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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Mar 19. 2022

베트남 2 - 강의 안쪽 하노이

맛과 멋이 가득한 주말 여행의 즐거움

 변종 코로나의 등장으로 지금 당장은 해외여행이 너무 어렵다. 2020년 1월까지는 주말을 이용하여 아시아 주변국을  자유롭게 다녀오곤 했는데 지금은 꿈도 못 꿀 정도이다. 국내 투어 여행사의 프로그램과 일정표를 참고하여 장소와 숙소를 예약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일을 기다렸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  


배낭여행 시장의 60%를 점유했던 한 여행사의 원조 '금까기' 프로그램. 금요일에 집을 나서 황금 같은 주말을 해외에서 보내고 오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기간이 짧기 때문에 구글 지도를 보고 동선 체크, 볼거리와 먹거리를 미리 정한 후 그랩을 이용하여 움직이므로 알뜰하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다 하롱베이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한번 보고 올까? 좋아, 라잇나우! 뜻이 통했다. 이 친구 마다하지 않고 금요일 저녁에 출발, 월요일 아침에 도착하는 이스타 항공권 표가 있다고 얼른 예매하라고 독촉이다. 곧이어 예매하려는데 아뿔싸 마감되어 버렸다. 비슷한 시간대에 하노이에 도착하는 다른 저가 항공권을 검색하다 15분 늦게 출발하는 제주 항공권을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비용은 조금 더 들었다.


2018.12.7 삿포로 폭설


 드디어 12월 7일 금요일, 인천공항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각각 21시 이스타항공, 21시 15분 제주항공 탑승을 기다리는데, 이스타 항공은 딜레이 안내가 계속 나오고, 오히려 제주항공은 승객이 모두 탑승하여 5분 일찍 출발했다.   

나비효과처럼 일본 삿포로에 내린 폭설 사태가 우리 여행에 깊숙이 개입되기 시작했다. 친구가 타야 할 이스타 항공기는 삿포로에서 인천으로 온 후 다시 하노이를 가는 연결 항공기였다. 그래도 취소가 아니고 지연이니 일단 기다려보고, 정 안되면 혼자라도 여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출발한 후 이스타 항공기 타고  올 친구를 하노이 공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인천 공항에서 하노이 여행을 위한 국제 와이파이를 미리 구입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더불어 도착이 늦은 시간이라 클룩사이트에서 구매한 프라이빗 이동 시간 변경을 요청했다. 차량 기사와 카톡으로 영어 문장을 써가며 이스타 항공 시간이 연기되었다고 연락하고  공항 도착시간을 참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하노이 공항의 투어 센터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대합실


 그렇게 약 5시간을 날아가, 두 시간 늦은 시차를 계산해보니 베트남 시간 밤 11시 40분경. 대합실에 나와 카톡을 보니 새벽 3시에 도착할 것이라는 친구의 문자가 와있었다. 일단 낯선 공항에서 3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의자에 길게 드러누워 보기도 하고, 괜히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하는데 우리말이 들려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 보니 교민들이 지연 항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몰라 비상시 연락처를 받아놓고 하노이 맛집 여행 정보를 얻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새벽 3시. 이스타 항공 도착이 안내되고, 헐레벌떡 뛰어나온 친구를 만났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영어 문장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이런 일이 종종 있는지  프라이빗 기사가 비행기 도착 시간에 맞춰 영어로 된 나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하노이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좁고 긴 하노이 마블로스호텔


 미리 예약해 둔 호안끼엠 호수 주변 마블러스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 호텔 문을 두드려주고 떠난 프라이빗 기사의 친절에 감사해하며 드디어 마호가니와 장미로 꾸며진 방에 입성, 3시간이라도 자둬야겠다. 그래도 여행이라는 것이 사람을 너그럽게 해주는 힘이 있는지, 오늘의 소동이 나중에 두고두고 이야기할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 같았다.  

 

 하노이(Ha Noi), 강이 흐르는 내륙 지방이란 뜻으로. 약 40km 길이의 홍 강이 흐르는 곳이다. 명실상부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로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다. 1,000년이 넘는 동안 베트남의 중추적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 통치 시절 총독부가 있던 거리 곳곳에는 콜로니얼 건축양식을 많이 볼 수 있다.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20 여개의 호수와 짙은 녹음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하노이의 좁고 긴 주택 모습


 9,800만 인구의 70%가 대가족으로 구성된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고 60%가 주택으로 형성될 만큼 주택문화가 발달했다. 그런데 독특하게 세로로 길게 늘어선 형태의 집들이 많고, 건물과 건물 사이도 촘촘히 붙어있어 빈틈이 없게 지어졌다. 이유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주택 세금을 건물의 가로 면적에 따라 징수했기 때문이다. 세금을 적게 내려는 베트남인들은 세로로 길고 높게 집을 지었고 촘촘하게 이어지는  건축물 양 옆은 색을 칠하지 않았다. 언제든 옆집이 건물을 이어 붙일 수 있어서이다. 또한 강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 측면에 창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4층짜리 집이 많고, 가로 3미터 세로 20미터 형태의 집이 많다. 집이 좁다고 무시할 것이 아니다. 세로로 길게 이어져 각각의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은 거실 공간의 개념이 없고, 오토바이를 도둑맞지 않으려고 집안 내부 거실에 주차공간을 마련한다. 연중 기온이 높아 곰팡이가 생기기 쉬우므로 벽지를 사용하지 않고 시원한 바닥을 유지하기 위해 대리석을 사용한다.


호텔 조식과 열대과일


 다음날 아침 망고와 열대과일 조식을 근사하게 먹고, 미리 예약해 둔 하롱베이 1일 관광에 나섰다. 사람들이 가득 찬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하롱베이 선착장, 많은 배들이 정박되어 있었다. 우리가 처음에 탔던 유람선은 주방과 노래방 시설까지 갖춰져 있고, 배 안에서 미리 맞춰 놓은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곳에서 잡은 생선으로 만든 요리도 있었고, 달콤한 열대과일도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모두들 유쾌하게 대화하며, 음식들은 나름 다 제 각각의 맛이 있었다.  


하롱베이 모습
하롱베이 보트


 하롱베이는 하룡,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의미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이 베트남을 침략하자 이를 막기 위해 하늘에서 용과 그의 가족이 내려와 입에서 보석과 구슬들을 내뿜었는데 그것들이 바위가 되어서 하롱만의 섬들이 되었다고 한다.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170KM 떨어진 통킹만에 자리한 카르스트 지형이다. 베트남의 아름다운 자연을 대표하는 하롱베이 해안선 길이는 120km, 총면적 1,553 km²이다. 부속 도서의 수는 총 1,969개에 이른다. 거대한 규모의 석회암이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하롱만 모습은 2천만 년 이상의 시간과 열대 습지 기후에 노출되어 만들어진 독특한 모습이다.  

잠시 들렀던 Hong Hanh 석회암 동굴은  2km에 육박하고, 빗물에 석회암이 녹아 만들어진 호수가 많았다.

3억 년 이상 진행된 침식 작용과 해수면의 변화에 의해 생겨난 독특한 모양의 섬들이 겹겹을 이루며 동양의 산수화 같은 절경이다. 천하제일의 풍경으로 손꼽는 중국의 계림을 바다에 옮겨놓은 것 같다 하여 바다의 계림으로 불린다.


수상 매점

 

 1962년 베트남의 역사, 문화, 과학 보존지역으로 선정된 하롱베이는 영화 "인도차이나"의 배경이 되었고, 1994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물속에 잠긴 채 윗부분만 드러낸 암석들의 모양이 포물선 같았다. 작은배로 갈아타고 종유석이 보이는 석회 동굴 사이 뚫린 구멍을 통과하기도 하고, 암석들 가까이 다가가 구경하기도 했다. 물건을 판매하려는 배들이 다가와 흥정하는 동안에 민속노래도 불러주었다. 이곳에는 20~30여 채의 수상가옥이 무리 지어 어업으로 먹고살기도 하고, 관광객 상대로 작은 배를 이용해서 과일, 잡화 등을 팔기도 한다.


북쪽 응옥썬 사당
테훅 태양의 다리


 하노이로 돌아와 찾아간 곳은 넓은 호안끼엠 호수. 하노이의 심장부로 통하는 이 호수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15세기 여씨 왕조를 세운 레 로이가 호수에서 건진 검으로 명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베트남을 지켰다고 한다. 전쟁에 승리한 후 보트를 타고 호수를 순회하는 중 황금색 거북이가 호수 아래에서 올라와 검을 물고 돌아갔는데, 이후 거북이가 그 검을 호수의 주인에게 돌려줬다고 하여 호안끼엠(還劍湖)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호수 중앙에는 13세기 몽골군을 물리친 쩐 홍다오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호안끼엠 호수의 북쪽에 위치한 응옥썬 사원은 대학자 반 승과 13세기 몽고의 침략을 막아낸 쩐 흥다오, 물리학자 라또를 위해 18세기경에 지어졌다. 사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붉은색으로 칠해진 테 훅(떠오르는 태양) 다리를 건너야 한다. 입구 기둥에는 ‘복(福)’과 ‘록(綠)’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쓰여 있고, 내부에는 길이 2m, 무게 250kg의 거북 박제가 있다. 이 거북은 호안끼엠에서 잡혀 발견 당시 전설 속 거북이라고는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남쪽 터틀 타워


 호수 중앙에 자리 잡은 터틀 타워, 거북탑은 고기잡이를 하던 작은 섬 위에 1884년에 세워진 4층짜리 4각 모양의 탑. 절묘한 구조물로 꼭대기에 별이 붙어있다. 탑에 들어갈 갈 수 없으나, 밤에는 호수를 배경으로  원색 조명이 밝혀져 야경에 한몫을 더하고 있다.


하노이  구시가지  콩카페
호안끼엠 구시가지


하노이의 중저가 숙박 시설은 대부분 호안끼엠 호수 북쪽 구시가지에 있다. 구시가지는 특히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 주변 관광지로의 이동이 대부분 10분 이내 도보로 가능하다. 우리도 슬슬 걸어서 구시가지에 위치한 콩까페를 찾아갔다. 그러나 카페에 사람이 많아 앉을자리가 없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우리나라 청년 둘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 사는 친구와 서울 사는 친구가 하노이에서 만나 어울리다 서로 헤어지니 참으로 글로벌한 시대라는 것이 실감 났다.


여행자들에게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좋은 휴식처를 제공해 주는 호안끼엠 호수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공연과 쇼는 물론  펍과 카페들이 줄지어 서있다. 베트남 쌀국수와 몇 가지 베트남 요리를 먹고, 야시장을 찾아가 착한 가격으로 실크 스카프와 수공예품 몇 가지를 획득했다.



호찌민  문묘



둘째 날, 역시 열대과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호텔에 맡긴 후 바삐 움직였다. 날이 흐리고 빗방울이 살짝 내렸다. 호찌민 문묘를 가려고 서둘러 나섰으나 세상에 그렇게 길게 줄이 서있다니... 학생들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문묘. 국민적 영웅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예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전히 전 국민의 애정과 신뢰를 받고 있는 호찌민의 매력은 배려와 검소, 실천을 통한 진정한 희망과 미래를 국민들에게 나눠준 점이라 생각한다. 

짐과 소지품 검사는 물론이고 카메라는 보관소에 맡기고 입장하여 촬영을 할 수 없는 근엄한 곳이다. 삼엄한 경계 속에 진행되는 관람은 시신을 밀랍 봉인한 묘지를 나오면 경계가 느슨해진다고 한다. 

 

베트남 역사박물관


  1932년에 지어진 옛 프랑스  극동학원에 자리한 국립 역사박물관은 건물 외관이 밝은 주황색으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프랑스 형태의 기둥과 아치, 중국의 곡선 모양 지붕과 육각형 탑이 결합된 형태이다. 건물의 내부와 외부는 모두 크메르와 참파 왕국 신들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박물관 내부는 역사관과 민족관 두 부분으로 나뉘어 구석기, 신석기시대의 유물, 고대 베트남 문명 시대 유물, 동 선 유물 등 5천 여점이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호찌민 박물관


바딘 광장 호찌민 묘소 뒤쪽에 위치한 호찌민 박물관으로 향했다. 1990년 5월 19일 호찌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관한 이곳에는 호찌민에 관한 전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세에 저항하던 베트남 혁명과 투쟁을 테마로 다루고 있다.

연대기적 주제로 호찌민의 삶을 8단계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성장과 청소년기, 이후 10년 동안 호찌민이 식민지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전 세계 여행, 베트남 공산당 창설과 독립을 위한 노력, 국가 지도자로서의 역할과  정치적 삶을 보여주었다. 박물관은 국내외에서 수집된 유물, 미니어처 그리고 다양한 선물을 모은 것이다. 이 박물관은 12,000m² 면적에 호찌민의 유품과 애장품, 혁명의 역사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박물관은 ‘드래곤 하우스’라는 별명이 있다.



한기둥 사원


박물관 바로 앞 사원 주변에 보리수나무 한 그루가 보이는데, 세 바퀴를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사이로 하나의 기둥에 의지한 채 연못 위에 고요히 서있는 작은 정자 같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네 귀퉁이에는 연꽃이 새겨진 이곳이 바로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서 국보 제1호가 있는 못꼿사원, 한기둥 사원이다. 연못의 시원함을 느끼게 하려는 듯한 창의적인 건축물이었다.


사원 내부 관음보살상


한기둥 사원 내부에는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역시 사원 주위를 두 바퀴 돌고 사원 관음보살상에 기도하면 아이를 점지해 주는데, 왼쪽으로 돌면 아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면 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남근석이나 서낭당 등의 민간 신앙을 베트남에서 만난 기분이었다.


호찌민 관저
호찌민 관저 앞 연못


그리고 호수와 녹지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주택박물관 호찌민 관저를 찾았다.  호찌민이 실제  1958년부터 11년 동안 거주하던 2층 건물로 매우 검박하며,  서민적이었던 호찌민의 성품을 엿볼 수 있다. 건물 안으로는 입장할 수 없고 바깥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1층은 천장이 위층까지 뚫렸고, 2층에는 작은 나무 책상을 비롯해 시계, 라디오 등 호찌민이 평소 사용했던 애장품들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돼 있다.

 호찌민이 살던 집 앞에는 푸른 초목에 둘러싸인 연못이 있다. 호찌민은 생전에 이 연못에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물고기가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을 큰 낙으로 여겼다고 한다. 호찌민 주석이 사색을 하면서 거닐었다는 망고 거리, 그 옆으로는 서있는 나무에 묵직한 자몽이 열려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쭉 이동하니 1900년대 프랑스 식민시절 저택인 주석궁이 보였다.


주석궁 외관


주석궁 외관은 노란색이며 식민지 시절 총독부로 쓰였던 곳이다. 국빈 방문 시에만 열리는 철문을 지나 노란 석회가 칠해진 화려한 건물은 현재 주석의 관저로 쓰이고 있다. 호찌민이 국가 주석으로 재임 시절, 정원사의 집을 관저로 사용하고 주석궁은 업무 보는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했단다.  이 건물은 대칭적으로 설계되었으며, 가운데에는 큰 블록이 있고 측면에는 두 블록이 있는 유럽풍의 건물이었다. 각 방마다 다른 장식이 있는 30개의 방으로 이루어졌으며,  인도차이나에서 지어진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이다. 이 지역의 유일한 베트남 특성이 보이는 것은 요소는 주변 정원에서 자라는 망고 나무들.


하늘에서 본 쩐꾸옥 사원 - 베트남 관광자료


서호의 쩐꾸옥 사원


주석궁을 살핀 후 슬슬 걸어 서호 쩐꾸옥 사원으로 향했다. 물과 나무가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하는 베트남 기후, 곳곳에 호수가 많다. 그래서 인간은 공간을 개발하며 나름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나 보다.

서호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로 왼편으로 쑥 들어가니 푸른 나무 사이로 붉은 탑이 눈에 들어왔다. 절 안에는 중국의 지붕과 처마를 연상하게 하는 부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6세기경 세워진 11층 규모의 붉은 석탑은 스님들의 유골을 보존하기 위한 사원의 중요 부분이다. 행운과 번영을 상징하는 붉은 빛깔을 띠고 있으며,  1450년이 넘을 정도로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나 2004년 다시 만들어졌다. 5개 면으로 이루어진 석탑은 각 층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한 불상이 자리 잡고 있다.  


서호 하이랜드 카페
하이랜드 카페 내부


걸어서 돌아 나오는 길에 서호 안에 세워진 하이랜드 카페에 들어가 시원하고 달콤한 커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비가 그치고, 날씨가 점점 맑아지고 있어  바딘 광장으로 걸어가는 중 탐롱황성에 들렀다.


하노이 깃발탑
탕롱황성의 모습


 탕롱황성은 총면적 1만 8395헥타르로, 하노이 깃발 탑, 도안몬문, 낀티엔궁, 가옥, 전각 등 응웬왕조 때의 성벽과 8개의 성문 등이 남아있다. 멀리서 보였던 하노이 깃발탑은 국기 게양대. 33.4m의 높이로,  수도의 랜드마크로 여겨진다. 1812년에 응우옌 왕조 시대에 만들어졌다. 하노이의 대부분의 건축물들처럼, 이곳 또한 프랑스 통치시기에 군사 주둔 기지로 사용되었다.

탕롱 황성은 2010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010년에 레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후대 점차 확장되었고, 1810년에 후에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베트남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19세기에 프랑스 지배 이후 황성의 건물들이 대거 철거되었고, 1945년, 일본군이 프랑스군 포로들을 가두어놓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54년 베트남 군대가  국방부로 사용하면서 거의 모두 철거되었으나 최근에 발굴과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롯데센터에서 바라본 하노이 전경
롯데센터 러브 포토존


베트남의 긴 역사 속에 다시 살아나는 황성의 복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너무 많이 걸어서인지 다리가 아팠다. 그랩을 불러 차를 타고 시원한 롯데센터 하노이 타워로 향했다.

롯데건설에서 시공한 롯데센터 전망대는 하노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 65층 높이에서 도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며, 야경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클룩에서 사전 입장권을 예매하고 대기 없이 패스트트랙으로 전망대에 바로 입장했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1분 안에 스카이워크까지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고, 러브 포토존에서 스위트 한 기념사진도 찍었다.


롯데 49층에서 내려다보니 하노이(강의 안쪽) 이라는 뜻이 와닿는다. 아름다운 하노이 전경을 남기고, 멋진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의 국력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빵빵해졌다. 



기찻길 마을의 카페
기찻길 마을 카페 모습


하노이의 명소 기찻길 마을에 도착했다. 하노이 역에서 롱비엔 역까지 실제 기차가 다니는 장소이다. 좁은 기찻길 옆에 있는 화분이 길게 늘어져 있는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서있다. 실제 현지인들이 살아가며 생활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 기차가 지나는 풍경을 감상하며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주말의 기찻길 풍경은 방송국에서 촬영 나온 듯 사람들과 카메라 등의 장비들로 몹시 붐볐다. 이곳의 정서는 우리나라 70년대의 모습인 듯했다.

아직 기차가 다니는 선로 주변의 기찻길 동네, 소파 커피를 둘러보고 시장 골목 베트남 쌀 국숫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구시가지 시클로 여행


하노이 성요셉 성당


그리고 시클로를 타고 하노이 구시가지 명소를 들렀다. 시클로는 구시가지 여행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정 먼저 도착한 곳은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인 하노이 성요셉 성당. 구시가지 호안끼엠 나토 거리에 위치한 성당이다. 이 성당은 19세기 말 고딕 복고풍의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베트남의 대교구 본부이기도 하다.  480개의 교회와 예배당 및 113개의 교구를 관리하고 있는 하노이 로마 가톨릭 대주교구 소속의 성당이다.

건축은 1886년에 시작되었으며, 노트르담 성당을 닮은 건축 양식으로 묘사된다.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식민지 정부가 건설한 최초의 건축물 중 하나였다. 12월 초에 들러서 인지 성당입구에 큼직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었다.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하우스 웨딩 촬영


하노이 오페라하우스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세워진 건축물. 힘이 넘치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프랑스 식민지 관리들이 콘서트와 공연 등을 보기 위해 건축했다.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디자인했으며, 1911년 완공했다. 프랑스가 철수한 이후 오페라 하우스는 정치 행사를 개최하는 장소가 되었다. 우리가 도착할 때하노이 젊은 연인들이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다.


호안끼엠을 한 바퀴 둘러보고 응옥선 광장에서 기념품을 사고, 호텔에서 1시간 동안 마사지를 받은 후 공항으로 향했다. 아듀 베트남! 이번에도 제주공항이 먼저 출발했고, 이른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사우나이용 후 바로 학교로 출근하였다. 금까기 베트남 여행,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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