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절정으로 무르익던 지난해 11월 초, 친구와 새벽 6시 기차를 타고 2시간 넘게 달려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KTX 신경주역이 경주 시내에서 약 50분가량 떨어져 있다. 이동이 불편한데, 웃으면서 마중을 나와준 지연이 덕에 편안하게 여행을 시작했다.
보통 경주를 떠올리면 여고시절 수학여행 다녀온 고분들과 불국사, 첨성대, 석굴암 등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가을 여행은 경주시내를 여행 범위로 정했다. 시간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경주 사람들 사는 모습과 경주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동리마을 은행나무 숲
시내로 가는 길 중간, 심곡지 도솔사 앞에 위치한 도리마을에 들렀다. 블로거와 SNS상의 핫스폿이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거나, 눈이 쌓이면 포토그래퍼들의 발걸음이 바빠지는 곳이다. 청명한 하천이 바로 옆으로 흘러 동리마을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묘목 판매를 위해 열 맞춰 빽빽하게 심은 은행나무들이 위로만 쭉 뻗어 늘씬한 모양새이다. 쭉쭉 뻗은 나무들은 인제의 자작나무들처럼 길다란 정취를 뽐낸다. 11월 초이다 보니 그새 잎이 많이 떨어졌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은행나무 숲, 마을 전체가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들 알고 여기 작은 마을에 사진 찍으려 찾아왔을까? 아침부터사진작가들이 몰려와 동리 전체가 시끌벅적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나는 몰랐다. 경주에 이런 예쁜 동네가 있다는 것을! 친구와 함께 은행나무 옆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어느 집 담장에 쓰여진 '내가 너에게 설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날이구나.'글귀가 마음을 끌었다.
옥산서원 입구 세심마을
옥산서원 가는 길에 만난 세심마을에도 가을이 가득 담겨있었다. 마을 입구의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는 진입도로마저 노랗게 물들였고, 담장은 알록달록 옛 모습의 벽화로 채워져 있다. 벽화가 그려진 옛고을 식당에서 간장 게장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옥산서원 가는 풍경은 마치 그림엽서를 보는 것처럼 근사했다. 정갈한 마사토 길을 걸으며 옛 시절 선비들이 즐겼을 가을을 떠올려봤다. 왼편에 나뭇잎이 떨어져 쌓인 자개천에 고개 내민 물줄기 속으로 반영된 경치가 근사해서 한컷.
옥산서원 가는 길 자개천
옥산서원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곳의 서원 중 한 곳인 옥산서원. 양동마을의 일부로 사적 제154호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건립된 서원이다. 정문인 역락문을 통해 들어가면 무변루가 보인다. 누마루를 서원 건축에 도입한 최초의 사례로 소개되는 누각이다. 누각이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병산서원 만대루와 견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무변루이다.
정면에 공부하는 장소인 강당 ‘구인당’이 있고, 옥산서원 편액이 걸려 있는데, 강당 대청 편액은 선조에게 '옥산'이라고 하사 받은 편액이고, 강당 전면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이언적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을 비롯해, 신도비, 전사청 등이 배치되어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도 훼손되지 않은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남은 곳이다.
옥산서원 너른 바위
너럭바위 사이 세심폭포
옥산 서원 옆 너른 바위로 나와 가을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화개산을 배경으로 커다란 너럭바위 사이에 자개천이 흐르고, 세심폭포가 소리 내며 흐르고 있었다. 나뭇잎이 무성하여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던 중 아차! 구덩이에 쑥 빠져버렸다. 헉!! 가을에 흠뻑 빠져버린 날.
옥산서원 주변 시냇물을 끼고도는 바위 다섯 곳이 오대인데, 그중 세심대는 용추에서 떨어지는 물로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는 곳이라 한다. 살아보니, 마음을 씻어내는 일이 쉽지 않은 않은데 학자들은 자연에서 그렇게 노력했나 보다.
독락당 가는 외나무다리
자개천 위에 통나무로 된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외나무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 계단 위로 올라 쭉 들어가면 독락당으로 가는 길이다.
독락당은 홀로 즐기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언적이 직접 설계하고 이름 붙였다. 독락당은 자연과 벗하고 학문과 수양에 전념하고자 만든 정자(계정)이다. 반석 위로 흐르는 자개천과 계곡에 접한 절벽에 걸터앉은 계정은 운치 있는 흙 돌담과 어우러져 자연친화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독락당 옥산정사
담장으로 둘러싸여 독립된 공간을 이루는 독락당은 원래 사랑채였으나, 지금은 집 전체를 의미한다. 행랑채 옆으로 토담과 토담 사이의 흙길을 지나면 개울이다. 투박한 흙담과 흙길 따라 사랑채에 들어서면 독락당 정면에 걸린 편액 옥산정사가 눈에 들어온다. 편액은 이황이 썼고, 마루 안쪽의 독락당 편액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의 글씨다.
독락당은 마루와 사랑방으로 나누어진다. 자연을 향해 열린 독특한 구조로, 사각형 창호를 통해서 계곡 물을 바라볼 수 있다. 토담 사이로 들리는 계곡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곳에 머물고 싶어 진다.
독락당의 별채 계정
독락당 아래 징검다리
독락당 뒤편 별당인 계정이 참으로 아름답다. 자개천 자연암반 위에 기둥을 세워 토담을 둘렀다. 맞배지붕의 날렵한 모습으로 지어진 계정은 2칸 대청과 1칸 온돌방으로 되어있다. 건물 측면에 문을 내 산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또한 쪽마루를 덧대어 계자 난간을 두른 소담한 집이다.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계정 난간에 기대어 보니 옛 선비의 멋스러운 풍류가 느껴진 곳이었다. 개울가에 가로 놓인 징검다리마저 한 폭의 그림이다. 친구와 손을 맞잡고 물속에 반영된 모습을 즐기며 사진 한컷 남겼다.
정혜사지 13층 석탑
독락당에서 북쪽으로 400m 쯤 올라가면 정혜사지와 5.9m의 13층 석탑이 남아 있다. 국보 제40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흙으로 쌓은 기단 위에 몸돌을 차곡차곡 쌓은 탑이다. 1층 몸체 중앙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있지만, 감실의 부처는 사라지고 없다. 2층부터는 몸돌의 너비와 높이가 크게 줄어들지만 몸돌이 절묘한 비례를 이룬다. 신라 시대 석탑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경주 교촌마을
경주최씨 고택과 경주 교동법주가 자리 잡고 있는 교촌마을은 경주 최부자의 얼이 서린 곳이다.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키고,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최부자집에서 가훈처럼 내려온 원칙이 있다.
“벼슬은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오늘날 기업가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정신이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곳에는 원효대사와 사이에 설총을 낳은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부근에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려 있는 계림과 내물왕릉, 경주향교, 김유신 장군이 살았던 재매정이 있다.
한옥이 길게 이어져있어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교촌마을에 다양하고 이색적인 체험장이 들어서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징검다리에서 보이는 월정교
통일신라 경덕왕 19년, 궁궐 남쪽 문천에 월정교,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알려진 곳이 월정교이다. 조선시대에 유실되어 없어진 것을 10여 년 조사 및 고증과 복원을 진행해 2018년 4월 완료했다. 문루 2층에는 교량의 복원 과정을 담은 영상물과 출토 유물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다.
낮에는 월정교의 자태를 오롯이 볼 수 있고, 밤에는 수면에 비친 모습이 대칭되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월정교 앞 징검다리에서 친구와 근사한 사진 한컷 남겼다.
동궁과 월지 야경
신라 별궁 터, 문무왕 14년 황룡사 서남쪽에 조성된 동궁과 월지는 경주의 대표적인 야경 명소이다. 조선시대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어 안압지로 불렸었는데, 1975년 유물 발굴 결과 신라시대 때 '월지'로 확인되어 2011년에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됐다.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인 월지는 남서쪽의 둘레는 직선인데 반해 북동쪽은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임해전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각이라는 뜻으로 연못 월지의 조경이 바다를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큰 연못 가운데 3개의 섬을 배치하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12개 봉우리를 만들어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동물을 길렀다고 한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은 환상적이고 대단했다. 수면에 비친 아름다운 임해전을 비롯, 수많은 노송들이 어우러져 수면에 대칭되었다. 한 바퀴 빙 돌아 나오게 되어있다. 이곳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신라의 유물이다.
솔거 미술관에서 보이는 아평지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도 자연과 함께하는 숨은 비경이 있다. 아름다운 연못과 고즈넉한 산책로를 이룬 아평지, 연지, 계림지가 있다.
아평지는 경주타워 뒤편에 위치한 솔거 미술관에 이어져 있다. 1921년 남한 땅에서 마지막으로 백두산 호랑이가 잡힌 대덕산을 병풍 삼아 위치한 자연연못이다. 미술관에 앉아서 내다보니 잔잔한 아평지가 눈에 들어왔다. 색색의 국화꽃이 함께해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솔거 미술관을 관람하고 아평지 산책로를 걸으면, 82m 높이의 경주타워와 중도타워가 연못에 보인다
연지 윗부분
연지 아랫부분 다리
내려오는 길에 경주타워 뒤편에 위치한 연지를 만날 수 있다. 연못이 연꽃 모양을 닮아 연지라고 이름 붙여졌다. 수령 500년이 넘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하고 그 사이로 아담한 다리가 있어 핫스폿 명소로 알려졌다.
비밀의 화원같은 연지는 물속에 비친 반영이 너무 아름다웠다. 연지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다리가 놓여있어 운치를 더했다. 물속에 반영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친구는 그림엽서의 한 부분처럼 자리 잡았다.
경주 타워 앞 계림지
경주타워 앞 계림지는 동궁과 월지 모양을 본 딴 연못이다. 계림정이라는 정자가 서있고, 장보고가 신라와 당, 일본과 중개무역을 할 때 사용한 교관선이 설치되어있다. 무역선을 1/3로 축소한 10m 길이의 목선이다. 계림지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는 애니메이션 천마의 꿈 주인공 기파랑과 선화공주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첨성대와 핑크 뮬리
국보 31호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에 세워진 천문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건축물이다. 27층을 쌓은 첨성대의 높이는 9.4미터, 362개의 화강암 벽돌을 사용하여 원통형으로 축조했다. 꼭대기에는 다시 우물 정 모양의 2층 천장돌이 있는데, 이는 신라 자오선의 표준이 되었으며 각면이 정확히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키고 있다.
첨성대는 천문 상징과 과학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형태도 미학적이다.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과 원형을 적절히 배합해 안정감 있고 편안한 인상을 준다. 맨 위 정자석의 길이가 기단부 길이의 꼭 절반으로 된 것도 안정감을 표현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첨성대를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핑크뮬리와 억새의 장관이었다. 드넓은 공원으로 조성된 첨성대는 주변 유적지와 연계가 잘 되어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첨성대, 경주의 역사이면서 또한 미래를 향해가는 대표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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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왕릉의 가을
사적 제180호로 지정된 진평왕릉을 찾았다.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제26대 진평왕. 그는 독자적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중앙 행정부서를 설치하였고, 중국의 수·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통해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효율적으로 막았으며, 경주 명활성을 보수하여 수도 방위에도 힘썼다.
높이 7.9m, 지름 36.4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 무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돌을 둘렀으나, 지금은 몇 개만 남아있다. 다른 왕릉이 무인상, 문인상, 돌사자, 호석과 돌난간, 능을 감싸는 도래솔 등 화려한 장식을 갖고 있다면, 진평왕릉은 장식 없이 소박한 왕릉의 모습으로 아담한 숲을 갖고 있다.
유홍준 교수는 진평왕릉을 두고 꼭 보아야 할 경주의 보물 세 가지 중 하나라고 평했다. 그는 경주를 알려면 진평왕릉, 장항리 절터를 가보고, 성덕대왕신종 치는 소리를 직접 들어보라고『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소개하고 있다.
진평왕릉 맞은편 보문 들판
왕릉으로서의 위용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고분은 진평왕릉뿐이라고 했다. 고목들이 왕릉을 감싸며 숲을 이루는 모습이 조화롭다. 고목들이 지켜주는 힘이 있어서인지 편안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잔디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무에 기대어 가을 햇살을 즐겨보기도 했다. 그냥 편안한 이 기분은 뭘로 해석해야 하나? 보문 들판의 한가로움이 한몫을 한 것인가? 오래도록 머물다 가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왕릉이었다.
황복사지 석탑과 보문들판
보문들판을 사이에 두고 진평왕릉과 동-서로 마주한 곳에 신라 고승 의상이 출가한 곳으로 알려진 황복사지가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김대성이 이곳에서 신라 고승 표훈에게 화엄을 배운 적이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황복사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순금으로 만든 여래입상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나왔다. 사리함에 새겨진 글을 통해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탑을 세웠고, 성덕왕이 석탑의 2층에 불사리 4개와 순금 아미타불상,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을 넣으면서 왕실의 안녕과 중생의 구제를 기원했음을 알게 되었다.
가을 들판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고, 바람은 따뜻하게 불고 있었다. 경주 시내 옛사람들의 이야기와 흔적을 만나보는 여행이 참 좋았다.
경주 마지막 코스는 법원 앞에 위치한 카페 Krug이다. 젊고 스마트한 사장 내외의 경주 걷기 명소와 관련 이야기를 전해 듣고, 패션후르츠 진액이 담긴 에이드로 경주 가을 여행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