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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May 10. 2020

<브런치> 작가 되기 1

50대 아재가 사는 이야기

  <도전>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엔 단순한 이유였다. 서른여덟에 직장을 퇴사하고 아웃사이더 길을 걸었다. 10여 년 승려생활을 포함하면 20년 세월이다. 나이 탓일까. 어느 날부턴가 지인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고향 동무들, 고등학교 친구, 대학 동창, 허물없이 지냈던 직장 선후배, 이웃 친척들...

일부러 연락 없이 지낸 건 아니었다. 내 길을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누군가를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이, 또 누군가를 떠올리면 고마운 마음이 올라왔다. 그립기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락처를 알 수 없다. 안다고 해도 전화해서  "안녕하세요, 아무갭니다?"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만난 들 무슨 말을 나눈단 말인가? 막막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그럼 글을 한 번 써볼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국어시험은 공부 안 해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직장 다닐 때 사내 월간지에 글이 실리기도 했다. 월간지 공모 제목이 '부실시공 사례 공모전'이었던가? 토목을 전공해서 현장 감독으로 근무하면서 쓴 거다. 판사님한테 탄원서도 써봤다. 노조지부장으로 활동할 때였다. 억울하게 옥살이하게 된 직원을 구명한다고. 아무튼 글을 쓰는데 큰 부담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글을 쓰기로 작정했지만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 동료 직원 중에 '글 좀 쓴다는 분'이 계셨다.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다음(Daum) 포털사이트에 있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좋다고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브런치>에 세 편 정도 글을 써서 작가 신청하면 된다고.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적어 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았다.


  안타깝다고 했다. 다음 기회에 모시겠단다. 탈락했다는 표현을 참 우아하게도 한다고 생각했다.


 <시련>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분(글 좀 쓴다는)에게 내가 왜 떨어졌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분이 잠시 생각하더니 브런치에 신청했던 글을 한번 보내 달란다. 다음 날이었다. 그분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선생님이 쓴 글은 글이 아니에요."

"예? 글이 아니라고요?" 놀라서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무슨 일기장도 아니고. 사색의 흔적이나 글의 깊이도 없는 것 같네요." 분명 부드러운 어조였다. 하지만 예리한 칼날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뛰는데, 도대체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조언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나 온라인에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들을 보고 감각을 익히면 좋겠다고.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시멘트 바닥에 패대기 쳐진 느낌이었다. 이쯤 되면 녹다운이다. 아, 유리 멘탈이어~. 그 충격으로 3개월 동안 글 쓸 엄두를 내지 못했으니.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근데 마음 한편이 늘 찝찝했다. 방구석에 밀쳐놓은 묵은 빨래처럼.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우선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보았다. <유시민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도 보았다.  멋지고 아름다운 글, 깊이 있고 감동을 주는 글들이 수 없이 많았다. 그분 말이 맞았던 것이다. 강원국 작가의 말을 빌자면 '한 번도 운전을 배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내가 딱, 그랬다. 무지한 자의 그 오만함이란. 부끄러웠다. 그렇게 내 꼴을 인정하자 겨우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강원국의 글쓰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분명한 것은 지적이 글을 잘 쓰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지적은 못 쓰지 않게 할 뿐이다. 허심탄회한 피드백도 좋지만, 기왕이면 내게 호의적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낫다.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  <강원국의 글쓰기>, 강원국

나는 무릎을 쳤다. 나는 피드백을 아내에게 먼저 받았어야 했다. 내 글에 호의적이므로. 만약 <강원국의 글쓰기>를 먼저 보았다면 '그분'의 피드백을 구하지는 않았으리라. 결코.


<심기일전(心機一轉)>


  '작가는 매일 아침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강원국의 글쓰기>에 있는 내용이다. 그 대목을 읽은 그날부터 매일 아침 글을 썼다. 매일 아침 5시 전후에 일어났다. 알람은 사용하지 않았다.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것도 나이가 주는 선물일까.

  주부가 전날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처럼 나는 전날 저녁, 다음날 아침 쓸거리를 준비한다. 나의 꼼수다. 일어나자마자 시작하면 막막할 것 같아서다. 그러면 잠자리에 들 때 그 주제와 관련된 일들이 생각나고 아침이 되면 써진다. 물론 거칠게 쓴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보내면서 생각을 더해간다. '이런 표현이 더 좋겠다', '이런 내용을 넣어야지', 이런 식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생동감이 생겼다.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반갑다.

   6시 정도면 퇴근한다. 그리고 늦어도 저녁 8시 이전에는 내 소박한 서재를 세팅한다. 내 서재는 거실 식탁이다. 먼저 노트북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필사할 책을 준비한다(필사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바로 시작!). 요즘 내가 필사하는 책은  <강원국의 글쓰기>다. 책이 보이려면 노트북 화면보다 높아야 한다. 아들 동화책이 적격이다. 켜켜이 책을 쌓고 독서대를 놓고 필사할 책을 펼친다. 마지막으로  오른쪽에 차 한 잔 준비한다. 세팅 끝이다. 가난하지만 인간적인 서재라고 위로한다.


  세팅이 끝나면 차를 마시고 명상을 한다. 명상은 눈을 감고 40분 정도. 마음이 편안하다. 9시부터 필사를 시작한다. 노트북 자판이 아직 서투르다. 눈도 침침하다. 인상을 찡그려 가며 한 자 한 자 옮겨 적는다. 팔목도 아프다.
고진감래, 인내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다.


  <강원국의 글쓰기> 는 모두 39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 한 단락씩. 2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아침에 썼던 글을 열어 수정하고 마무리한다. 쓴 글을 돌아보면 항상 부족하고 유치하다. 마지막으로 내일 아침 쓸 글을 준비한다. 그러면 대략 12시쯤. 필이 꽂히면 2시까지 쓸 때도 있다. 혹은 잠을 자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쓰기도 한다. 아무래도 좀 미친 것 같았다.


옛 어른이 이르기를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라고 했던가. 나는 알고 있다. 오랜만에 물이 들어왔고, 지금은 부지런히 노를 저어야 할 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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