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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Jan 17. 2022

과발효된 빵에 야채볶음

2019년 11월 27일

우리 집 냉장고에 정확히는 냉동실에는 발효빵이 몇 덩어리 들어있었습니다. 주로 빵을 시작한 초기 작품들입니다. 작품이라고 하니, 제가 이야기하고도 좀 우습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제 손으로 빚고 구웠으니 도자기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빵 작품’이라고 하고 싶네요. 

초기의 빵들은 수분율이 높게 되어, 빵 모양도 나오지 않고, 오븐 안에서 부풀기도 안 나온 부족한 빵들입니다. 일반 빵들에 비해 볼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발효가 과()하게 되어 신맛이 강한 빵들입니다. 커피라면 산미가 과한 또는 풍성함을 즐기는 애호가들도 있겠지만, 과한 신맛의 이런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합니다. 과발효 빵은 효모들이 다 먹고 뱉어낸 것이라서 신맛은 나지만 건강에는 아주 좋은 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단 두 사람, 아내와 딸아이입니다. 

버릴 수도 없고, 남 주기에는 더욱 어려운 빵을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건축물도 기능이 노후되고 지금 살고 있는 패턴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개선 작업을 합니다. 이 작업을 리모델링이라고 부르죠. 빵도 리모델링처럼, 저는 이 빵들을 다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처음 빵을 배울 때 음식으로 변화가 가능하니 버리지 마라는 말이 기억난 것이죠.

냉동실에 있는 발효빵들은 모두 통밀과 100% 발효종(levain)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쉽게 부서지거나 형태가 일그러지지 않는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빵의 구조가 튼튼하다는 특징을 이용해서 빵의 재활용을 시작했는데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양파 한알의 껍질을 벗기고,  5~7mm 크기로 길게 썰고, 뚜껑이 있는 팬을 중불에 올려놓습니다. 집에 있는 채소들을 더 넣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토마토, 브로콜리, 당근, 단호박 같은 재료들입니다. 여기서는 순서가 중요하죠. 1인분 레시피를 기준으로 하자면, 오래 익혀야 하는 채소류가 먼저 들어갑니다. 당근, 호박, 양파가 들어간다면, 당근에 기름을 살짝 둘러서 익히고, 그다음 단호박을 볶아 익히고, 그 위에 양파를 올려 다시 볶고 중불에 조리합니다. 각 재료의 투입 순서는 2~3분이 적당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간장(아내가 직접 담근 3년 된 국간장) 양념을 해서, 간을 맞추고 그 위에 발효빵을 올려서 뚜껑을 닫아 둔 채로 3~4분간 약불에 마무리 조리를 합니다. 


아주 간단한 과정을 글로 쓰자니 길 기는 해도 빵이 요리로 바뀌는 과정이 그려지네요.  기호에 따라서 소스를 뿌려도 좋고, 그냥 먹어도 풍미가 있습니다.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기에 도시락으로 싸서, 사무실에 가기도 하고, 아침에 커피와 같이 ‘아메리칸 스타일’을 외치며 식탁에 올려놓습니다. 식탁에 마주 앉은 아내와 딸아이는 이런 저를 보며 묻습니다.


“맛있어?”

“아빠 맛있어요?”

이런 질문에  “음 맛있어, 식감이 좋다. 한 번 먹어봐”

아내와 딸아이는 이런 저에게 익숙합니다. 

“됐어요. 전 밥 먹을래요”


빵을 만든 사람과 지켜보는 사람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냉장고에 있던 초기 작품들이 이제 한 덩어리 남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과발효 빵 야채볶음’을 커피와 먹었습니다.

쫄깃한 식감을 입안에서 느끼며, 맛있는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지요.. 

“아빠 맛있어?”

“너도 먹어봐 맛있어”

딸아이는 이런 아빠를 보며 키득거리며 웃습니다. 


가족이 한 집에 살면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굳이 품위가 있어 보이지 않아도 되고, 심한 노출만 아니라면 헐렁한 옷차림으로 있어도 좋습니다. 추워지는 겨울, 막 구운 군고구마보다는 못하지만 식은 고구마보다는 훨씬 맛나고 쏠깃한 과발효 야채빵을 먹고 지방 출장을 준비합니다. 커피를 충분히 내려서 유리병이 담아 나오니 오늘 하루도 든든합니다. 이제 한 덩어리 남은 과발효 빵은 다음 주 정도에 먹을 것 같네요.  


건축물도 개선이 필요한 곳을 철거하고 화장실이나 다용도실, 창고 같은 서비스 공간이 필요하면 그 장소를 넓히거나, 새롭게 달아매거나, 상하수도를 보수하고 연결합니다. 건축물의 리모델링에서 중요한 것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과 형태를 고려하더라도, 구조적으로 안전한 건물이 되도록 검토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점입니다.

오늘 아침 발효빵은 그런 복잡함이 없이 생활의 요리라는 점이 최대 장점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빵을 재활용하는 것을 건축의 리모델링에 비교한다며 너무 과한 발상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도 빵과 집의 공통점은 ‘의식주’ 3가지에 포함된다는 것이고, 다른 점이 있다면 빵은 먹는 것이고, 집은 들어가 사는 곳이라는 차이점입니다. 건축가이니 이런 저의 발상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리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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