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아재가 사는 이야기
"아빠는 참 대단한 거 같아요" 큰 딸아이가 말했다.
"왜?"
"그 나이에도 글을 쓴다고 도전하시는 걸 보면. 벌써 몇 번째 도전이죠?"
"네 번째인가?"
그렇다. 나는 얼마 전 <브런치>로부터 세 번째 낙방 메일을 받았다. '작가로 모시지 못해 안타깝다는....'
이젠 익숙한 멘트다. 세 번 씩이나 낙방하고 나니 슬슬 부담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7일 째다. 하루 일과가 빠듯하지만 글쓰기를 놓치지 않았다. 늦어도 꼭 썼다. 피곤해도 썼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글쓰기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적은 내부의 적이라고 했나. 바로 나 자신이 문제였다.
최근에 쓴 글은 처가에 간 이야기, 어머니와 관련된 일상, 아들이 다니는 시골학교 이야기 등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이런 글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가 이런 글들을 본 단 말인가' 의문이 들었다. 메시지도 없고 깊이도 없어 보였다. 감정의 배설물, 심지어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디기 힘들었다.
물론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와 목적은 분명했다. 그래서 매일 쓰고 있었고 언젠가 잘 쓸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에 대한 회의가 들 때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게다가 세 번이나 낙방이라니.
그럴 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가족이다. 나는 딸 셋, 늦둥이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나의 <브런치> 작가 도전은 가족들에게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도전 소식을 들은 딸아이들은 아낌없는 지지와 격려를 보내줬다. 든든한 후원군이다. 물론 아내도 마찬가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의 낙방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워했다. 내가 글쓰기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고, 거듭되는 낙방으로 기운이 빠질 때마다 가족들은 용기를 주었다. 딸아이가 말한다.
"아빠. 아빠는 할 수 있어요." 그렇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브런치>에서 작가가 된 분들의 글을 찾아보았다. 매우 많았다. 이런 고민은 나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았다. 분명히 <브런치>는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글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다고 해도 글 쓰는 실력을 갑자기 높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다음은, 신청서를 작성할 때 쓸 글에 대한 제목과 목차 등을 자세히 써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자들의 조언이었다. 작가가 되는 것도 좋지만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어야 하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임하는 내 마음이 더 진지해졌다. 담담히 세 편의 글을 정리해서 올렸다.
어느 날 메일을 받았다.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분명히 '안타깝다'는 말은 없었다. 합격이었다. 4전 5기다. 낙방의 횟수만큼 기쁨도 크다. 이 세상 모든 합격은 기분 좋다.
<브런치>란 플랫폼은 작가가 되어야 만 글을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작가가 되니 비로소 글을 발행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글을 보냈다. 서랍 속에 묵혀 둔 글들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다. 사실 맨살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낯 부끄럽고 쑥스러웠다. 그 글을 보는 분들이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 염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몫이 아니었다. 나는 내 삶을 있는 진실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결과는 받아들일 뿐이고.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희망 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서진규
<브런치> 작가 도전은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여러 번의 낙방은 마음을 단단하게 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제 나누고 싶다.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의 증거가 되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