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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n Africa May 18. 2023

엄마가 나에게 사과했다

지금 여기 감사일기 6- 자신에게 좀 더 친절해 지기 

엄마.

오늘 어떤 책을 읽었는데, 주인공이 70대의 할머니였어. 

기차에서 지갑을 잃어버려 당황하고, 그 지갑을 주워서 찾아준 노숙자를 만나고, 그를 그냥 보내지 못해 편의점 도시락을 챙겨주는 할머니의 이야기였는데, 아직 제대로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할머니 이야기를 읽다 보니 엄마가 떠올랐어. 

엄마는 참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사람이었어.

정이 넘치고 넘쳐, 할머니들이 길거리에서 열무나 콩나물 따위를 팔고 있으면 그 곁을 절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고, 일터에서도 혼자 소외되거나 따돌림받는 사람이 있으면 꼭 그의 편이 되어 주어야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었지.

백화점에서 일할 때 정의감에 괜히 직원들 편에 섰다가 혼자 욕을 다 얻어먹은 적도 있었고, 엄마가 없어 오갈 데 없는 어린아이를 맡아 키워주다가 봉변을 당할 뻔하기도 했지. 

그러니 가족들을 위해서는 오죽했겠어. 

엄마는 가족을 위해 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어. 


어린 내 눈에 이런 엄마는 참 멋있게도 보였다가 대단하게도 보였다가 또 때로는 참 어리석게도 보였어. 

엄마는 항상 옳은 편에 서려고 했고, 최선을 다하며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오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에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거든 

엄마를 너무 사랑했던 나는 이렇게 불행한 엄마를 보는 것이 참 힘들었어. 


" 엄마. 제발 이기적으로 엄마 인생을 좀 살아! 불쌍한 사람을 위해, 자식을 위해 남편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도 좋지만, 엄마 몸도 좀 챙기고 건강도 좀 챙기고 좀 현명하게 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엄마는 달라지지 않았어. 

나는 이런 엄마가 안타까웠고 답답했고 미칠 듯이 화가 났어. 

그리고 다짐했지,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시간이 흘러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엄마와 별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어.

엄마의 장점도 닮고, 그렇게 진절머리 치던 단점도 닮았어. 

엄마가 걸었던 길을 고스란히 따라 걸으며, 나는 이제야 비로소 조금은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 같아.  

엄마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었어. 

그런데.. 엄마는 몰랐던 거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오늘 철학관에 갔다가 너에 대해 물어보고 왔다. 

4계절로 치면 지금 네가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중이라 많이 힘들겠다 하더라. 

시간이 지나면 곧 봄이 안 오겠나 하더라. 


얼마 전에 전화 와서 황서방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을 때, 

네가 힘은 들지만 니 몸 챙기고 딸아이와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을 때

"잘하고 있다, 그걸로 되었다" 했어야 했는데,

너한테 "좀 더 참고, 이해하고, 남편한테 잘하라고 애쓰고 살라고, 자식을 위해 그렇게 하라고" 말해버렸어. 

너희 세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힘들게 버티고 있는 너한테 부담만 더해주었어.  


돌아보면 평생 나도 네 아빠랑 사이좋게 살지 못했고 

힘든 남편 만나 평생을 참고, 이해하고 애쓰느라 몸과 마음은 병이 나고 

지금까지도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이며 살고 있으면서 

내 방법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내 딸한테 나랑 똑같이 애를 쓰면서 희생하면서 살라고 충고를 했네.

오늘 정신이 돌아오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차 싶더라. 


이미 세상은 변했고, 내가 살아온 방법이 어리석은 방법이었다는 걸 알고도 

습관처럼 옛날 생각으로 말했으니, 나보다 몇백 배 똑똑한 내 딸한테 이러쿵저러쿵 말했으니 

얼마나 속상했겠니 

안 그러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살던 게 있어서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그렇게 말하는 거니 좀 이해해 줘. 


어떤 판단을 하든 나는 무조건 네 편이고 네가 옳다고 생각한다.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네가 중요하니, 네 마음 편하게 네 생각대로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라

이때까지 잘하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잘하고 살아가리라 믿는다. 

부족한 엄마를 만나 너를 너무 힘들게 해 미안해. 



엄마가 나에게 사과했다

엄마의 사과는 '엄마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엄마처럼 살 필요 없다'는 일종의 허락 같은 것이었다. 

'너무 애쓰며 살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살아보니 그게 옳은 길이 아니더라'라는 엄마의 고백은 이제야 비로소 나를 편히 숨 쉴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 봄비 소리 들으며, 봄비 노래도 듣고, 시도 읽고, 황사, 꽃가루에 닿아 둔 창문도 활짝 열어봅니다.

눈 감고 봄비 소리 듣는 이 시간이 너무 좋네요~"


오늘 엄마가 써서 올린 감사일기 한 문장에서 엄마의 자유와 행복이 느껴져서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오롯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고 정성을 다하는 엄마의 삶을 보는 것이 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건지 엄마는 알까? 


엄마.. 

행복은.. 자신에게 좀 더 친절해지는 길 위에 있는 것 같아. 

엄마는 엄마에게, 나는 나에게

자신에게 좀 더 친절하고 다정하자. 

엄마, 이제라도 행복하게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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