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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하 Apr 24. 2023

지옥단상

예전에 주일학교에서 이런 예화를 들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교였는데, 두 곳 모두 다를게 없다고 시작했다. '어라? 다를게 없다고?'라고 생각하며 설교에 집중했다. 내가 기억하는 주일학교의 유이한 설교 중 하나다. 천국과 지옥 모두 잘 차려진 밥상이 있고 사람들에게 긴숟가락과 젓가락을 준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워낙 길어서 음식을 자신이 먹으려면 절대 먹을 수 없다고. 지옥에 간 사람들은 욕심이 많아서 먹으려고 노력하다가 계속 흘리기만 하는데, 천국에 간 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먹여주어 맛있는 잔치상을 제대로 먹는다는 이야기. 


이 예화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지옥에 간 욕심꾸러기, 천국에 간 착한 사람 때문이 아니었다. 지옥과 천국, 천국과 지옥이 모든 조건이 똑같고 사람만 다르다는 지점이 가장 충격이었다. 대개 지옥은 '지옥불'로 요약된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불타게 된다는 말에 "그럼 다 불타면 없어지잖아요?"라고 물어보니, 계속 새 살이 고통스럽게 돋아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그러면 지옥간다!"라는 한마디에 예배에 빠질 생각도 못하던 주일학교 학생이었다. 


2023년 4월 22일 '그것이 알고 싶다' JMS정명석편을 보다 문득 지옥에 대한 근원적 공포가 떠올랐다. 많은 JMS 신도들이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옥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는 인터뷰를 보고 나서다. "하지 말라는 것을 했을 경우에 '지옥 간다'라는 그런 게 있어요." 영원한 지옥불과 마귀들에게 고통 당하는 지옥. 그런데 진짜 지옥이 있을까? 

 

<자비 없는 세상에서 하느님을 다시 찾다>(삼인)를 쓴 필립 걸리, 제임스 멀홀랜드(어느 쪽의 경험인지 모르겠다)는 1장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1986년 여름 시골 작은 교회에 목사로 취임한 그는 한두달 사이 좋게 지냈지만 석 달째 문제에 직면한다. 교회의 나이든 여자 교인 하나가 예배를 마친 후 사탄과 지옥을 믿는지, 안 믿는지 질문을 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사탄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들이 영원히 고통받는 곳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도 말해 주었다."(16쪽) 


도입부 첫 번째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는 '할렐루야'를 (속으로) 외쳤다. 그렇지. 사탄도, 지옥도 없는 거야. 정말 할렐루야! 어느 기독교 문화관련 서적에서는 존 레논의 <Imagine>이 비기독교 노래라고 말했는데, 목사남이 '사탄도 지옥도 없다고' 말하다니. 


만화역사를 가르치며 12세기 일본 두루마리 그림인 '지옥초지(地獄草紙)'를 만화의 초기 형태로 설명한다. 물 탄 술을 팔거나 기타 등등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받는 그로데스크한 그림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내 머리에 형상화된 지옥의 모습 아닌가? 영원한 지옥불, 고통... 흥미롭게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모습인데, 내 어린 시절에 들었던 지옥의 모습이 나온다. 


지옥에 대한 공포에서 JMS를 탈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답답해 한다. 하지만 어디 JMS뿐일까? 


하느님과 친밀히 소통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타인을 대하는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산다면, "구원은 우리가 죽은 후에 얻게 되는 무엇이 아니라, 언제라도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때에 일어나는 사건"(25쪽)일 것이다. 유예된 행복이나 보이지 않는 공포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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