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0일, 아직 코로나의 위력이 우리나라에 밀어닥치기 전이었다. 온통 추위로 얼어붙은 날, 지친 몸과 마음이 스르르 녹을 듯한 곳이 그리웠다. 문득 소박한 이상향이라고 불리던 샹그릴라로 떠나고자 비행기에 몸을 싣고 4시간 반을 날아 윈난 성 곤명 창수이공항에 도착했다. 유리에 두른 노란 띠 모양의 구조물이 공항 청사 곳곳에 장식되어 있다. 꽃의 도시에 리본을 달고 여행객을 환영하는 것일까?
곤명 창수이 공항
마시엔 쌀국수
봄의 도시 곤명은 사시사철 꽃이 피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1월이 한 겨울이지만, 이곳에서는 매화가 망울을 터트리고 벚꽃이 화사하다. 곤명은 위도가 낮아 더운 곳이지만, 고도가 2,000미터 이상 고산지역이라 늘 봄날, 상춘 기후 지역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윈난 성 곤명에서 홍강을 국경으로 베트남 라오까이는 400km 조금 넘는다. 국경을 넘어 라오까이 역에서 기차 혹은 버스를 타면 하노이까지 갈 수 있다. 땅 넓은 중국 다른 곳에 비해 베트남이 가까워서 그런지 일찍이 미시엔 쌀국수 문화가 발달했다. 서산 입구에 위치한 쌀국수 식당에서 먹어 본 마시엔 쌀국수는 맛이 담백하고 먹을만했다.
그리고 서산으로 올라가려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돌로 된 청색 기와 아래 공포 장치까지 달린 패문이 서있고,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8가지 글자들이 깃발에 붉게 새겨져 있다. 중국인들에게 정신적 가치와 사상을 추구하는 것이 이방인의 눈에는 정치적 가치를 추구하는 글귀로 보였다.
서산 용문 입구
곤명호 리프트
해발 2,500미터 높이의 서산은 면적이 2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높은 산으로, 곤명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이다. 웅장한 삼림공원이 이루어져 윈난 성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산으로 꼽힌다. 마치 미인이 잠을 잔 듯하다고 잠자는 미인산으로 불린다.
셔틀버스를 타고 리프트카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데 언뜻언뜻 곤명호가 보인다. 리프트카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햇살은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여유롭게 이 길을 걸어 서산을 오르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엉성한 리프트카에 올라타고 한참을 올라가는데 발아래 호수가 넓게 펼쳐졌다.
20여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 만든 곤명호는 중국 서남지구 제1호수, 고원의 진주로 칭송받는다. 남북 36.6km, 동서 12.8km, 둘레는 약 170km로 아주 넓다. 호수 안에 두 개의 섬이 떠 있고 주변 풍경이 수려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호수 중간에 도로가 연결되어 삶의 터전에 곁을 내주고 있었다. 이 곳으로 모여든 물길은 양쯔강 상류로 흘러 나간다.
서산 절벽 난간
서산 난간 구조
리프트카에서 내리니 두 사람이 겨우 비껴갈 수 있는 좁은 길이 이어졌다. 아찔한 낭떠러지 바로 옆에 꽈배기처럼 생긴 난간이 서있다. 곤명 공항 2층 유리창에서 만난 리본 모양이 바로 여기, 서산의 상징이었구나! 좁다란 산기슭 한쪽에 정자가 서있기도 하고, 군데군데 석굴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기도 했다. 조그만 석굴 안에 향불이 피어오르고, 사람들은 기도를 하러 몰려들고 있었다. 중간중간 내려다보면 완전 수직 절벽이 보이고, 저 아래에는 곤명호가 수평으로 서산을 감싸고 있었다.
용문과 서산 곤명호
서산 용문
서산 풍경구의 제일 끝부분에 위치하는 용문석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끝에 위치한 동굴이다. 종교를 떠나 이곳에 모셔진 불상 앞에 묵념을 했다. 이곳을 만든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에 대한 인사라고 생각하며, 붉은 향불을 피었다. 굵은 향불은 뿌옇게 타오르고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급경사의 계단의 따라 내려오는데 곳곳에 사당과 불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당들은 지붕 끝이 살짝 위로 올라가는 구조를 갖고, 화려한 빛깔로 치장하고 있었다. 총천연 화려한 색감이 중국 이미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윈난성 민족촌
차마고도 조형물
다음날, 아침 일찍 남쪽으로 8km 떨어진 윈난 민족촌을 찾아갔다. 윈난 소수민족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윈난 성에 살고 있는 바이족, 나시족, 장족, 이족, 라후족, 모소족, 타이족 등 26개 소수 민족의 정취와 고유의 생활모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넓은 호수와 저 너머에 서산이 살짝 보이고, 키 큰 나무들이 독특한 건축물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상가가 늘어선 거리에서 소수 민족 사람들이 의례적인 무대공연을 하고 있었다. 독특한 옷차림과 행동으로 소수민족들의 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드 뱅뱅과 원초적이고 다양한 춤사위를 바라보니 문득 k-pop을 주도하는 아이돌 춤의 아이디어를 여기서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관람한 후 목조 5층 탑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차마고도에서 티베트까지 이정표와 차를 실는 말의 조각상을 지나면, 노란색 글씨가 새겨진 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면 10여 개의 마을로 구분되어 각 민족 고유의 생활과 문화를 재현하고 있다. 소수민족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순박한 미소로 맞이하고 있었다.
옥수수 매달린 아창족 민가
가장 먼저 아창족 민가를 들어가 보았다. 2층으로 된 집에는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으며, 칼을 잘 만든다고 했다. 덕앙족은 독실한 불교 신앙을 가진 민족이라 했다. 대나무가 자라고 있고, 자주색 목련꽃과 복숭아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와족 공연장
와족의 공연
둥둥 북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둥근 모양의 소뿔 광장 무대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를 조상으로 여기는 와족은 물소 머리뼈를 얼마나 많이 갖고 있냐에 따라 부자로 인정받는 부족이다. 인도의 후손으로 여자는 까맣고 긴 머리가 미의 기준으로 긴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추고, 남자는 칼춤이 유명하다. 자연숭배 사상 애니미즘이 있어 물소를 믿으며 마을 입구에 물소 해골을 걸어두고 있는데 살짝 경계심이 일지만, 막걸리를 먹는 민족이라 한다.
1300년 전에 이미 층층이 계단식 논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고, 보이차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소수민족이 하니족이다. 은장식을 즐겨하고 종려나무를 양손에 들고 추는 ‘부채춤’이 유명하다. 한 집에 3~4세대가 같이 살며 문자가 따로 없어 부족의 중요한 역사나 조상의 이름 등을 노래로 만들어 세대를 이어가며 기억한다. ‘부자 연명제’라는 독특한 방식이 있어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 끝 글자를 자신의 이름 첫 자로 쓴다고 한다.
누족 마을
알렉산더 지라드 디자인 작품
누족 민가 벽화
마을 입구에 그려진 둥근 모양의 그림은 마치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의 디자인 모양을 연상했다. 동물이나 사람의 얼굴 구조가 단순화된 디자인 이미지였다. 공간과 시간의 구애 없이 디자인이 갖는 힘을 느껴봤다.
화전을 일구며 옥수수 잡곡을 생산하는 누족의 가옥에서 아리랑을 비롯 작은 공연에 모두 흥겹게 시간을 보냈다. 누족의 가옥에는 소쿠리에 인물화 등 그림을 그려 벽면에 붙여놓았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화전을 일구는 부족이다 보니 화로가 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했다.
티베트 장족 마을
장족의 놀이 체험
1600만의 인구를 가진 티베트 장족은 삼보일배를 인생의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긴다고 한다. 장족마을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깃발이었다. 장대에 경전이 적혀있는 깃발을 세운 것을 룽다라고 하고, 경전을 적은 천을 만국기처럼 가로로 줄줄이 늘어놓은 것을 타르초라 부른다. 이렇게라도 경전의 내용을 안내하는 소박한 종교, 순수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마교 사원과 돌무덤 위에는 만국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토막 내 독수리의 먹이로 던져주는 티베트의 천장 풍속이 아직 남아있는데 장례를 치른 사람의 이름이나 사진을 돌무덤 옆에 세운다고 한다.
묘족 마을
묘족 마을 입구에서 은장식을 한 전통복장의 여성들이 서있었다. 둥근 모자와 둥근 치마를 입은 부족의 복장이 참 예뻤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대문 아래에는 말린 옥수수와 발효 중인 술독이 보였다. 붉은 천으로 항아리를 묶어놓았다. 묘족은 명랑하고 낙천적인 민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서양 종교를 받아들여 예배당이 마을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우산으로 장식된 태족마을, 호수를 끼고 치앙마이에서 볼 수 있는 코끼리 경기와 태국에서 볼 수 있는 가옥구조도 있다.
소수민족 거주지
기낙족은 일부다처제로 자연과 조상을 숭배하는 원시종교를 믿으며 태양을 숭배하는 듯하다. 마을 입구에 태양모양의 북이 있다. 북은 기낙족이 민속공연을 할 때 드럼처럼 반주를 했다. 또한 곳곳에 우리나라 장승 모양이 서 있어 어쩐지 익숙하다. 춤과 노래를 즐기는 보미족, 도교와 라마교를 믿는다. 백색을 좋아하고 숭상하는 백족은 가옥이나 담장에도 백색을 칠해 햇빛에 반사되게 해 아름답고 화려하다.
3대가 한집에서 모기장을 치고 사는 태가족, 검은색은 노인, 빨간색은 부부, 흰색은 아이를 나타내고, 공작새를 우상으로 여기는 민족이다. 태가족의 부도탑은 365개의 방울이 달려있다. 수족은 여자의 지위가 약해서 모든 집안일을 남자가 결정하고, 이혼의 경우 여자가 남자 집에서 사용한 결혼 비용을 배상해주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어머니 젖 모양의 장식을 많이 한 경파족, 전통 춤과 음악 공연 등 볼거리가 풍부하며 바이족의 다리 마을, 나시족의 리장 마을, 티베트족의 샹그릴라 마을 등이 인기 있다. 더앙족 사원, 수족, 포의족과 포랑족, 만족, 요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의 삶을 엿보았다. 같은 듯 다른 삶의 모습에서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석림 호수
석림 표지석
둘째 날,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두 시간 정도 달려 세계 자연유산 석림에 도착했다. 석림은 2억 7000만 년 전 바닷속의 바위들이 지상으로 융기되면서 형성된 세계 최대의 카르스트 지형이다. 돌기둥이 마치 나무 기둥처럼 솟아올라 숲 속의 나무처럼 생겨서 돌의 숲, 석림이라 이름 지어졌다. 이번 곤명 여행 목적 중의 하나가 석림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한때, 지형학을 공부하면서 얼마나 거대한 곳이길래 숲을 이루었을까? 보고 싶었던 곳, 기대가 큰 곳이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 9시에 바로 입장하려고 서둘렀는데 입구에 벌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흥겹게 춤추는 소수민족
셔틀을 타고 먼저, 대석림을 들어갔는데 전망대까지 사람들이 넘쳐 사진을 제대로 찍기 힘들었다. 너무 넓어 다 볼 수 없어 일정 구간만 잡아 빠르게 움직였다. 바위 모퉁이를 돌면 소수민족 사람들이 곳곳에서 민속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노래하고 있었다. 드디어 전망대에 올라 광활한 카르스트 지형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숲이었다. 햐~~ 자연의 위대함이란 이런 거구나!! 내려오는 길에 만난 넓은 광장에서는 관람객과 함께 소수 민족 남녀들이 전통춤을 추는데 단순한 가락과 몸짓이었다. 여행객들도 같이 춤을 춰서 나도 포크댄스처럼 함께 춤을 추었다. 한 발 성큼 그들의 세계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를 직접 체험해보는 것도 여행의 한 즐거움이다.
소석림 호수와 정자
소석림 전경
전동차 정류장 쪽으로 이동하여 소석림, 외석림지역으로 향했다. 소석림은 대석림의 1/5 정도의 규모의 아기자기한 작은 바위 숲이다. 외석림 투어는 전동카를 타고 넓게 펼쳐진 바위군을 한 바퀴 돌아보는 투어이다. 전동차를 타고 느긋하게 석림의 형태와 모양을 즐겼다. 넓은 들판에 기이하고 멋진 바위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연못과 야생화, 숲과 어우러진 바위군들의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다.
대석림과 소석림은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우리는 소석림 입구 호숫가 앞에서 내렸다. 호수를 낀 석림의 경관이 무척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 호수에 비친 바위군의 모습이 백미였다. 소석림 지역은 코스도 짧고 시설 등이 잘 갖추어진 곳으로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여유롭게 다니기 좋았다. 대석림이 웅장하고 남성적이라면, 소석림은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등소평이 방문하던 당시 정자에 물이 없다는 한 마디에 바로 호수를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다. 푸른 초원에 검은빛의 석림이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여기저기 다니다 도착한 곳은 아시마상이 있는 작은 호숫가였다.
소석림 아시마
소석림에서 가장 유명하고 볼만한 아시마 바위, 멀리서 바라보니 거대한 아시마 바위가 여인의 형상처럼 보인다. 아시마석 주변에는 아시마석을 보러 온 관광객들로 몹시 붐볐다.
이족의 한 분파인 사니족 젊은 연인의 슬픈 전설이 깃들여 있는 바위이다. 옛날 싸이족 마을 처녀 아시마와 청년 아헤이의 사랑 이야기. 마을 세도가의 아들 아즈의 방해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아시마는 죽어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어디서나 스토리가 있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이족의 여인들은 머리에 뿔 모양이 달린 모자를 쓰는데 처녀는 두 개의 뿔이 달려있다. 이족식 오리구이는 베이징 덕과 오리구이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석림에 자리한 소수 민족인 이족의 전통 요릿집에 갔는데, 베이징 덕보다 어린 오리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맛이었다.
구향동굴 표지석
윈난 성 10대 자연경관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곳이 구향동굴이다. 구향 풍경구는 석림에서 약 28km 떨어진 회족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중국 3대 종유굴 중의 하나로, 국가 4A급 관광지 겸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일반적인 동굴과 달리 동굴 내부에서 폭포가 흐르고, 지하로 내려가면 물과 하늘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신기한 곳이다.
구향동굴은 1984년 인근에 댐을 건설하다 처음 발견되었다고 하며, 구내 면적은 167km의 엄청난 크기로 수 백개의 협곡과 동굴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총 66개 동굴 중 일부만 공개하고 있으며, 관광지로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 종유석 동굴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구향동굴 사자상
동굴 입구에는 이 곳에서 많은 영화들이 촬영되었다는 안내판이 게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2005년에 상영된 영화 신화(神話)의 포스터가 눈에 뜨였는데, 당시 성룡과 함께 주연을 맡은 김희선의 사진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동굴은 협곡구간, 동굴 구간, 로프웨이 구간으로 크게 나뉘는데, 약 2시간 동안 루트를 따라 차례로 관람하게 된다. 약 5,7km의 거리를 오르락내리락 경사가 심한 계단들이 많고, 길이 미끄러웠다.
구향동굴 협곡구간
구향동굴 입구 집선곡
동굴 입구계곡의 높이가 50m에 달하는 협곡이 장관이었다. 집선곡이란 깊은 협곡을 거쳐 동굴 구간 투어를 시작하였는데, 협곡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의 위세가 대단하다. 협곡을 지나 동굴 입구인 고하천동이란 곳에 들어서자마자 중국 특유의 화려하고 빛나는 갖가지 색채의 조명이 동굴을 밝히고 있었다.
이 동굴은 약 6억 년 전 백운암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하며, 웅장한 카르스트 지형의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곳이다. 광장 한편에 있는 물고기 수족관, 동굴에 사는 물고기라고 하는데, 이 동굴은 고대 중국의 중요한 인류 생활 유적지라고 한다. 1999년 구향에서 발견된 5.5kg의 대형 영지버섯도 전시되고 있다.
구향동굴 선녀동
구향동굴의 하이라이트인 선녀동(仙女洞), 수많은 석순과 종유석이 갖가지 색깔의 조명을 받아 아름답고 신비스럽다. 화려한 조명은 오히려 자연석의 장관을 가리고 있었다. 종유석의 크기와 규모가 엄청나 억년의 세월을 짐작케 한다. 석순은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들어있는 석회질 물질이 동굴 바닥에 쌓여 위로 자란 암석이며, 종유석은 그 반대로 동굴의 천장에서 고드름처럼 매달린 형태를 말한다. 쭉쭉 길게 뻗은 갖가지 모양의 석순들이 종유석이 중국의 3대 종유굴다운 모습이었다. 동굴 입구에서 조금 나아가면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웅사대청 광장이 나오는데 이족의 공연장으로 사용되며, 세계 최초로 동굴 음악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구향동굴 신전
색다른 볼거리 자웅 폭포는 동굴 안에서 2개의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폭포로, 30m 높이에서 우렁차게 떨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동굴 안에서 폭로를 보다니 대단하였다. 자웅 폭포 포토존에는 운남 구향 자웅 폭이란 한자가 쓰여 있다. 특히, 신의 밭이란 곳은 마치 산악지형의 층계를 이룬 계단식 밭과 같이 생긴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큰 것의 면적이 약 30평이라고 하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종유석이라 하는데,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구향 동굴 안에 있는 폭포
억년의 키스는 동굴 물방울이 쌓여 만든 작품으로, 오래된 석순이 우뚝 솟아오르고, 뒤늦게 자란 종유석이 석순과 천천히 연결되어 키스하는 모양을 만든 곳이다. 수려한 종유석이 천장에 걸려있는 모습이 마치 석림의 축소된 모습이 거꾸로 걸려 있는 듯 장관을 이루는 곳도 있다. 이가채 광장을 지나, 리프트 타는 곳까지는 336개의 오르막 계단을 오르면 출구로 나오게 된다.
윈난 성 곤명은 버섯이 굉장히 유명한 곳으로 버섯으로 만든 요리들이 많다. 그중 송이버섯 샤부샤부는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커다란 도자기 냄비에 육수, 송이버섯, 대추, 배춧잎, 대추 등을 넣고 끓여 먹는 송이버섯 샤부샤부는 곤명 대표 특식이다. 운남 현지식 저녁을 먹고 밤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이동하였는데, 낡은 배터리를 보안검색대에서 뺏겼다. 힝~~
곤명에서 국내선 비행기 타고 약 50분 정도 지나자 도착한 곳은 리장, 한자로 여강이다. 리장은 가장 중국답고 이색적인 곳이라 여행객들에게 꿈의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리장 고성, 1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로 덮인 옥룡설산 등 신비로운 볼거리가 많아 중국인이 가보고 싶은 관광지 1위로 뽑히는 곳이다.
리장 하얏트호텔
리장 하얏트호텔에 짐을 풀고 나가보니 어둠 속에서 호텔 모습이 아름답다.리장 고유의 전통 장식과 현대적이고 럭셔리한 시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호텔로 야경이 기가 막혔다. 연회장이 수면에 비친 모습을 보고 반영을 찍었는데근사했다. 다음날 조식도 아주 훌륭하게 잘 나왔다.
새벽 달빛 옥룡설산
옥룡설산을 바라보는 사람들
아직 하늘이 깜깜한 시간이었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일찍 옥룡설산으로 출발했다. 옥빛 용을 머금은 거대한 설산인 옥룡설산은 마치 은색의 용이 춤을 추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옥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 그대로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다 하여 설산이다. 여강 서북구 20km 떨어진 곳에 웅장하게 서 있는데, 시내에서 옥룡설산의 주봉을 볼 수 있다. 중국의 명산으로 새해의 우렁찬 기운을 받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옥룡설산 4506미터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인 옥룡설산은 5,500미터 높이로 사람들이 빙천대세계 케이블카 타고 갈 수 있는 높이는 4506미터 정도. 이뇨작용 강화하는 고산약을 먹었더니 손끝이 찌릿찌릿하다. 고도가 높아지는 케이블카에서부터 굵직한 산소통을 코로 들이마시고 올라갔다. 보이차를 마셔가며 도착하니 눈으로 덮여있는 아름다운 풍광에 빠져들었다. 겹겹이 둘러진 산들 사이로 태양이 빛나고, 4,506미터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다리가 무겁다. 고산증세가 나타나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바람이 부는 곳에 눈보라가 날리는 옥룡설산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빨간 잠바를 독 같이 입은 중국 사람들이 종알종알하면서 몰려들고 있어 얼른 내려와 셔틀을 탔다.
옥룡설산 백수하
옥룡설산 반영 람월곡
폭포와 백수대를 흉내 내어 만든 계단식 석회암 층 위로 흘러내리는 백수하에 도착했다. 융설수 맑은 수면에 비친 옥룡설산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이다. 옥룡설산과 하늘, 구름이 반영된 호수를 바라보니 석회암 기반암 위에 하얗고 푸른 호수가 만들어진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가 생각났다. 옥룡설산에서 흘러내리는 옥빛 물을 모아 계단식 인공구조물을 만들어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백수하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신전 같은 구조의 계단식 모형이 인공물이라는 사실을 늦게 알았다.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푸른 달빛이 머무는 호수가 나온다. 쪽빛 수면으로 역시 수면에 반사된 설산의 모습이 아름답다. 마치 구채구 같다. 옥룡설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계곡물에 비친 달빛이 푸르다 하여 람월곡으로 불린 곳이다. 달빛이 머무는 쪽빛 호수라는 람월곡 이름 참 잘 붙였다.
옥룡설산이 보이는 동파만신원
동파경전이 그려진 신의 길
나시족의 상형문자
소수민족 중 이곳에 머무는 나시족의 신성한 성지 동파만신원을 찾다. 나시족의 살아있는 상형문자로 기록된 동파 경전이 신전으로 가는 바닥에 그려져 있다. 동파 상형문자는 1,700여 개의 글자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에도 사용되는 세계에서 유일한 상형문자이다.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을 만큼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 공예품에도 사용되어 또 문자 자체가 하나의 관광자원이 되었다. 나시족은 토템 신앙을 갖고 있는데 개구리를 숭상하고 개구리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어 절대로 죽이거나 먹지 않는다고 한다. 나시족 문자와 12 지신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것은 우리나라와 달리 고양이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인상여강쇼와 옥룡설산
인상여강쇼
나시족 현지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인상여강쇼를 보러 갔다. 해발 3,100M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서사극으로 500명의 소수 민족이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형 공연이었다. 삶의 터전인 자연을 배경으로 나시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인상여강쇼. 차마고도를 통해 장사에 나선 마방의 마상쇼와 떠나보내는 사람들, 차를 따는 나시족, 돌아온 마방들이 질펀하게 벌인 술판과 남편을 데리러 온 아낙네들의 귀가, 딸 시집보낸 친정엄마와 마을 사람들 이야기로 구성된 소박한 내용이다. 대규모의 예술을 구안하여 농번기 소득을 올리게 한 장예모 감독의 기획력이 돋보였다. 예술 공연 외에도 나시족 식당에서 보았던 대나무 틀 액자도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시용하는 삶의 모든 것들이 예술의 소재가 되고 상상력의 근원이 되므로 다양성의 인정이 참 중요하다,
설산이 보이는 흑룡담
고성으로 흐르는 흑룡담 물줄기
여강 시내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호수공원, 흑룡담은 나시족의 건축과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호수 속에 반영되는 둥근 돌다리와 옥룡설산의 경치를 볼 수 있었다. 공원 내에는 푸른 버드나무 고목과 누각, 정자 등이 서로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흑룡담은 옥룡설산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수정같이 맑은 물이 호수를 이루고 다시 고성으로 흘러내리는 곳이다. 맑고 차가운 물줄기가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나시족의; 마을 리장 고성
리장 고성 세계 문화유산 표시
흑룡담에서 나와 물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 나시족의 거주지 리장 고성이 나온다. 리장 고성은 800년 전 모습을 간직한 동화 속 마을로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나시족의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돌로 만든 다리, 버드나무 늘어진 강물, 우산과 오래된 거리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마을 풍경을 연출했다. 낮의 차분함과 밤의 화려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곳이라 운남 여행자들의 성지이다. 사방가를 중심으로 일상생활 공간을 불러볼 수 있는 곳이다. 서울의 인사동을 확대해 놓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리장 고성의 우물셋
리장을 끼고 옥룡설산 아래 서북의 차가운 바람을 피하고 동남쪽의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리장 고성의 해발고도는 2,400m, 면적은 3.8㎢ 규모이다. 리장 고성은 소수민족 나시족의 삶이 배인 곳이다. 고산 기후가 나타나는 계절풍 날씨로 여름에는 너무 덥지 않고 겨울에는 많이 춥지 않다. 일 년 평균기온은 12.6도다. 일 년 강우량은 950mm로 반건조기후 지역이다. 설산의 융설수와 강물이 3개로 나누어져 마을 안으로 흘러 들어와 모든 집 앞에 강물이 흐르고 있다. 우리가 묵었단 마방 객잔으로 꾸며진 호텔 중앙을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나시족은 3갈래의 강물 중 가장 윗줄 기는 마시는 물로, 중간 줄기는 밥하는 물, 가장 아래 줄기는 빨랫물로 사용하고 있다.
곳곳에 세워진 예쁜 다리
고성 골목길을 채운 멋진 우산
마을에는 총 300여 개 돌로 만든 다리가 있다. 맑은 물줄기를 건너는 다리, 초록색의 나무, 오래된 거리와 오래된 집들이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구성하고 있어 '동방의 베니스'라고 불린다. 이곳의 중심인 사방가는 명청시대부터 차 상업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바닥은 붉은색의 옥화석으로 되어 있어 비가 와도 발에 흙이 묻지 않고 돌의 무늬로 인해 거리의 아름다움이 더 돋보였다. 마을의 건물은 여러 민족의 민속을 융합한 나시족의 독특한 양식으로 형성되었다. 특히, 골목골목 하늘에 칼라플하고 아름다운 우산들이 걸려있는 풍경에 마음을 뺏겼다. 밤에 더욱 돋보이는 고성의 환하고 예쁜 우산들은 조명을 받아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야크 샤부샤부
석식으로 리장의 특산물 마방 전골, 야크 샤부샤부를 먹었다. 차마고도의 삶과 역사를 담은 특식으로 옛날 차마고도를 넘나들던 마방들이 야크를 잡아 냄비에 넣고 끓여서 먹었다는 야크 샤부샤부. 야크의 도가니, 꼬리, 껍데기, 천엽, 살코기와 각종 야채를 넣고 끓여먹는 보양식이다. 전골냄비를 둘러싸고 있는 철판에 버섯이나 감자, 옥수수빵을 올려 구워 먹을 수 있다. 짐을 싣고 먼길을 떠나는 마방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던 음식이었다.
고성 내 마방 객잔 왕푸호텔
왕푸호텔 회랑
리장 고성 골목은 볼거리, 먹을거리가 즐비했고 하천 돌다리에서 사진도 찍었다. 운남의 다양한 간식거리들이 산재해 있는 '미식거리'는 눈으로 구경만 하고 기념품 마그네틱 몇 개 장만했다. 마방들이 머물렀던 전통 객잔. 마방들과 무역상들은 고성 내에 객잔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여독을 풀었는데, 800년 전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면서 쾌적한 현대식 내부로 재탄생한 리장 왕푸 호텔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호도협을 향해 일찍 나섰다.
호도협 조각상
협곡을 흐르는 장강
리장에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호도협은 차마고도의 시작점이다. 호랑이가 뛰어넘은 협곡이라는 뜻이다. 호도협은 옥룡설산과 건너편 합바설산을 가르는 거대한 협곡으로 그 산세가 험해서 가파르게 굽이치는 물길이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쳤다. 계단 아래로 쭉 내려가 장강을 바라보니 호도협의 거센 위용이 느껴졌다. 옥룡설산과 마주 보는 사이 깊은 계곡을 용솟음치며 흐르는 금사강이 바로, 장강이며 양자강의 상류이다. 거대하게 굽이치는 장강의 뒷물은 도도하게 앞 물을 밀어내고 있는 모습에 '장강후랑 추전랑'이라며 시진핑 주석이 중국 속담을 인용한 기억이 떠올랐다. 협곡이 깊으니 강물이 힘차게 흐른다. 사람도 그렇다. 신념과 믿음이 강한 사람이 힘차게 도전하는 것이다.
차마객잔 오르는 구불길
호도협은 페루의 마추픽추, 뉴질랜드의 밀포드와 더불어 세계 3대 트래킹 코스로 통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곳이다. 호도협 입구에서 산 중턱 차마 객잔까지 지그재그로 이어진 산기슭을 봉고차 이동하는데 아찔했다. 운전기사가 여자라 오히려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급경사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백두산 용문봉에 지프 타고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이번 여행 가장 좋았던 차마고도 트래킹이 시작되었다.
차마고도 구간
중도객잔 난간 장식
아침 8시에 트레킹을 시작하니 햇빛이 사선으로 들어와 눈이 부시고 높은 봉우리에는 황금빛이 투영되었다. 당나귀에 차와 비단을 싣고 부지런히 다녔을 옛사람들이 생각났다. 지금도 나귀 코스가 있지만 차마 객잔에서 중도 객잔까지 도보로 트레킹을 했다. 상쾌함 가득 담아 걷는 산비탈 좁은 길들이 멋지고 환하게 트여있어 걷기에 참 좋았다. 저 아래 굽이치는 호도협의 물줄기가 보였고, 멀리 하얀 합바설산이 이정표처럼 보였다.
졸거나 멍하니 걷다가 아차 하면 굴러 떨어질 낭떠러지 길을 가는 말 등에 차를 담고 다녔을 사람들이 중간중간 쉬었을 중도 객잔에 도착했다. 하프웨이, 나무로 이어놓은 hal fway라는 글귀가 옥상 난간에 걸려 있는데 햇빛 받아 빛나고 있다. 옥수수를 말려 널어놓은 것을 보니 산골마을이다. 나무로 만든 집과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경치를 가진 화장실은 아직도 기억에 난다. 호도협 트레킹 후 이층 옥상에서 햇살을 받으며 편안하게 흔들의자에 앉아 힐링타임을 가졌다. 이후 점심으로 중도객잔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오골계 백숙, 감자튀김 등은 한국인들 입에 맞고, 기타 반찬도 맛있게 먹었다.
합바설산
두어 시간쯤 버스 타고 가다 산골 휴게소에서 잠시 내려 건너편 합바설산을 보니 거대한 고원이다. 만년설이 뒤덮은 합바설산 높이는 5396m,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성산으로 알려져 있다. 이윽고, 도착한 샹그리라. 눈 덮인 설산을 바라보며, 샹그릴라는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처럼 소박한 평화와 아름다운 믿음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원래 지명은 중뎬이었으나, 2001년 샹그릴라라고 개명하였다.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푸른 달빛의 산골짜기를 뜻하며, 내 마음속 해와 달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샹그릴라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지명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로 묘사되었다. 히말라야 인도의 라다크, 네팔의 포카라, 중국의 중뎬까지 모두 비슷한 정취를 가진 지역들이 서로 샹그릴라라고 소개하고 관광 산업화했으며, 1997년 중국 정부에서 중뎬이 샹그릴라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이곳은 티베트족이 50% 정도 거주하고 있고, 후이족·먀오족 등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저위도 지역이지만, 평균 해발고도 3,459m, 산악지형이 전체의 약 93%를 차지한다. 고도가 높아 연평균 기온이 15도로 여행하기 좋다. 눈 덮인 산, 계곡, 호수, 울창한 숲 등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시내 관광소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소박한 장족의 마을로 들어가 이장 집을 찾아갔다.
경당 옆 난로와 사진
따뜻한 미소와 순박한 모습으로 맞아주는 안주인을 따라 들어간 집의 1층에는 축사와 곡식 창고가, 이층에는 생활공간이 있고 그 곁으로 경당이 자리 잡았다. 온 가족이 매일 아침 모여 예불을 드리고 기도하는 경당은 아담하지만 존엄하고 거룩하다. 집안에 경당을 짓는 비용은 대략 한국 돈 약 1억 원가량부터 시작된다. 돈 벌어 경당을 더 크고 좋게 짓기 위해 알뜰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제단 중심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과 봉헌물들이 놓여 있다. 경당 옆 생활공간은 사각형의 구조로 나무 선반에는 호박처럼 생긴 기름이 걸려있고, 난방 겸 취사 용도로 쓰는 3개의 난로, 두툼한 기둥, 색색의 조각 천을 이어 영혼이 하늘로 간다고 믿는 만장이 이어져있다. 그리고 그 옆에 시진핑의 사진이 걸려있다.
장족의 밥상
식탁 위에는 안주인이 정성스레 차려둔 전통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갓 구운 장족의 전통 빵, 야크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 야크 젖과 버터를 넣고 끓인 수이차의 맛은 따뜻하고 담백하다. 고소한 수이차는 온기가 사라지면 비릿한 맛이 느껴지기 때문인지 찻잔에 수이차를 쉬지 않고 채우는 안주인의 인상이 너무 곱다. 거절해도 웃는 얼굴로 더 들라며 따라주는 안주인의 눈빛은 따뜻했다.
삶이 터전인 도로 뒤편 마을은 옛 우리네 모습이다. 돼지와 야크, 닭이 한데 모여 거닐고, 집 앞마당을 청소하거나 리어카를 끌고 비탈길을 내려가는 모습, 그리고 잊혔던 화려한 색감의 포대기로 아이를 둘러업은 할머니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라무양춰호수
송찬림사 계단
송찬림사 스님
마을 길을 따라 신의 호수라고 불리는 라무양춰 호수에 닿으면 중앙에 작은 포탈라라고 불리는 송찬림사가 있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서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절은 1681년에 준공된 윈난성 최대의 라마교 사원이다.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황금빛 사원 위를 날아드는데 인근에 천장 터가 있어서 마치 죽은 자의 영혼을 사원으로 데려오는 듯하다.
사원으로 가려면 144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산소통을 몇 번 주입하고 올라갔지만, 밀려오는 고산증세로 숨이 더욱 가빠지고, 모래주머니를 찬 듯 두 다리는 뻐근해 중간중간 쉬어야 했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보니 합바 설산이 마을을 하얗게 감싸고 있었다.
사원은 크게 라마교를 들여온 쫑카파를 모시는 대전, 스님들이 수행하는 자창대전, 석가모니를 모시는 석가모니 대전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경당과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붉은 옷을 입은 스님이 지나가서 합장 인사를 드렸다. 자창대전 내부는 색색의 거대한 만장 수백 개가 빼곡히 매달려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사원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호수 옆 탑을 둘러보고 고성으로 향했다.
샹그릴라 고성
샹그릴라 고성 오색기
샹그릴라 고성은 300년 티베트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옛 차마고도의 중요한 물산 집산지였던 이 곳에서 티베트 전통의상과 의식, 티베트의 식문화 등을 만날 수 있다. 리장의 고성보다 더 고즈넉한 이곳은 2014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돼 현재 복구 중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고풍스러운 고성의 중앙에 중국 군사박물관이 세워져 있고 정원에는 중국 군인 조형물이 서있었다. 뉴스에서 보던 티베트인들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분신 시위 현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중국은 촌스러운 그림으로 이념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티베트족의 독립운동에서 아픈 우리 역사가 떠올랐다.
세계 최대 마니차
우리네 역사와 닮은 듯 다른 티베트의 역사를 돌아보며 역시 높은 계단을 낑낑대며 올라갔다. 황금 대형 마니차를 찾아갔는데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돌리고 있었다. 힘을 합쳐 밀어보니 거대한 마니차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마니차는 불교 경전이 적혀있는 원통으로 티베트에서는 마니차를 한 바퀴 돌리면 불경을 한번 읽은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샹그릴라에서 저녁을 먹고 중뎬공항에서 동방항공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곤명으로 돌아오니 고산증은 싹 사라지고 없었다. 곤명 공항에서 귀국할 때 나의 손에 들린 기념품은 바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차가 아닌 커피!!! 차마고도 대신 이젠 커마고도가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