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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빛 Sep 20. 2023

너는 어떤 하루를 보냈니?

아기와의 잠자리 대화

  다다를 재울 때마다 기대를 한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하려나?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은 하원할 때 선생님께 듣기도 하고 알림장도 올라오니 대략적으로 알고 있지만, 다다의 하루를 다다의 목소리로 들으면 재미있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든다.


  며칠 전 다다 반에 새 친구가 전학 왔다. 외국에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친구인데 영어를 쓴다고 했다. 새 친구가 처음 온 날, 선생님께서 알림장에 다다가 새 친구의 말에 관심을 보이고 따라 해서 집에서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고 써두셨다. 내심 '아, 오늘은 새 친구 이야기를 해주려나? 혹시 영어를 하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다야, 오늘 새 친구 왔어? 어땠어?"라고 물었다. 다다가 말했다. "새 친구 안 울었어. 다다가 울었어. 어린이집에 베개가 없는데 선생님이 아빠집에 베개가 있어서 못 찾았어. 그래서 울었어."


  오늘 다다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어린이집에 애착베개를 가지고 가지 않은 것이었다. 알림장에는 낮잠 시간에 베개를 찾아도 보이지 않자 조금 울고는 선생님께 토닥여달라 하고는 잠들었다며 베개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 베개에 대해 잊는 것 같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다다는 사실 베개가 없었다는 것이 아주 속상했던 것이다. "속상했겠네. 그런데 다다가 아침에 베개를 안 챙겼잖아. 자기 물건은 자기가 챙기는 거야. 내일은 잊지 말고 챙겨가자."라고 대문자 T처럼 답해주었다. 하지만 분명 알림장을 읽었는데 베개 때문에 속상했을 다다의 마음보다 새 친구를 따라 영어를 하길 기대한 것에 대해 속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어떤 날은 다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집에서 밥 안 먹었어. 선생님이 치웠어. 고기만 먹어서 배고파."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떡볶이가 짰어. 다다는 안 먹었어. (왜?) 떡볶이가 짜서. 친구들은 다 먹었어." 평소 짠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다다이기에 떡볶이가 짜서 안 먹었다는 말은 바로 이해가 되었지만, 어린이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는 말은 이유가 궁금했다. 다음날 선생님에게 다다의 말을 전했더니 바로 답을 알 수 있었다. 현장학습을 다녀와 늦게 밥을 먹었더니 졸린지 평소와 다르게 고기만 몇 점 먹고는 돌아다녀서 안 먹겠다는 확인 후 식판을 치우셨다는 거였다. 다다가 그런 말도 전달할 수 있냐고 놀라시는 선생님께 그런 것을 전달해서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다다의 말은 틀린 것은 없었지만 빼먹은 것이 많았기에 오해로 번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다는 가끔 거의 잠드는 듯하다가도 번쩍 눈을 뜨고는 말한다. "아꾸(외삼촌)는 뭐 하고 있어요?" 갑자기 아꾸가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고는 삼촌과 했던 일을 행복한 목소리로 떠올린다. "아꾸랑 강에서 어푸어푸했지. 물고기 봤어! 아꾸랑 이모랑 꼬꼬 먹었지!" 이런 말을 한 날도 있다. "다다 인어공주 봤어. 인어공주가 다다한테 안녕했어. 물고기 나라에서 수달이 데리고 왔지." 얼마 전 다녀온 아쿠아리움에서 본 인어공주 공연과 기념품으로 사 온 수달 인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머리맡에 놓인 수달인형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잠이 든다. "강아지풀 봤지." "트럭이 맘마 먹었지." 하면서 산책길에 본 것들을 눈을 빛내며 입술을 힘껏 움직이며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와 말하기도 한다.


  어린 아기는 기억도 못하는데 아깝게 뭘 그렇게 다니냐는 식의 말을 나는 분명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아기는 이렇게나 충만하게 하루를 보낸다. 어쩌면 감정을 자제하고 포장하며 사는 어른들보다 더 풍부하고 생생한 있는 그대로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잠자리 대화에서 다다는 속상한 마음과 아쉬움을 표현하고, 즐겁고 행복했던 일들을 다시 떠올린다. 기억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모든 경험은 다다의 안에 겹겹이 쌓인다. 자기 전 문득 떠올리며 즐거워할 수 있는 멋진 일들을, 그게 비록 소소하고 작을지라도, 경험시켜주고 싶다. 그 경험들을 다다의 목소리로 들으면 나도 함께 행복해지겠지. 다다의 오늘 하루는 또 어땠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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