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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인트 Mar 10. 2020

떠날 생각을 일삼으며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여기에서 생활은 제법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낯섦이 줄어든 만큼 신기함도 줄어들지만, 익숙해지는 것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멀리까지 와서 새로움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다면 섭섭할 테니까요. 외국에서 느끼는 한국인의 입지는 확실히 올라갔지만, 반대급부로 제가 BTS도 잘 모르고 토트넘이 아닌 아스날 팬이라는 사실을 알면 이상하게 여깁니다. 최근에는 여기치고는 이례적으로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고, 어제는 북런던 더비를 직관했습니다. 물론 놀기 위해서만 온 것은 아니니 열심히 일..”


   타닥, 타닥... 아, 순간 전화가 울린다. 그러고보니 첫 아이폰을 산 2010년 이래로 벨소리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아이폰 유저 중 상당수가 기본 벨소리를 사용한다. 피처폰 시절 너도나도 개성 있는 벨소리를 세팅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싸들을 떠올려보면 놀라운 일이다. 무엇이 이들을 바꾸지 않게 하는 것일까? 잡생각은 그만하고 전화를 받는다. 다른 곳에 파견 나가 있는 직원으로부터 온 업무 전화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특성상 일이 잘될수록 파견지의 수가 늘어나고, 그럴수록 중앙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나는 전화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첫 직장에서 일할 때는 업무 중에 전화를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업무요청과 대화는 대부분 이메일과 메신저로 진행되었고, 외부와의 소통은 팀장님의 몫이었다.


   생각한 김에 더 추억해보면 첫 직장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름 큰 기업임에도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내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분야의 일을 했기 때문에 일종의 ‘꿈을 이룬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선배들도 좋은 사람이었고, 팀장님은 온화한 성품으로 우리 팀과 그 주변뿐 아니라 회사 전체에 인망이 높은 분이었다.

   물론 편하게 일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제품 출시를 앞두고 4~5 개월간은 업무 강도가 매우 높아졌다. 그래도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버틸 만 했고, 도리어 팀장님과 야식으로 왕뚜껑을 먹으면서 “이러니깐 정말 제대로 일하는 느낌이 나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건 푸념이나 비꼬기가 아니라 진심이었는데,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이 업계는 열악하기로 소문이 났고, ‘밤새워 일하고 컵라면을 먹지만, 꿈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매체를 통해 전파되었으며, 어린 나에게는 꿈을 좇는 멋진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제품의 개발을 마치고 시장의 초반 반응이 대실패로 확인될 때쯤 나는 팀장님께 퇴사 시점을 말씀드렸다. 최근 거셌던 업무강도 등 몇 가지 이유를 댔고 어느 정도 사실이었지만, 오래 고민한 결과 ‘이쯤이면 다음 스텝을 밟을 때’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결심을 굳게 한 것은 이 제품이 실패했지만 나에게 별다른 아픔이 없다는 무덤덤함이었다. 내가 실패를 책임질 위치도 아니고, 일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주제에 이 무슨 자의식 과잉이냐 싶겠지만, 아마 성공했어도 더 홀가분하면 홀가분했지 미련은 없었으리라. 내가 기획한 일도 아닐뿐더러, 제품에 대한 애착이나 애사심보다는 현 소속과 위치에 맞게 주어진 일을 프로―돈을 받고 일하는 존재로서의―답게 수행한 것이니 말이다. 회사에서 보낸 시간들이 사랑스러운 것과 내가 회사에 남아있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별개였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라면 어떨까? 나는 이곳의 창립 멤버로 들어와서 매우 적은 돈을 받을 때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 일했고, 그 결과 회사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일궈내었으며, 그래서 내가 맡은 업무 영역에서 상당한 오너십을 지니고 있고 업무상 중대한 결정에 관여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여전히 언젠가는 떠날 사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일이 너무 힘들어서, 혹은 나에게 제공하는 보상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곧 있으면 다음 스텝을 밟을 때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몸담았던 조직을 떠난다고 할 때, 인간관계든 내부 분위기든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다만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 않으면, 대외적으로 그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으면, 그 결심이 일시적인 충동으로 치부되거나 사려 깊지 못한 생각으로 받아들여질까 걱정이 들 때는 있다. 심지어는 실제로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버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거나, 버티지 못하는 사람을 나약하다 여기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조직에 충성하고, 뼈를 묻을 각오로 임하는 것을 인간의 도리로 여기는 세상도 있고. 우리는 별다른 이유 없이도, 스스로 적당하다고 여길 때 떠나는 이들을 보다 더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과하게 판단하지도, 과하게 문제를 찾으려 하지도 않은 채로.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또한 권리의 차원에서 그렇다는 얘기지, 나 자신은 내부에서 치열한 검토를 거친다. 계획 없음을 싫어하고,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자치정부의 깐깐한 심사를 통과해야 스스로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서 내적 파업을 철회하고 일이나 하라고 종용하는 노동부와, 여행과 여가를 즐기고 건강을 챙기라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힘겨루기를 한다. 과기부에서는 4차산업혁명의 물결에 동참하지 않겠느냐 유혹하며, 여성가족부에서는 결혼은 안 하느냐고 묻고, 보건복지부에서는 네가 일부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가족을 고려하라 한다.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 재정 건전성과 실현 가능성이 보장된 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최종 승인은 기획재정부의 몫이다.


   이 과정은 오래 걸린다. 행복했다가도 다시 슬프고, 설레다가고 금방 걱정이 된다. 정말이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두렵다. 첫 회사 때도 그랬다. 어릴 때처럼 초등학교를 다니다 보면 중학생이 되고, 중학교를 다니다 보면 고등학생이 되는 그런 떠남과는 다르다.

   나라는 사람에게 떠남이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결정인지 알기에, 평소에 이토록 생각을 일삼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가만, “생각을 일삼는다”니, 정말 그렇다. 요즘은 이런 생각이 일상을 넘어 아예 일로 삼아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한다. 떠나야 할 곳이 회사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은 말자. 나 가는 곳이 곧 출구이니 말이다.


   참, 그런데 전화 받기 전에 뭐 하고 있었지? 그래 맞다, 런던으로 떠난 뒤에 SNS에 편지를 쓰는 상상을 했었구나. 그 편지를 마무리 짓지는 않았지만 이쯤이면 오늘 몫의 떠날 생각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다시 일에 집중해볼까. 이곳에 뼈를 묻지는 않아도, 사랑했던 흔적들은 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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