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모임에서 우연히 이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한참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하기도 하고 독특하기도 해서 좋아요."
내 이름은 초등학생 국어책을 펼쳐보면 쉽게 나오는 '영희'와 우리나라 인구의 0.1% 정도가 지닌 성인 '양'의 조합이다. 어렸을 때는 철수를 찾으며 놀리는 사람들 때문에 내 이름이 싫었는데 나이가 드니 그런 것도 없어졌다. 평범하지만 어느 정도 독특함도 있으니까, 좋지 않나 여겼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이 좋은지에 대한 대화가 끝나갈 때쯤 한 분이 내게 스치듯 말했다.
"그런데 저는 영희 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떠올라요"
나는 '아 그래요?' 하며 웃어넘기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그녀의 인터뷰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좀 더 많고, 일본에 사는 영화감독이 있다. 그리고 나는 금방 그 사실을 기억 속에서 지웠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그녀에 대해 검색했다. 우선 한글 이름은 같았지만, 한자는 달랐다. 하지만 익숙한 한자였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내 한자 이름을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꽃부리 영(英), 아가씨 희(姬)라고 알고 있었다. 주민등록증을 신청할 때가 돼서야 나는 내가 한자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양영희 감독님이 그 한자였다. 나는 점점 궁금해졌다. 나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마침 최근에 그녀가 에세이집을 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라는 제목이었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책을 샀고, 그 책을 기다렸다.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책 표지 중앙에는 오래된 흑백사진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단발머리 소녀가 한복차림으로 서 있다. 한 손엔 꽃바구니와 다른 손에 북한 국기를 든 채로. 이 작은 소녀가 양영희 감독이다.
일본에 사는 양영희 씨는 재일 코리안 2세다. 아버지는 조총련 출신(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오사카 부위원장으로, 북송 산업(재일 코리안의 북한 집단 이주 사업)으로 자기 아들들을 북으로 보낼 정도로 열성적인 활동가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적으로 북조선을 지지하는 전체주의자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버티지 못했고, 사이는 점점 어긋나기 시작한다. 아버지와 말싸움을 벌이고, 어머니는 뜯어말리고, 양영희 씨는 화가 나서 나가는 패턴이 반복된다.
그런 관계를 다시 붙여준 것이 작은 캠코더로 시작한 가족 다큐멘터리였다. 양영희 감독은 뉴욕으로 가서 영화를 배우고 자기 가족과 평양을 찍기로 한다. 가족 다큐멘터리 프로젝트가 행여나 가족을 상처 입히지 않을지 꿈속에서도 고민하기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하러 북한에 갔을 때, 캠코더를 들고 가 사람들을 찍었다. 캠코더가 흔들리지 않도록 팔에 힘을 주면서. 결국, 영화는 세상에 나왔고, 조총련은 그녀에게 사과문을 쓰도록 강요했다. 이를 무시하자 그녀의 북한 입국을 금지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에서 그녀는 그 자체로서 가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잠옷 차림으로 진심을 말할 때도,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북한에 충성을 맹세할 때도 모두 그녀의 아버지라는 것을. 아버지 또한 양영희 씨의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허락하고, 자신은 삶과 딸은 별개이니 자유롭게 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모든 과정이 한 권의 에세이에 담겨있다. 자신의 세 오빠를 어린 시절 북한에 보내고 나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일, 아들의 편지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앙상한 오빠들의 사진을 보고 찢어버리고 나서 아버지에게 비밀이라고 말한 일, 계속 북한에 돈과 짐을 보내는 어머니를 막을 수 없어 그녀가 친척들의 편지를 몰래 숨긴 일까지도.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자기 가족에 대해 말한다.
양영희 감독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마음속에서 감정이 여러 번 일렁였다. 머리가 복잡하고 답답해서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한편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이름이 같지만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구나. 내가 전혀 상상해 본 적 없는 감정을 느껴봤겠구나. 그리고 용기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나는 책 사이에 끼워진 엽서 한 장을 꺼내 바라본다. 엽서에는 표지와 똑같은 흑백사진이 흐릿하게 프린트되어있다. 나는 엽서의 귀퉁이를 만지작거린다. 내가 살지 않았던 삶을 읽으며 아파하고 공감했던 건, 그녀가 진실한 글을 써서일까. 아니면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삶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져서일까. 알 수는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그녀를 알게 되고 내 이름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