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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Jul 28. 2021

제주 5-초록빛과 수국에 물든 제주

초록초록 숲길과 화려한 수국을 만나는 6월 제주여행

6월 초, 제주행 18시 30분 항공기 오른쪽 창가 좌석은 대단했다. 창문으로 내려다본 서해안은 한 편의 그림이었다.  청색과 보색 대비를 이루는 주황빛의 강렬함이 바다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며칠 비가 오더니 드디어 오늘, 화려하게 붓칠을 하는 듯하다. 역시 사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빛과 방향인 듯하다. 이번에는  엽서처럼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기대감과 함께, 초록초록 오름의 숲길과 갖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피어나는 수국을 만날 생각에 한층 기대되었다.



항공기에서 찍은 서해안 석양
제주 공항 활주로


제주 공항 활주로를 가득 덮은 붉은 노을을 만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 하늘은 온통 붉었다. 제주도 사람들도 해변으로 뛰쳐나오게 하는 이번 노을은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붉게 태우고 있었다. 그동안 제주 여행 중 이런 노을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 노을 빛깔 정말, 대단했다.


무지개 도로에서 바라본 붉은 바다


무지개 도로에 세워진 낚시 조각상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경외의 눈빛으로 붉은 하늘과 바다를 향해 멍하니 서있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들은 지상에 떨어진 별들처럼 반짝거렸다. 모두들, 붉은 노을처럼 난 너를 사랑해, 세상 너뿐이야... 노랫말이 저절로 흥얼흥얼.

친구 셋이 대전과 부산, 그리고 인천에 각각 살다 보니 제주에서 만나고 제주에서 헤어지는 여행이 서로에게 편하다. 미리 와있던 대전 친구 역시  도두봉 무지개 도로에서 노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랜만이어서 반갑기도 했고, 이런 노을을 함께 보게 되어서 또한 좋았다.


조릿대로 뒤덮인 한라산 등산로
사라오름의 고요한 아침


서귀포 법환포구 범섬 앞에 위치한 유러하우스로 이동, 짐을 풀고,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4시 20분경, 편의점에서 캔 막걸리 1개 구입, 서둘러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했다. 잔뜩 겁을 주는 안내인의  정보에 귀 기울이며,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5시가 되자, 드디어 문이 열리고, 미리 예약한 우리도 한라산 입장을 시작했다.

백두대간 등산하던 시절 같으면 별 어려움이 없겠지만, 최근 등산을 하지 못해 두려움이 있었다. 경사가 완만한 한라산이라 천천히 오를만했으나, 복병은 거친 현무암의 날카로움과 긴 시간이었다.

다행히 친절한 이정표는 250미터마다 세워져 길을 안내하고, 누구라도 안심하고 갈 수 있도록 대비해놓았다. 느릿하고 여유롭게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전 친구는 대청호 둘레길을 다니며 뜯은 쑥으로 맛나고 찰진 쑥찰떡을 만들어와 사람들에게 쑥떡 보시를 했다. 흐뭇한 광경이었다.

조릿대 사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던 푸른 활엽수들이 점차 관목으로 바뀌었다. 등산로 중간중간 쉼터 벤치에 숨을 고르던 차에 왼편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니 사라오름, 빛 고운 산정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사라오름 정상 산정 호수
사라오름 전망대에서 보이는 한라산 경관



예전보다, 호수의 물은 조금 작았지만 사라오름 현무암들은 슝슝 뚫린 구멍들과 거친 질감, 검붉은 빛깔로 살아있는 제주 화산섬을 말해주고 있었다. 오름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정호수의 둘레는 약 250m 정도이다. 노루 떼들이 풀을 뜯거나 물을 마시면서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아침 햇살에 까만 날개짓 하는 까마귀와 새들을 볼 수 있었다.

호수 반대쪽 계단을 올라가면  사라오름 전망대가 나온다. 한라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바로 옆에 있는 듯하여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얀 구름도 투명한 햇살도 길을 열어주고, 능선 따라 초록초록 나뭇잎들도 어서 건너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사라오름 전망대에서 컵라면과 캔 막걸리 한잔, 기가 막힌 추억이 되었다.


카페 글렌코 화장실과 수국
카페 글렌코의 수국 정원


한라산을 내려와 구좌읍 송당리에 위치한 감성카페 글렌코를 찾아갔다. 샌드위치와 감귤 주스로 허기를 채우니 노곤해져 눈이 감겼다. 편안한 소파가 마련되어 있어서 뒤로 드러누워 쉬었다. 카페는 편리성이 좋았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컨디션 조절하고, 정원으로 나오니 곳곳에 다양한 수국들이 곱다. 유럽 수국이긴 하지만, 신선하고 예쁘게 전시되고 있었다. 사이사이 편안하고 칼라플한 의자와 구조물들이 멋을 더했다.    

 카페 글렌코는 꽤 넓은 땅에 계절별로 꽃과 나무가 반겨주는 정원카페 핫플레이스이다. 이곳의 보라와 초록으로 칠해진 화장실 건물 또한 눈길을 끈다. 계절마다 다양한 꽃들이 반겨주는 이곳의 6월은 유럽 수국이 화려하게 피어고 야외 정원은 수국 천지로 알록달록 매우 아름답다.


종달리 수국 테마 거리
종달리와 지미봉-제주 관광공사


카페에서 나와,  동부에 위치한 종달리 마을 수국테마 거리로 향했다. 구좌읍에 위치한 해변 도로 양 옆에도 몽실몽실한 수국이 줄지어 있다.  흙의 산도에 따라 하늘색에서 분홍색까지 다양하게 피어난 수국 꽃길이 바다를 따라 길게 이어져있다. 해안 드라이브에 인기 있는 명소이다.

한때 질 좋은 소금 생산으로 유명했던 종달리라는 이름은 '통달함을 마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안가 용천을 중심으로 터를 잡은 종달리에 아직 샘터의 모습을 유지하는 엉물, 앞바다 큰 바위를 섬기며 제를 지내는 생개납 돈짓당, 해녀들이 옷 갈아입거나 휴식을 취하는 불턱 등이 남이 있다.

올레 21코스 지미봉은 과거 봉화로 마을의 행정, 군사 상황을 알렸던 곳인데, 전망대에 오르면 종달리와 성산일출봉, 우도 등 제주 동쪽 비경을 볼 수 있다. 종달리 여행은 제주의 소박한 삶을 엿볼 수 있어 나름 좋다.


애월 아르떼뮤지엄


부산에서 날아온 또 다른 친구를 싣고 서쪽 애월 부근의 아르떼뮤지엄으로 향했다. 애월 해변 쪽으로 지나는데, 길 모퉁이를 지나  갑자기 아르떼뮤지엄 간판이 툭 튀어나와 하마터면 지나칠 뻔 헸다. 아르떼뮤지엄은 1,400평 규모의 스피커 제조공장 건물을 활용해 국내 최대 규모의 몰입형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거대한 미디어 아트 공간이 생긴 셈이다. 8천만 개 LED가 뿜어내는 빛의 예술, 시공을 초월한 자연을 주제로 빛과 소리와 향기의 작품을 감상하는 멋진 곳이다.


슈퍼 네이처의 색감
미디어 아트-고흐의 그림


디스플레이 속 영상이 수시로 바뀌며, 색감이 화려해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높이 35m, 폭 11m에 달하는 미디어 월에서는 폭포수가 쏟아지거나 비가 내리는 장엄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달과 폭포,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거대한 고래 한 마리는 가상이지만, 그 움직임은 생생한 실재감을 전해준다. 나무에 손을 대니 꽃이 피어나고, 벽화 속 동물들도 깨어나 숲을 뛰어다닌다. 총 10개의 전시관이 있으며, 작품은 3~6개월에 한 번씩 교체된다.


무한 확장 해변과 웨이브, 오로라
애월 해변 저녁노을


거울을 통해 무한 확장된 해변은 날씨나 시간에 얽매지 않고 완벽한 모습이다. 몰아치다가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초대형 파도 웨이브도 장엄하다. 특히 디지털 바다에서 푸른 오로라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코로나 시국에 아이슬란드까지 갈 수 없는데, 아르떼의 전시에서 만난 푸른빛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 같다.  

애월 해변가로 가서 해지는 모습을 무심하게 보았다. 워낙 강렬한 이틀 전의 노을이 떠올랐지만, 바다를 물들이며 나름 잔잔한 멋을 드러내고 있었다.


유러하우스 전면 범섬
유러하우스 전경


법환포구 범섬 바로 앞에 위치한  유러하우스로 돌아왔다. 크지 않은 숙소 공간에 셋이 모여 분주하긴 했지만, 서로 챙기는 덕분에 서둘러 나올 수 있었다. 이른 새벽 5시, 이번에는 한라산 철쭉을 만나러 윗세오름으로 향했다. 영실기암의 오백나한을 만나고, 한라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윗세오름을 올라가는 쉽지 않은 코스였다.


초록초록 6월의 한라산
영실기암과 탁 트인 전경


윗세오름은 초록 나무 사이 계단을 오르게 되어 조금 더 편했다. 6월에, 그것도 제주도에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푸른 숲길을 걷는 것은 행복이다. 상큼하고 시원한 숲길을 지나 뒤를 돌아보면 푸른 바다와 탁 트인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을 대표하는 영실기암은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과 흡사하다 하여 영실이라 부르는데, 사계절 아름다운 모습과 울창한 수림을 선물하는 곳이다. 산허리에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들이 하늘로 솟아 있고, 병풍바위와 오백 나한상이 늘어서 있다.  오백나한 관련 설화는 제주 지형 여행 편에 정리해놓았다.


한라산 고사목지대
윗세오름과 한라산


윗세오름 가는 길에 고사목 지대를 지나는데 대학시절 이곳을 왔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는 4월 중순이었는데 해안가에서 몹시 더웠다. 한라산 중턱부터 눈보라가 몰아치고 미끄러워서 고사목에 앉아 쉬었는데 6월의 한라산은 평온하다.  

윗세오름은 한라산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오름이다. 붉은 오름이 1,740미터로 가장 높다. 1,711미터 누운 오름, 1698미터 족은 오름이라는 3개의 오름으로 이어져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한라산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누운 오름 아래는 연중 물이 흐르는 노루샘이 있고 그 주변에 백리향, 설앵초 등이 자라는 고원 습지가 넓게 펼쳐 있다. 특히 선작지왓이라 부르는 곳에는 털진달래의 연분홍색과 산철쭉의 진분홍색이 고원 습지를 뒤덮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한라산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조릿대 가득한 고원 습지
백록담 동벽과 남벽


조릿대가 넓게 자라는 고원 지대와 습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대피소가 있다. 이곳에서는 백록담 대신 웅장한 동벽과 남벽을 볼 수 있고, 남한 최고봉 한라산의 위용을 만날 수 있어 좋다. 6월에 화사한 이곳, 너무 아름답고 웅장하다. 워낙 높으니 겨울은 눈으로 덮여 하얗게 변할 것이다. 한라산 설산을 보기 위해 다가오는 겨울에 이곳을 다시 찾아와야겠다.

 

카페 60빈스 앞 해안 경치
카페 60빈스의 수국들


윗세오름에서 내려와 외돌개 부근 카페 60빈스라는 곳에 갔다. 올레길 7코스에  전망 좋고 정원 예쁜 이곳에 수국이 예쁘게 심어져 있었다.  잘 가꿔진 보라색과 하늘색 수국들이 고개를 내밀고 화사하게 반겨준다. 여러 조각품으로 정원을 나름 잘 가꾸어 놓았지만, 정원보다 바다 풍경에 더 매료되는 곳이다. 바다 경치 따라 올레길을 쭉 걷다 보면 바다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법환포구 해녀체험장 앞바다
법환포구 범섬


제주 4일차, 새벽에 법환포구로 나갔다. 동트는 바다에 빛이 반사되고 있었고, 바다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니 출렁이는 물결이  넘어올 듯했다. 다행히 바다는 참으로 잔잔했다. 신비한 느낌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사진에도 그렇고 사는 데에도 그렇듯 빛은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일을 한다. 빛은 어둠을 밀어내고, 하루의 시작을 경건하게 알려준다. 식물을 생장시키며, 사물과 존재를 드러나게 해 준다. 빛이 올라온다는 것은 새롭게 또 시작한다는 것이다. 삶이, 매 순간들이 참 소중해진다.

새벽 바다에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니 이 마을을 통째로 빌린 듯했다. 조용한 포구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좋다. 나의 삶에 한줄기 빛은 이런 시간을 갖는 것!

 대전 친구는 제주도를 참으로 사랑한다. 제주에 있다 보면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바닷가 소천지
소천지 전경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소천지로 향했다. 제주대학교 연수원 부근, 바닷길 따라 도로에 작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백두산 천지를 축소해 놓은 모습과 비슷하여 소천지라고 한다. 섶섬과 포구 뒤 제지기오름 등, 제주 불교의 성지순례길이면서, 올레길 6코스에 포함되면서 최근 알려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는 날에는 소천지에 투영된 한라산의 모습까지 감상할 수 있다고 하니 백두산과 한라산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소나무와 바다 풍경을 보고, 계단으로 내려가면 정자가 서있다. 안내글 설명에 따르면, 이곳 보목마을은 제주에서 가장 따뜻한 마을이라고 한다. 앞바다에서 보이는 소천지로 내려가는 길은 용암이 흘러 굳은 상태로 날카롭다. 자연석이 거칠게 느껴지는 곳이라 소천지를 한 바퀴 돌기는 어렵지만, 나름 의미가 있다.  


남원 큰엉 한반도 지형
혼인지의 수국


해안 둘레길 따라 걷다 한반도 지형을 들러 제대로 된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사람들이 몰려들어 줄이 50미터 서있다. 그래도 기다리면서, 정해놓은 포즈대로 쭉쭉 사진을 찍으면서 한반도 안에 푸른 바다를 담았다.

근처,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마을 혼인지로 갔다. 올레 2코스에서 이어지는 혼인지는 땅에서 솟은 제주 건국신화 삼신인이 목욕하고, 혼례를 올림으로써 자손이 늘어나고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혼인지는 제주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곳이다.

 고, 양, 부 삼신인과 벽랑국 세 공주가 합방을 했다는 신방굴은 세 곳으로 나누어져 각각 신방을 꾸몄다고 전해 내려온다. 작고 평범한 동굴이지만 제주의 시조가 신방을 차린 곳이라고 달리 보인다. 최근 이 혼인지는 수국으로 더욱 유명한 핫 스폿이다. 특히 청색 수국 위주로 피어있어 여러 색깔로 되어있는 것보다  정갈한 느낌을 전해준다. 이번 여행에서  제주 수국을 실컷 보았다.  


함덕 해수욕장의 힐링


제주 여행은 늘 좋다. 바람과 구름과  사철 꽃들이 반겨주는 제주도이다.  특히, 6월 초 제주도는 다양한 수국을 만날 수 있다.  크고 작은 꽃들이 슬며시 다가와 또 다른 기억을 남겨주는 제주도 여행은 그래서, 그저 옳다.

함덕 해변의 멋진 바다는 늘 여행의 마지막 점을 찍는 곳이다. 이 바다에서 혼자 서핑 보드를 타고 유유자적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을 보고 신선이 따로 없구나 생각했다.  델문도 카페에서 커피와 빵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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