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을 밀어 올린 첫 이륙 -
누구나 한번쯤은 하늘을 나는
조종사의꿈을 꾸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어릴적에 막연하고도
같은 꿈을 꾼 적이있었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맹모삼천지교’
이야기, 교훈처럼 내가 헬기 조종사가
되기에는 주변에 그런 환경이 있었다.
소대장 시절 근무하던 곳은 전방 미군
부대가 인근에 주둔한 지역이었고,
OH-58 정찰기가 머리 위를 자주 스쳐
지나가곤 했다. 아마 그 길이 헬기가
다니는 길이 아니였나 생각해 본다.
엔진의 굉음이 가슴을 울리고,
회전익이 일으키는 바람에 군복이 펄럭일
때마다 저 안에 사람이 타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야전훈련장에서 올려다 본 하늘,
저 높은 곳에 떠 있는 기체를 바라보며
땅에 발 딛고 서 있는 내가 갑자기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저 하늘을 날고 싶다.“
그 한마디가 조용히 마음에
뿌리내렸는데, 그것은 단순한
동경이 아니라 운명처럼 다가왔다.
첫 도전, 그리고 좌절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공중에서 지상까지의 거리 감각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는 ‘비행 착각'
전문용어로 버티고(Vertigo)’ 현상이
우려된다는 담당 군의관의 진단이
있었다.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1년을 더 기다렸고, 다시 도전했으며,
마침내 문이 열렸다.
비행복을 입던 첫날, 벅차던 그 순간
난생처음 비행복을 입으며 팔을
소매에 넣고 지퍼를 천천히 올리는
그 몇 초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옷 한 벌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고, 어깨를 누르는
책임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다.
헬멧 가방을 들고 활주로로 걸어가는
동안 햇살 아래 반짝이는 기체들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엔진 시동 소리가 모두
낯설면서도 설레게 만들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아 올랐고, 그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1주일의 심판, 생존의 시작
입교 첫 1주일은 잔혹한 적성 테스트의
연속이었다. 서른 명 남짓한 입교생들이
매일 아침 집합할 때마다 교관이 명단을
보며 이름을 불렀는데, 그렇게 불린
사람은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앞으로 나가 짐을 싸야 했다.
퇴교...
하루에 한두 명씩 사라지는 동료들을
보며 잠들기 전 조용히 기도했다. '내일
내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일주일 후,
나는 살아남았고, 이제 6개월의
대장정이 시작될 차례였다.
교관과 1:1, 칼날 위의 긴장
비행 훈련은 교관과 1:1로 진행된다.
수십억짜리 국가 자산을 다루는 자리인
만큼 한 치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았다.
교관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목소리는 낮고 짧았으며, 질문은 언제나
간결했지만 대답은 정확해야만 했다.
"왜?", "어떻게?", "다음은?" 같은
짧은 질문에 대답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눈빛이 차가워졌다.
여기서는 자만도 방심도 사치였고,
작은 실수 하나가 곧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단련되어 갔다.
피와 굴욕, 그리고 각성
비행교육 중 에는 매도 허용된다.
어느 날 조종간 조작이 거칠다는
이유로 교관의 주먹이 헬멧 마이크가
입술에 닿은 채로 맞는 바람에 입술이
터지고 말았다.
지금도 내 윗 입술 속에는
녹두알 만한 상처가 굳어져 있다.
비린 맛이 입안에 퍼지며 억울함과
화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지만,
그보다 먼저 '다음 조작'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착륙 후 거울에 비친 퉁퉁 부은
입술을 보며 그날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감정 따위는 사치이며,
오직 생존과 임무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첫 이륙, 세상이 발아래로 내려가다
그날이 왔다. 첫 이륙.
조종간을 밀고 컬렉티브를 당기자
엔진 굉음이 귀를 찢었고, 기체가
진동하며 계기판 바늘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활주로가 점점 작아지고 건물이
장난감처럼 보이며 사람들이 점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몇 초 만에
세상이 발아래로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벅참과 두려움, 환희와 전율이 동시에
몰려왔지만 그 모든 감정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저 조종간을 꽉 잡고 다음 순서를
따를 뿐이었지만, 가슴 어딘가에서는
조용히 외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날고 있다.
진짜로, 하늘을 날고 있다.’
관숙비행,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본능
적성 검증 과정인 이른바 '관숙비행'
이라는 과정이 있다. 비행교관이 예고
없이 동력을 줄여 기체를 급강하시키
면서 조종학생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비행이다. 이때 준비되지 않은 학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엄마!"를 외치며 소리치는 사람,
조종간을 붙잡고 눈을 질끈 감는 사람,
"주여, 받아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사람, 심지어 벌떡 일어나면서 고함
지르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진심이었는데,
나중에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그때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솔직해지고,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니까.
6개월, 문과생이 조종사로 거듭나다
그렇게 6개월이 흘러가는 동안
활주로를 박차며 뜨고 내리기를 반복
했고, 계기판을 읽고 또 읽었으며,
조종간을 잡고 또 잡으며 문과생이
전투헬기 조종사가 되어가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계기판 바늘 하나하나가
외계어처럼 느껴질 만큼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자주 보니 익숙해졌고
익숙해지니 손이 먼저 움직였으며
손이 움직이니 업(業)이 되어갔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이었고,
그렇게 조금씩 조종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솔로비행, 마침내 홀로 서다
마지막 관문인 솔로비행은
교관 없이 혼자서 이륙부터 착륙까지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과정이다.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 옆 좌석에
모래자루를 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장면이지만
그때는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활주로 끝에 혼자 섰을 때 교관의
목소리도 옆 좌석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내 심장 소리만 두근두근
울려 퍼졌다.
조종간을 잡은 손에는 땀이 흥건했고,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할 수 있다. 해왔던 것처럼 하면 된다.‘
조종간을 밀고 컬렉티브를 당기자
혼자 떠올랐는데, 호랑이 같던 교관
없이 홀로 하늘로 솟구치니 홀가분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이륙, 상승, 선회, 하강의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내고 마침내 착륙에
성공했을 때, 기체가 땅에 닿는 순간
조종간을 놓으며 생각했다.
'이제 진짜 조종사가 됐구나.
이제는 혼자서도 하늘을 날 수 있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터져 올랐고, 성취감과 자부심, 그리고
감격이 한꺼번에 몰려와 잠시 눈을
감아야 했다.
솔로비행이 끝나고 디브리핑 시간에
'오렌지색 머플러'를 목에 걸어주는
의식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한
순간이였다.
하늘이 가르쳐준 것
훈련장에서 미군 OH-58 정찰헬기를
바라보던 보병 장교는 그렇게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조종사가 되었다.
선배들이 자주 하던 말이 기억난다.
"조종을 '잘한다'는 말로 평가하지
않으며, 오래 살아남아야 비행을
잘하는 조종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늘 머리에 남아 있었고,
3,000여 시간 하늘 위에서 배운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두려움과 겸손이었다.
생떽지베리는 조종석에서
인생을 이렇게배웠다고 한다.
“하늘은 늘 단순했고,
복잡한 것 늘 사람이었다.” 라고.
자만은 곧 사고이며 방심은 곧
추락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고,
무사히 하늘을 지키고 지금 두 발로
땅을 밟고 있는 나는 참으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시작에서처럼 우연찮은 환경이 나를
조종사로 만들었듯이 살아가는 환경의
중요성도 교훈인 것 같다.
하늘을 동경하되, 절대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하늘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이다.
다음 챕터에서는 조종간을 잡은
순간부터 피할 수 없었던 생사의
경계선,그 아슬한 몇 초를 지나온
이야기들을 펼쳐보려 합니다.
비행이 늘 푸른 하늘만을 약속해주지
않았던 날들, 그 속에서 제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버텼는지 들려드리겠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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