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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ty 묘등 Apr 07. 2021

꼬리에 털이 있는 뱀

딸의 첫 글 동화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의 책상을 정리합니다.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너저분하게 어지럽히는 것도 엄마를 닮았습니다. 보통 안 좋은 점은 배우자를 닮아 그렇다 빡빡 우겨봄직 한데, 내 사무실 책상의 꼬락서니(씁쓸하게도 적정한 단어 선정입니다)를 떠올려보면 겸허히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反깔끔쟁이 DNA를 물려준 내 과업이다' 푸념하며 책상을 정리하던  딸의 노트북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노트북 화면을 보니 워드 파일이 빽빽하게 글로 채워져 있습니다. 아마도 엄마의 심이 소홀한 순간 방에 들어와 손가락으로 타닥타닥 끄적였나 봅니다.


"꼬리에 털이 있는 뱀", 제목이 흥미를 끕니다.  꼬리에 털이 있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대충 훑어보니 A4용지 2장이 넘어가고 중간중간 따옴표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동화인 듯싶습니다. 이전에 그림책이나 웹툰 형태의 글그리고 쓴 적은 있는데 글 동화는 처음인지어떤 내용으로 이야기가 펼쳐졌을호기심이 동動합니다. 자연스레 나의 눈은 글줄을 훑기 시작합니다.


첫 줄은 흥미를 끌었던 제목이 야무지게 자리하고 있고, 다음 줄에는 본인의 저작권을 보증받으려는 듯 "글쓴이:이현경"이 깨알같이 박혀있습니다. 나름 형식을 갖춘 딸의 치밀함에 나도 모르게 비집고 나오는 미소를 입에 걸치고 읽기 시작합니다.


리에 털이 있는 뱀

글쓴이:이현경

옛날 옛적 어느 날, 아주아주 깊은 산골짜기에 털이 있는 뱀이 살았어요.
그 뱀은 꼬리에 털이 달렸는데 그 털은 소원을 이루어 주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했지요.
하지만 모두 뱀에게 목이 졸려 죽었지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지요.
그 뱀은 1000년에 한 번씩 아주아주 단 낮잠을 자는 날이 있었지요.
그래서 도전을 한 사람들은 그걸 몰랐으니 죽을 수밖에.

어느 날, 한 노인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어요.

“너는 앞으로 큰 인물을 낳을 것인데, 그 아이의 이름을 ‘유채화’라고 짓거라.”
꿈에서 깬 노인은 ‘이상한 꿈이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며칠 뒤에 진짜로 아이를 낳은 거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 노인은 산신령이 말한 대로 이름을 ‘유채화’라고 지었어요.

하루하루가 지나다 보니 벌써 채화가 18살이 되었지 뭐예요?
채화는 용기 있고 밝고 씩씩한 아이로 자라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채화가 심부름을 다녀오는 때였어요.
 “자네, 그거 들었나?”
 “뭐 말일세?”
 “아니, 그 옆집 김씨네 아들이 털 뱀의 털을 구하러 갈려다가 졸려 죽었다지 뭐야?”
 “아, 그거?”
그 말을 들은 채화는 갑자기 털 뱀의 털을 뽑아서 구해오고 싶었어요.
그때 채화의 엄마는 많이 편찮으신 상태였어요.
그 털로 병을 게 해드리고 싶었지요.


그래서 채화가 엄마께 말씀을 드렸어요.
 “어머니, 제가 털 뱀의 털을 가져와서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 드릴게요.”
그러자 엄마가 말했어요.
 “아니? 얘, 채화야! 털 뱀의 털을 가지고 오는 건 너무 어렵지 않니? 게다가 그 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니.”
 “괜찮아요. 어머니. 어머니를 위해서 라면 지옥에도 갈 테니 말리지 말아 주세요.”
 “어휴~네 뜻이 그렇다면야.”
그래서 채화는 여행을 갈 준비를 하였어요.
드디어 채화가 떠나는 날이 되었어요.
 “얘야, 잘 갔다 오너라. 몸조리 잘하고.”
 “네, 어머니. 제 걱정 마시고 쉬고 계세요.”

그래서 채화는 여행을 떠났어요.
처음에는 할 만했어요.
그런데 점점 갈수록 힘들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호랑이를 만나질 않나, 식인 악어가 잠들어 있는 강을 건너질 않나.
그렇게 많은 고난과 역경을 거치고 나서 털 뱀이 있는 산골짜기에 도착했어요.


여기서 잠깐! 여러분 오늘이 무슨 날이게요?
네, 맞아요. 털 뱀이 1000년의 한 번씩 오는 바로 그날이에요!
채화는 살금살금 숨 죽이면서 털 뱀의 털을 뽑았어요.
채화가 처음으로 털 뱀의 털을 뽑아 왔어요!
채화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갔어요.


채화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을 보자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채화는 엄머네 집으로 갔지요.
 “아니, 내가 지금 헛것을 본 건가?”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돌아왔어요.”
 “오, 채화야 네가 정말 살아 돌아왔구나!”
 “잠시만요, 어머니 제가 이 털에 소원을 빌게요.”
 “제발, 저희 어머니의 병을 게 해 주세요.”
그러자 뱀의 털에서 신비한 빛이 나더니 노인의 몸을 감쌌어요.
 그랬더니 노인이 말했어요.
 “얘야, 정말 신기하구나.”
 “그래요?”
그러자 채화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기쁘다니, 털을 뽑아오길 잘했다. 히히’


근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그 털에게 소원을 면 병에 안 걸리고 오래 산대요!


그렇게 돼서 채화와 노인은 행복하게 오래 살았답니다.

끝~


단숨에 읽힌  딸의 첫 글 동화는 팔불출 엄마인 나에게 감동 그 자체였답니다. 내용의 독창성이나 완성도를 떠나 초등학생 치고는 꽤 긴 호흡으로 써 내려간 글에서  자신의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고 글이라는 결과물로 잡아보고자 하는 의지와 집념이 느껴졌습니다. 책상 어지럽히는 습관은 창작의 고통에서 오는 작은 몸짓의 결과물로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특히 나의 심금을 울린 내용은 “괜찮아요. 어머니. 어머니를 위해서 라면 지옥에도 갈 테니 말리지 말아 주세요.”라는 구절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효심이 짙게 묻어나는 이 대목을 읽는 동안 마치 딸이 엄마인 나를 향해 이야기하는 듯 진실 같은 착각에 빠져 뭉클해집니다. 

다만 나라면 위험할 것이 자명한 딸의 모험을 '채화'의 어머니와 같이 체념하듯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 다소 공감이 어려웠습니다. 딸로만 살아온 작가의 짧은 인생과 제한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이해 부족이겠거니 하고 넘어가 봅니다.


반면에 동화의 내용 중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발견됩니다. 털 뱀의 털을 찾아가는 '채화'의 여정이 다소 짧게 요약된 듯합니다. 다채롭고 구체적으로 고난과 역경의 모험 에피소드들이 기술되었다면 스펙터클한 모험 동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에 작가에게 묻습니다.


"작가님,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채화'가 털 뱀의 털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짧은 거 같아.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너무 궁금해. 그 부분을 좀 더 길고 구체적으로 써주면 안 될까?"


작가 왈曰,

"호기심을 일으키기 위해 궁금해하라고 그렇게 썼지. 엄마처럼 궁금해하면 상상을 할 수 있잖아. 상상해보라고 그렇게 쓴 거야"


캬~ 그런 작가의 깊은 의도가 숨어 있을 줄이야~

날로 먹지 말라는 겁니다.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읽으라는 거지요. 수동적으로 작가의 생각 만을 쫓지 않는 주체적인 독서를 하라는 의도랍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작가의 기지(奇智)감탄하며 차기작을 기대해봅니다. 


이상은 지극히 편파적인 작가의 엄마 입장에서 쓴 서평이었습니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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