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솜사탕을 받아 든 아이 마냥 매우 들떠 있었다. 이런 식으로나마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작가'가 드디어 되었기 때문이다. 그 한 단어는 나에게로 날아와 그대로 꽃이 되었다. 문예지에 등단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글을 쓰겠다는 모든 서비스 이용자를 '작가'라고 불러주었을 뿐인데,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행복했다.
흥분된 마음으로 나는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을 나의 브런치 페이지에 써 내려갔다. 그리고 운이 좋겠도 내가 쓴 3개의 글 중 2개가 다음 메인 화면에 오르기도 했다. 작가라는 꽃을 달고 글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행복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많은 이들이 읽어주고 반응해주는 것은 그에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욱 행복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황홀을 경험한 이후로 나는 브런치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가 알고 있는 글자 조합의 나열이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나의 인생을 서술하는 것이다. 글뿐만이 아니라 사실 음악, 미술 등 모든 예술이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공감받고 싶어 한다. 인정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어 한다. 그런 본능의 분출구로 나는 글쓰기를 택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내 생각과 감정을 읽는 일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인생을 남에게 보이고, 내가 살아가기로 한 방향을 내비치는 행위였다. 이걸 깨닫기 전에는 나의 화려하지 못한 문장체가 부끄러웠다. 종종 발생하는 영어식 화법의 문장의 오류 혹은 맞지 않는 맞춤법에 두려워 글쓰기를 어려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인생을 돌이켜보며 부끄러워하게 된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나를 온전히 보여 줄만큼 자신 있는 삶을 산 것일까?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는, 나의 허영심을 채우려는 어리광이 글을 쓴 것은 아닐까? 누군가가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갖고 있긴 한 것일까? 그 전까지는 내가 생각한 바를 나불대고 싶었다면, 지금의 나는 되려 내 감정과 나의 생각을 드러내기가 힘들어졌다. 그 이유는 나 자신이, 내 인생이 부끄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윤동주 같은 위인도 자신의 삶에 괴로워했는데,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또 글을 쓴다. 글쓰기란 그 정도로 내겐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 삶에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면, 기꺼이 알맹이가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젠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