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외딴집 작은 샘물
*젊은 시절의 엄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엄마는 병약한 할머니가 되어 자신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지금껏 엄마 곁에 머물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는, 이제라도 엄마의 옛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의 이야기>
집 앞에 작은 우물이 있었다. 우물이라기엔 너무 작은 밑 빠진 항아리 하나 묻힌 옹달샘이었다. 작은 항아리를 채우며 물이 퐁퐁 솟았다.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디맑은 물이었다.
그 작은 샘에서 먹을거리도 씻고, 빨래도 하고, 여름이면 머리도 감았다. 외딴집이기에 가능한 단독 우물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항아리에 담긴 샘물은 퍼쓰면 금방 바닥을 보였다가도, 빨래 하나를 비비는 새 다시 가득 차올랐다. 우물은 신기하게도 쓰지 않을 때는 넘실넘실 고여있다가, 물을 쓰기 시작하면 다시 퐁퐁 솟아올라 항아리를 채웠다.
샘물은 달고 시원했다. 특히 그 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반닥반닥 윤이 흘렀다. 삼단 같은 네 자매의 머릿결에 감탄한 친척 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그 샘물로 머리를 감으러 왔다. 어머니는 가마솥에 불을 때서 데운 물을 듬뿍듬뿍 퍼주었고, 친척 언니와 아주머니들은 긴 머리를 풀어 오래오래 머리를 감았다. 때마다 그 물로 머리를 감으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외아들인 오빠는 머리가 비상하게 좋았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서 선생님 대신 아이들을 가르치곤 했다. 운동회 날이면 달리기도 잘해서 귀한 고무신을 탔다. 사람들은 산골 외딴집의 아이가 이모저모 뛰어난 이유를 샘물 덕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우리 집 항아리 우물의 물을 마시러 왔다.
엄마는 외삼촌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셨다. 머리가 뛰어나게 좋아서 일본 아이들의 과외 선생 역할을 해주고 비싼 학용품을 받아왔다는 이야기. 한겨울, 밤중에 공부하다 졸리면 얼음물을 깨서 세수하고 다시 밤새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 지나치게 공부에 몰두하는 외아들이 걱정스러워 공부를 못하도록 외할아버지가 매를 든 적도 있다는 이야기(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머리가 이상해진다는 통설을 믿던 시절이었다.)
아들이기에 집에서 혼자만 제대로 교육을 받은 외삼촌은 고위 공직에 올랐다. 산골 아이가 이름을 얻자 사람들은 외삼촌을 보고 '물이 좋아서' 잘된 거라고 생각했단다.
우리가 보기에는 딸이라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엄마와 이모들도 모두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큰 이모는 가보지도 않은 동네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종합해서) 눈에 보이듯 정확하게 묘사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둘째 이모는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해서 노년에도 돋보기를 쓰고 늘 책을 보셨다. 셋째 이모는 젊은 시절, 시골 아가씨가 세련되게 차려입고 대도시의 이곳저곳을 훑고 다녀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막내인 우리 엄마는 김영란법이 발표됐을 때 다른 할머니들에게 법의 취지나 세부사항을 설명해 주거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이 시작될 때 바로 등록을 하러 가서 (시행되자마자 노인 홀로 신청하러 와서) 담당자를 놀라게 했다. 지금도 자식들보다 더 기억력이 좋고 이런저런 지식이 많은 분이다.
우리 자식들은 모이면 말하곤 한다. 우리 엄마를 비롯한 이모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았더라면 모두 뛰어난 인물들이 되었을 것이라고. 어쩌면 '물이 좋아서'라는 사람들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고. 산골 외딴집 앞의 맑디맑은 옹달샘. 화수분처럼, 쓰면 또 고이고 쓰면 또 고이던 그 샘물에 영험한 기운이 서려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참, 그 샘물은 이제 매몰되어 흔적도 없다고 한다. 아쉽다. 가끔씩 그 샘물 한 사발 하러 가야 하나 싶은 때가 있는데….
(*이미지 출처 : Pixabay 무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