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to 5 유치원 종일반 출신
사당동 군인아파트 2동 203호였던가. 앞집에는 5형제가 살았고 막내 오빠는 나보다 네 살 많았다.
유치원 입학식에는 큰 언니가 같이 가주었고(매우 싫은 내색이었지만 엄마가 하라니까 억지로 델고 감), 첫날 숙제도 있었다. 미완성된 꽃 그림에 꽃잎과 줄기 채워오기. 그 숙제를 한동안 내방 (군인아파트 맨 끝방. 연탄불이 들어오지 않아 냉골이라 누구도 거기서 지내지 않았지만 피아노, 옛날식 책상과 내 장난감이 있는 그 방을 내 방이라 삼았다) 벽에 붙여놓았다.
만 5세에 입학한 유치원에 가기도 전에 한글을 익히고, 1984년 강변 가요제 대상 ‘J에게’를 멜로디만 듣고도 피아노를 치던(물론 한 손가락으로 멜로디만 쳤지만) 나는 사당동 새싹 유치원의 신동이었다. 유치원엔 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도 많았고, 나는 일주일에 한 번 특별히 진행하던 몬테소리 교육도 나름 껌으로 소화하곤 했으니까. 당시에는 뭐 이것쯤이야! 정도로 쉬웠다. 지금 생각해도.
오전 9시에 가서 오후 5시에 끝나던 종일반 유치원. 화요일에는 도시락도 싸갔고(마이 멜로디를 카피한 분홍 토끼 도시락통에 싸갔다), 매일 원치 않는 낮잠도 잤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냈지? 고구마 캐러 갔던 현장학습, 롯데 제과 견학, 1박 2일로 갔던 여름 캠프(누구나 했던 인디언 분장), 시장 놀이 모두 기억난다. 시장 놀이 때는 진짜 물품을 팔았는데 엄마는 보리차용 보리, 참기름 같은 걸 샀던 것 같다. 내가 너무 큰 화폐를 내밀자 엄마가 좀 더 작은 걸 내라고 가르쳐줬던 것도. 병원놀이하는 날엔 엄마를 초대해 간호사가 되어(남자는 무조건 의사, 여자는 간호사) 엄마에게 주사를 너무 꾸욱 놓았던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