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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ho Maeng Nov 28. 2016

길고양이 숙자

사무실로 사용하는 단독주택 마당에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사무실 사람들이 사료나 물 같은 것을 챙겨주는데, 거의 매일 와서 마련해놓은 작은 집에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는다. 대부분이 애묘인인 사무실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숙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노숙자란 단어에서 성과 이름을 분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노숙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성별마저 수컷이란 사실이 밝혀져 다들 조금씩 미안해하고 있다. 어쨌든 숙자는 사무실 사람들의 챙김을 받으며 길고양이 생활 중이다. 


나는 한 번도 고양이와 가까이 지내본 적이 없다. 어릴 적 읽은 소설 속에 등장하던 고양이는 죄다 으스스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고양이의 노란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면 기분이 이상했다. 고양이를 예뻐하는 사무실 사람들과 비교하자니 지금껏 숙자 머리 한 번 쓰다듬어준 적 없는 내가 너무 냉정하게 느껴진 적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껏 개를 네댓 마리 키워오며 겪은 나름의 희로애락 때문에 더는 나보다 빨리 죽을 가능성이 높은 생명체에 대한 정은 애초에 키우지 않겠단 생각이다.


오늘 아침 일찍 사무실에 도착하니 밤새 어딜 갔다 왔는지 피곤해 보이는 숙자만이 나를 반긴다. 빈 밥그릇이 신경 쓰여 밥과 물을 조금 챙겨줬더니 먹지는 않고 내 앞에 벌렁 드러눕는다. 평소 곁을 준 적이 없음에도 몇 달 얼굴 봤다고 이제는 친한 적을 하는 모양이다. 맨손으로 머리를 좀 쓰다듬었다. 아마도 처음일 테다. 그러고 보니 숙자를 알게 된 지 꽤 되었는데도 아직 손 한 번 대본 적이 없다. 가끔 신발에 얼굴을 비비려 할 때면 더러울 거란 생각에 기겁하며 피했을 뿐이다. 숙자의 머리는 생각보다 보들보들했다. 


머리를 좀 쓰다듬었더니 비집고 들어올 틈을 발견한 건지 적극적으로 신발에 얼굴을 비벼댄다. 마침 헌 운동화를 신은 데다 오늘은 왠지 그냥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에 가만히 있어 보았다. 얼굴을 잠시 비비던 숙자가 발밑에 벌렁 드러눕는다. 아, 고양이도 개처럼 이렇게 드러눕는구나. 키우던 개들이 배를 만져달라고 벌렁 드러눕던 일들이 기억났다. 딱 봐도 엉망진창인 배 쪽의 털을 보니 차마 만질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그나마 해를 받은 머리가 깨끗하겠지 싶어 머리를 다시 쓰다듬으니 숙자가 벌떡 일어난다. 기분이 나쁜가 싶어 머리에서 손을 떼니 다시 벌렁 눕는다. 뭘 원하는 걸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진 모르겠지만, 숙자는 내가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했는지 들러붙기 시작한다. 마음이야 이미 예전에 열었다. 그래도 아는 얼굴이라고 아침마다 야옹 대며 출근길 마중 나올 때부터 말이다. 다만 살 부빌 마음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도 더 있다간 괜히 정들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고양이가 들어올세라 잽싸게 현관문을 여닫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숙자가 밖에 얌전히 앉아 문 안쪽을 바라본다. 야옹야옹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 왠지 미안한 마음에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쪼그려 앉아 숙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런데 숙자의 한쪽 눈이 조금 찌그러진 건지 제대로 눈을 못 뜨고 있다.


무슨 일이지? 밤새 어디서 다쳤나? 갑자기 몰려드는 걱정에 미간을 찌푸리고 숙자를 관찰하고 있는데, 나머지 한쪽 눈이 마저 감긴다. 야, 인마….


따뜻한 햇볕이 기분 좋은 가을 날씨다. 그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건 꽤 기분 좋다는 걸 알게 됐다. 잠시 졸고 있는 숙자를 바라보다 화장실로 가 손을 세 번쯤 빡빡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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