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었더니 찬 바람이 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버섯구이가 땡기네, 주방을 돌다 박스에 담긴 감자가 눈에 들어왔다. 추석 연휴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감자들은 싹이 삐죽 올라와 있었다. 택배를 받고 바로 반은 껍질 벗겨 잘라 냉동 보관해 두었는데,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더니 결국 이 모양이 되었다. '싹 난 감자 먹어도 되나요?'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니 싹 난 부위만 도려내면 괜찮다는 결론. 과도로 싹 난 곳을 동강 잘라내고 두껍게 깎았다. 그릇에 담긴 감자 9개를 빤히 보며 뭘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는데, 문득 감자전이 떠올랐다.
나는 김치전과 감자전을 좋아한다. 하지만 집에서는 김치전만 만들었었다. 감자를 강판에 갈거나, 믹서에 갈아 체에 거르는 게 김치를 쓱쓱 자르는 것보다 귀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도 감자전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수북하게 담긴 노란 감자 알갱이를 보고 있자니, 이참에 만들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큰 믹서기는 꺼내기 귀찮고 강판은 없어서 핸들을 당기는 야채 다지기에 감자를 넣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칼날에 감자는 금방 다져졌다. 수북해진 감자 조각에 부침가루 두 스푼만 넣고 휘저었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바닥 크기 정도로 올려놓았다. 지글지글 소리 내며, 감자전은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약불로 줄인 뒤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동안 간장에 식초를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 조금 탄 감자전을 그릇에 올리고 어제 먹은 아보카도와 양상추를 곁들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전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기름을 많이 두르지 않았는데도 감자전은 제법 바삭했다. 감자 알갱이들이 입안에 가득 씹혔다가 녹았다. 심심한 맛이라 간장에 찍어 먹는 게 어울린다. 감자전을 반쯤 먹다가 냉동실에 있던 청양고추 다진 것을 꺼내 간장에 넣었다. 그랬더니 맛의 주인공이 청양고추가 되어 버렸다. 감자 맛은 어느새 뒤로 밀려났지만 그래도 괜찮은 한 끼였다. 빈 그릇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열어 둔 창문을 바라봤다. 곧 겨울이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