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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인트 Mar 10. 2020

떡볶이를 좋아하세요...

   나는 말했다. “떡볶이 먹기 좋은 날이네요.” 그가 물었다. “떡볶이 먹기 좋은 날은 대체 어떤 날이죠?” 나는 대답했다. “평범한 날이요.”


   국민학교 1학년 때, 교문 바로 맞은편에 떡볶이를 파는 식당이 있었다. ‘ㄷ 칼국수’라는 상호로 미뤄보아 떡볶이가 주력은 아니었지만, 식사 말고 간식 정도를 사 먹을 돈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그저 떡볶이와 오뎅을 파는 학교 앞 분식집이었다. 저학년은 수업을 마치면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인데, 하교하러 교문을 나서면 떡볶이 국물을 팔팔 끓이는 특유의 향을 피할 수 없었다. 거기에 매혹되어 100원 내지는 200원을 내고 떡볶이를 사 먹기 일쑤였다. 내 인생의 첫 단골이라 칭할 수 있는 떡볶이집이었다. 이 가게의 가격 정책은 매우 투명했다. 100원을 내면 떡 4개를 주었다. 더불어 학교 앞의 유일한 떡볶이 판매처로써 독점적인 인기를 누렸는데, 나중에는 몰려오는 학생들을 감당할 수 없어지자 컵 떡볶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학년 말에는 공교롭게도 이 가게의 주인집과 옆집 사이가 되었다. 비록 어른끼리 사이는 안 좋았던 것 같지만, 내가 떡볶이를 포장해가면 많이씩 담아주시곤 했다. 4학년이 시작되면서 옆 동네로 이사를 하고 전학도 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친구들을 만나러 옛 동네를 찾을 때마다 이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었고, 아줌마 아저씨는 나를 기억하고 반겨주었다.


   이후에도 새로운 학교에 진학하거나, 새로운 학원에 다니거나, 회사를 들어가거나 이사하는 등 새로운 생활반경을 만날 때마다 단골로 삼을 떡볶이집을 개척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고등학교 때는 근처 시장에 선배들로부터 대대로 사랑받아온 떡볶이집이 있었는데, 학교로 배달을 해주는 가게였다. 특히 늦은 시간까지도 배달이 되어서, 야자 끝날 때 맞춰서 얼마치를 보내 달라고 전화로 주문하면 ‘떨이’라고 많은 양을 가져다주셨다. 5천원을 내면 서너 명이 야식으로 먹기 충분했다. 대학교 때는 기숙사에서 빈둥거리다가 해가 지면 자전거를 타고 떡볶이를 사가지고 들어와서 먹으며 스타리그를 보곤 했다.

   지금 일하는 회사는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이사할 때마다 그간 정들었던 떡볶이집에 가서 앞으로는 못 온다고 인사를 드렸다. 한번은 전에 회사가 있던 곳 근처에 미팅을 하러 간 김에 단골이었던 가게에 들렀는데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셔서 뿌듯하기도 했다. 지금 사무실로 이사한 뒤로 새로 마련한 단골집 사장님은 세 번 정도 들렀을 때 내가 어묵을 먹지 않는다는 점을 날카롭게 파악하시고 다음부터는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라져서 다른 곳을 또 찾아갔다.


   물론 여행 중에도 떡볶이를 찾았다. 대구의 동성로에서도, 부산의 국제시장에서도 떡볶이를 먹었고,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나는 멈추지 않았다. 영국에 갔을 때 하루는 런던에서, 다음 날에는 맨체스터에서 떡볶이를 사 먹으며 영국의 서로 다른 두 도시에서 이틀 연속으로 떡볶이를 먹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지구상에 매우 드물 것이라고 자부한다.



   내가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하면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난감한 질문이다. 모든 떡볶이는 각자의 매력을 갖기 때문이다. 의외겠지만 나는 인터넷에서 ‘떡볶이 맛집’ 같은 것을 찾지 않는다. 떡볶이의 종류와 퀄리티를 따져서 발품을 팔기보다는 내가 다니는 역이나 길에서 눈에 띄는 곳에서 먹는 편인데, 오며가며 접근이 쉬운 노상에서 사 먹는 경우가 가장 많고, 동네 분식집이나 프랜차이즈도 가리지 않는다. 김밥천국에서 파는 떡볶이나 라볶이도 좋고, 편의점에서 파는 떡볶이도 좋다. 혼자 갈 수 없다는 단점 때문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즉석떡볶이도 사랑한다.

   이제 자취를 하게 되면서 “내가 먹을 떡볶이는 스스로 만들자”는 취지 하에 이런저런 레시피를 시도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레시피로 종종 먹고 있다. 시중에서 파는 양념을 배제하고 집에 있는 조미료로 적당히 만들어서 먹는 것이 나만의 규칙이다. 직접 만들어 먹을 때의 장점은 내가 넣고 싶은 재료만 넣으면 된다는 점이다. 나는 작은 크기의 떡을 선호하고, 라면과 비엔나소시지 정도만 추가한다.


    년 전 20대의 마지막이었던 해에 나는 삶을 기록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특히 매일 음식 먹은 기록을 남겼는데, 기록하지 못한 12월을 제외하고도 11개월 동안 떡볶이를 총 102번을 먹었다. 그러나 10대와 20대를 살면서 30대를 위해 예비되었던 체력을 철없이 당겨써온 덕분에 근 몇 년간 건강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어왔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 좋아해 온 사람의 숙명이랄까. 그래서 운동도 재개하고, 먹는 것도 신경 쓰고,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등 생활 사이클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서도 늘상 느끼는 것은 떡볶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떡볶이는 악의 근원이라는 PT 선생님의 말은 충격이었지만, 아직은 이런 모순을 적극적으로 해소할 생각은 없다. 누구나 가슴 한켠에 3천원어치 떡볶이쯤 먹을 수 있는 여유는 가져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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