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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멀어지게 되는 이유

오만한 지난날을 반성하며. 오늘을 기대하며 

지금까지 살면서 결혼, 출산, 부친상의 굵직한 인생의 필연의 사건을 겪으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이러한 사건들 이후에는 관계가 변한다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리고 이 사실은 최근 암선고로 더욱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이인 그녀는 아끼던 사람들이 왜 자기를 떠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만의 입장에 이야기하기 마련인 사람의 특성상 그녀의 이야기만으로 그녀가 맺고 있는 관계를 모두 유추해 볼 순 없겠으나 그녀 입장에서 충분히 억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속상해하는 그녀를 위로했지만 문제의 반복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니 '자신을 돌아보라'는 뼈 때리는 조언을 했었다. 평소에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 나는 꽤나 그녀를 돕고 싶었고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었다. 

언제나 남의 탓보다 내 탓을 먼저 하는 성정이기에 타인의 잘못 보다 나를 돌아보는 것에 익숙한 나의 기준에서 '문제에서 가장 먼저 할 것은 나를 돌아보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으니 내 딴에는 가장 해야 할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나 아니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겠냐며 충분히 가까운 사이이고 애정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라는 자기 합리로 무장한 채 말이다. 


건방지고, 오만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녀를 떠나지 않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었다. 

쉽게 화를 내지 않는 내 성격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문제를 바라보는 내 기질이 

누구든 먼저 품기로 작정한 나의 신앙이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그동안의 나의 습관이 그녀와 나의 관계를 지킬 줄 알았다. 

암을 만나기 전에는.


암선고를 받고 나니 나는 죽음이라는 큰 문제 앞에 아주 작은 존재였다. 

무엇이 나를 그리도 자신만만하게 했던가.

그녀의 성격, 상황, 행동들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그녀를 힘써 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놓고 싶어졌다.

그녀는 변한 게 없으나 나는 그녀를 안아줄 에너지가 없었다.  

내가 변했다. 


변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변하는 존재인걸 자각하지 못했을 뿐.

암은 나의 날 것 하나를 찾아내었다. 정제된 줄 알았던 나의 날 것. 

관계를 지켜가는 게 나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인 것 마냥 오만을 떨어댔다. 이럴 줄 모르고...

나 자신도 예측할 수 없으니 타인을 판단하기도 어렵다. 

암이 아니었다면 오만했던 나를 발견하지 못했을 테니 그래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 오늘이 있나 보다. 


특별한 일이 없이 관계가 멀어진다는 건 그때에 그럴 수 있는 상태인거지 누구의 잘못도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우리 관계는 처음부터 오늘이 예견되어 있었을 것 같다. 

관계의 불균형은 결국... 이제 놓아야 할 때인가 보다. 


이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좋은 관계도 있다. 

서로에게 너무 애쓰지 않는 편안한 관계들에게 더 집중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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