 살고 있다. 매년 찾아오는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을 하고 살아온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어제는 경기도 광주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다녀왔다.

˝야 와서 열무김치 가져가라, 올 때 김장김치 담을 통도 가져오고˝

˝네 내일 다녀갈게요˝

이맘때가 되면 어머니는 열무김치와 생고구마, 말린 고구마, 무생채, 쌀을 가져가라고 하신다. 크지 않은 땅인데도 자식들에게 먹거리를 보내주시는 어머니의 부지런함에 놀라고 마음 쓰심에도 늘 고맙고 감사하고 그렇다. 열무김치를 싸주시는 햇수만큼 어머니의 얼굴에 놓인 주름도, 손마디도 할머니처럼 보이게 만든다.


나의 어머니 세월이 가고 있다. 


˝야 그래도 밭에서 농사짓고, 아저씨들하고 화투도 치고, 밥 해 먹으면, 그럼 시간이 잘 간다. 바쁜데 어서 가봐라 시간 늦겠다. 며느리한테 고춧가루는 얼마나 보내야 하는지 물어보고 전화 줘, 까먹지 말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1년에 몇 차례 어머니의 보급품을 받는 날, 만나는 선배다. ˝응 반가워, 어머니 보러 왔구나 그래 커피 한잔 하자˝ 선배는 가을맞이 정원 청소를 하고 있다고 한다. 페인트 칠도하고, 겨울맞이 풀도 정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선배와 커피 대신 주스 한잔을 마셨다. 


아들은 앞마당에서 텃밭을 꾸미고, 고추와 피망, 푸성귀 정도를 가꾸고 밭에서 난 허브차로 ‘인생은 이런 거야‘라며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면, 어머니의 농사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열무김치를 가져가라는 말씀에 계절이 아니라 먹거리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집 앞 텃밭을 비우고 보리씨를 파종한다고 해놓고는 시간만 보냈다. ‘입동 전에 보리씨에 흙먼지만 날려주소 ‘라는 속담도 있다는데, 농사가 주업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지 보리씨만 사다 놓고 파종 시기를 벌써 한 달이나 넘겼다. 이래선 싹이나 간신히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언니 시어머니가 열무김치를 보내셨는데 나누어 먹으려고 해요˝

아침에는 빵, 점심은 식당, 저녁은 가볍게 먹느라 늘 김치가 없다는 약사 선생님 부부는 우리 집과 이웃이다. 아내는 시어머니의 보급품이 내려오면 이웃들을 조금씩 챙기는 편이다. 어제도 열무김치를 나누고, 무생채를 덜어주었다. 어머니는 남들하고 조금이라도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넉넉하게 싸주신다. 김치랑 고구마를 차에 실을 때 ˝엄마 조금만 하시지 뭘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라고 이야기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이웃들과 나눌 때는, 어머니의 속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 달 여전 깻잎장아찌와 마늘 장아찌를 보내주셨을 때도 동네 이웃들과 나누며 생색을 낼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 작은 통 하나씩 가져오세요. 어머니가 반찬을 보내주셨는데 나누어 먹을 만큼 돼요. 알잖아요 우리 엄니 솜씨. 늦으면 없어요˝ 그날 저녁 민교네, 하린이네, 한결이네, 예현이네, 상엽이네 식구들이 반찬통을 들고 왔다.  


아내는 우리 아이가 분가를 하더라도 시어머니처럼 반찬과 김치를 싸서 보내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시간이 좀 지나 봐야 알 것 같지만 내 생각에도 아내는 김치를 싸서 보내지는 않고, 같이 만들자고 부를 것 같다.  

밭농사만 짓는 어머니가 어디서 얻으셨는지 보내주신 햅쌀도 양이 많아서 이웃 동네에 살고 있는 정원사네 집에 나누어 보내기로 했다. 아내는 두 세 집에 전화를 걸더니 정원사네 집에 쌀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보내자고 한다. 


˝요즘 쌀이 없는 집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까지 해˝라고 할지는 몰라도 나누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고 덕분에 없던 정이 조금 더 보태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쌀을 배급? 받는 정원사의 남편은 피아니스트다. 우리 딸이 그 집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내일 피아노 배우러 갈 때 쌀을 가져다주려고 한다.  


어머니의 열무김치 덕분에 겨울이 시작인 날, 나눌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날이다. 겨울엔 추우니까 이웃들과 나누며 따뜻하게 지내라고 어머니가 올해도 열무김치를 보내주셨다. 이번 겨울 어머니도 화투놀이에서 돈을 많이 따시라고 화투 칠 특별자금을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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