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깜박임이 사진처럼 찍힐 때
영광의 얼굴은 좀 독특했다. 관골에 그어진 흉터 때문인지, 그러나 그것은 과히 흉업지 않을 만큼 엷었으며 창백한 낯빛에 굴곡이 깊고 음영이 짙었다. 소위 범눈썹이라고들 하는데 부드럽게 퍼지면서 모양을 이룬 눈썹은 특히 보기 좋았다. 청춘의 표상같이 싱그러웠다.
박경리, <토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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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이목구비라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모양새인가 생각한다. 토지에는 때때로 이렇게 묘사에 공을 들인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 얼굴이 누군가의 글에 등장하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또 문장처럼 아는 누군가를 눈에 선하게 표현해보고 싶기도 하고.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번 본 사람의 얼굴은 매우 높은 확률로 잊어버린다. 이름과 얼굴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일은 셀 수도 없어서 회사생활이 곤욕스러울 정도다. 이런 내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 일을 했는지. 손님을 기억하는 것도 바텐더의 업무 중 일부이니 나는 만년 태만한 직원이었다.
사람한테 집중하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다. 눈을 마주치되 눈동자 외에 다른 것에는 시선을 오래 두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느낌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관자놀이가 두드러지고 목소리가 얇은 사람. 욕심 많고 주색잡기를 좋아할 것 같은 사람. 편안하고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 대략 이런 식이다 보니 초면의 사람한테도 ‘저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았어요?’라고 말하기 일쑤다. 한때는 ‘아, 제가 원래 사람 얼굴을 잘 기억을 못 해서요’라는 넉살 좋은 말로 포장도 했었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남에게 관심이 없다. 누군가의 얼굴을 이마부터 턱까지 하나하나 뜯어볼 이유를 찾지 못한다. 나 하나 추스르고 사는 것도 버거운데 그럴 시간은 또 어디 있으며 그래야 할 명분은 무엇인가. 바에 방문한 찰나의 시간에 오롯이 정성을 쏟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곳을 나갈 때 조금 더 행복해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 역시 어디에서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도 핑계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걸 기억한다. 나는 타인의 정보를 장기기억 장소로 집어넣는 것이 껄끄러운 인간이다.
토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꼬마적에 보던 인물도 곧 잘 알아본다. 십 년 만에, 그 이상의 시간을 건너 만나게 된 사람한테도 잠깐 멈칫하다가 결국은 알아챈다. 그때는 어땠을까. 인터넷도 사진도 흔치 않아서 모든 것을 눈으로 마음으로 기억해야 했던 시대. 모르면 모르는 대로 들으면 듣는 대로 이야기가 되고 추억이 되던 시대.
언제 봐도 머릿속에서 재생할 수 있도록 소중한 것들을 오래오래 곱씹으며 바라보었을 것이다. 고향의 산천도, 밀알이 익은 논밭도, 손녀의 얼굴과 처형당하러 끌려가는 남편의 뒷모습 까지도. 글을 모르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몸속에 기록했다. 누구 집 사위, 아버지의 제삿날, 맛있는 술을 담그는 비법, 날마다 돌아오는 사당패의 주기를. 나는 그걸 우리 친할머니를 보고 알았다. 칠순이 넘어 처음 글을 배운 할머니는 처녀 적, 그전까지도 옆집 앞집 뒷집은 물론 온 동네 소식을 여즉 간직하고 있다. 가끔은 할머니가 끝없는 이야기를 담은 주머니로 보일만큼 인간의 순간은 끝이 없다.
참 신기한 일이다. 눈 한번 깜박이는 순간이 다 풍요롭고 가득 찼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그게 지금일지도 모르는데 이 기분을 기억하기는커녕 내일이면 잊어버릴까 봐 메모장에 적어대고 있다. 이 풍경이 어디로 가버릴까 봐 핸드폰 카메라부터 들이밀고 있다. 나는 멍청하고, 나를 믿지 않는다. 누구의 낯짝 하나를 붙들고 집요하게 설명할 만큼의 성의도 없다. 그러니 누군가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분명히 만난 적이 있는데, 어쩐지 희미하고 별 느낌이 없는 사람이었노라고. 딱히 묘사할 거리가 없는 그저 그런 얼굴이었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