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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May 19. 2020

15살 수형이는 어디 있을까

50대 아재가 사는 이야기


비 온 뒤라서 그런지 상쾌하다. 시원한 바람도 살랑살랑. 이미 5월의 숲은 수줍은 연두에서 의젓한 초록으로 넘어섰다. 소풍 가기 딱 좋은 시절이다. 오늘은 어머니를 모시고 늦둥이 아들과 함께 특별한 곳을 찾아 나섰다. 바로 어머니 고향이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당신 고향 집 이야기를 하셨다. 그것도 자주.


"내가 대 여섯 살 되었나? 한 밤중이었지. 이웃에 사는 작은 집 오빠가 와서 소리소리를 지르는 거여. 집 무너진다고. 빨리 나오라고. 아 글쎄, 나와보니까 우리 집이 물에 잠겨 무너지고 있드라고. 비가 원체 많이 왔거등.."
"일정시대에 일본 놈들이 다 뺏어가고 어디 먹을 게 있나? 한 번은 순사들이 집에 들이닥친 거여. 우리 집에 큰 뒤주가 있었는디, 어린 마음에 들키믄 안 될 거 같은 거여. 이불을 집어다가 쑤셔 넣었지. 순사가 뒤주를 열어보고는 그냥 가드라고. 어린 나이지만 내가 생각 혀도 제법 소견이 있었던 개 벼~"
좌익이었던 큰오빠가 면 소재지에 잡혀가 죽을 만큼 맞았던 이야기, 횟배를 앓고 몸이 약한 덕분에 아버지가 민물새우를 잡아 끼니마다 먹였다는 이야기.. 어머니는 60년도 지난 일을 어제 있었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재현하신다. 매번 듣는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다. 빠져든다. 

"그래서요?"  


강수형. 어머니 이름이다. 옛 이름 치고는 세련되었다. 1935년 을해생이다. 혹독했던 일본 제국주의 시대와 6.25 전쟁, 자유당 시절과 서슬 퍼런 군부시절을 살아오셨다. 책으로만 보아왔던 우리나라 근대사가 어머니의 삶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디 우리 어머니뿐이랴. 아마도 우리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님 모습이다. 우리는 '어쩌다 어른'이 된 게 아니다. 무수히 많은 희생 위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이다. 당신들은 온몸으로 모진 세월을 견디며 땀과 눈물로 자녀들을 키우고 가르쳤다. 그리고 이제 껍질만 남은 채 앙상하게 바스러지고 있었다. 

어머니와의 여행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어머니는 고향이 '익산 춘포면'이라고 했고, 마을 이름은 '궁궐'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비게이션에 검색을 해봐도 '궁궐'이라는 지명은 없었다. 난감했다. 면사무소를 찾아가야 하나 어째야 하나, 생각하다가 비슷한 지명을 찾아봤다.  있다. '궁궐'이 아니라 '궁월'이었다. 마침 내비게이션에 '궁월 마을회관'이라는 지명이 뜬다.

왠지 내가 가슴이 설레었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어머니 고향을 가는구나. 그곳은 내가 사는 논산에서 멀지 않았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왜 한 번도 어머니 고향에 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단 한 번도.


'우리 세대가 아버지 중심사회여서 그렇다. '
'그곳에 외가 쪽 친척이 아무도 없어서 그렇다. '
'나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렇다. '
아니다.
'어머니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 
맞다.
어머니한테 사실 관심 없이 살아왔다.


출발한 지 1시간 정도 되었을까.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로 설정된 '궁월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 신기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어머니 고향이 있었다니. 마을은 40여 호 남짓되는 꽤 큰 마을이었다. 하천이 마을 옆을 지나고 있었다. 너른 들녘과 야트 막 한 야산이 군데군데 보인다. 마을회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코로나 때문인가. 마을회관 문은 자물쇠로 굳게 채워져 있었다.  마을회관 앞 마을 '궁월 마을'이라고 쓰인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할머니와 손자 - 내가 찍고

"다 초가집이었는데...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것네잉~" 

"초가집도 하나도 없네잉?"

고향마을에 도착했지만 정작 어머니는 아무것도 단서를 찾지 못하신다. 20살 무렵에 떠났으니 70년 만의 귀향이다. 강산이 몇 번 바뀌었나.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초가집이 뭐람? 대부분 슬래브 지붕에 개량 한옥집이다. 골목마다 아스팔트로 곱게 포장되어 있었다. 다시 난감했다. 어디서부터 흔적을 찾는단 말인가. 차를 세워두고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았다. 마침 햇빛 가리게 용 모자를 푹 눌러쓴 어떤 아낙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기요..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혹시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사신 분이 누군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영문을 몰라하는 아낙에게 급히 덧붙인다.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왔거든요. 70년 만에 고향에 왔는데 아는 분이 아무도 없어서요.." 다행히 아낙은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아 그러셔요?  마을에 90세 가까운 분이 있는데 알아보실라나 모르겄네요" 하며 자신을 따라오란다.


긴장되었다. '어떤 분일까. 과연 그분은 어머니를 기억하실까.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제발 어머니와 아는 분이기를 빌었다.

마을 골목 끝 고샅에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였다. 할머니는 마늘밭에서 김을 매고 계셨던 듯 손에 호미가 들려져 있었다.  아낙은 손짓을 해가며 열심히 설명한다. 어머니가 다가가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고, 귀한 사람이 오셨구먼~" 서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어느 순간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감격스러워했다.


극적인 상봉 장면을 아들도 보고 있었다. 녀석 입가에 묘한 미소가 보였다. 녀석에게 물었다.

"명우야. 기분이 어때?"

"음.. 신기한 거 같아."

"뭐가 신기한데?" 녀석이 몸을 비틀면서 말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음.. 할머니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인 거 같아. 신기해~"

녀석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지인 상봉!!!/가장 오래된 집/어머니의 집터

그 할머니는 어머니가 15살이었을 때 그 마을로 시집 온 새댁이었다. 어머니는 그 새댁이 시집 온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떤 옷을 입었으며 어떻게 걸어왔는지 표정은 어땠는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놀라운 기억력이다. 모처럼 어머니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었다. 목소리는 소녀처럼 들뜨고 밝았다. 어머니는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니었다.


"근영이는 어떻게 산디아?"
"벌써 죽었어"
 "형권이는?"
"갸도 세상 떠난 지 오래여~"


대화가 이어진다. 거론되는 인물 대부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나마 살아 있는 몇 사람마저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산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곧 그들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아들 명우도.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숙연하다.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가르침을 주고 계셨다. 온몸으로, 당신의 삶으로 말이다.


마을을 나서려다 문득 뒤돌아 보았다. 저 모퉁이에서 곱게 차려입은 새댁이 걸어 나오고 있다. 골목길 옆에서 15살 소녀 수형이가 수줍게 훔쳐보고 있다. 맑은 눈망울이 왠지 슬프다. 그녀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녀가 살아가야 할 세상의 고단함과 견뎌내야 할 삶의 무게를 상상이나 했을까. 아마도 알았다면 살아내지 못했으리라. 그럼 나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자녀들도...
이 세상에서 생명을 주신 것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 감사함을 담아낼 언어를 나는 알지 못 한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잘 몰랐다. 50이 넘은 나이에도 경험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는 것을. 아니 이제부터 새롭게 삶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오 마이 갓. 100세 인생이면 아직 절반밖에 살지 못했다. 설렘은 뿌듯함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다시 설렘을 안고 나온다.



"어머니~  우리 읍내에 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저분 모시고"
어머니가 냉면 한 그릇을 다 드셨다.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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