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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은 아쉽고, 새로 익힌 습관은 뿌듯하고

나이들어감에 대해

by 이용석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나 급하게 몸의 여러 능력이 뚝 떨어질지는 몰랐다. 이 나이에 신체 기능의 쇠퇴를 말하는 게 유난 떠는 거 같아 많이 민망하긴 하지만 내 몸과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높았던지라 그 충격도 큰 거 같다. 그런데 꼭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쇠퇴는 긍정적인 습관을 낳기도 한다. 결핍은 때로는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요람이니까.



기억력과 기록하는 습관


가장 먼저 예전과 다르다고 여긴 건 기억력이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어서, 그리고 글씨를 못쓰고 내 글씨를 내가 별로 안 좋아해서 나는 메모하는 습관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도 노트 필기를 대충 했고(해놔도 나중에 잘 안 보니까) 책 읽으면서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무슨 책에서 어떤 내용 읽었는지 기억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슨 책에서 무얼 읽었고 그게 나에게 어떤 인사이트를 남겼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좋았는지, 감동적이었는지, 슬펐다든지 이런 단순한 감정만 기억날 뿐 어떤 문장, 어떤 표현, 어떤 내용이 내게 그렇게 강렬했는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단체에서 회의를 하더라도 어떤 결정을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렸는지, 내가 무슨 일을 맡았고 그 일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기억이 나질 않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게 되었다. 회의 문서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을 게을리했었는데 이제는 다른 누가 아니라 내가 일을 하기 위해 기록을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일할 때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나서도 가능하면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니까. 인상 깊었던 책의 구절을 기록하고, 내 생각과 감정, 그 책이 내게 준 인사이트가 있다면 그런 것들을 써놓는다. 써놔도 까먹지만, 리뷰를 써놨다면 나중에 쉽게 찾아보거나 꺼내먹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완결된 서평이 아니라, 나중에 내가 찾아보기 위해 정리하는 것이라서 잘 써야 할 필요도 없고, 쓰는 것 자체가 중요한 기록. 이렇게 기록을 쌓아가다 보니 생각지도 않은 공부가 된다. 정희진 선생님이 그랬나. 독서는 한 권의 책이 내 몸을 통과하는 일이라고. 그냥 눈으로만 읽은 책의 정보와 지식, 사유는 내 머리에 잠시 머물다가 이내 떠나가지만 내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 정보와 지식, 사유는 형태를 바꾸어 내 것이 되기 마련이다.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쓰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인 것이 결과적으로는 아주 좋은 독서 습관, 공부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소화력과 산책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능력이 떨어진 것은 소화력. 어느 날 동생이 "오빠 나 요즘 밥 먹고 나면 소화가 잘 안 돼"라고 말했을 때, 깜짝 놀랐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밥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해서 밥을 조금 먹어봤지만 더부룩함은 사라지지 않고 배만 빨리 고파지더라. 나는 그게 내 식습관의 문제인가 싶었는데 동생도 그런 걸 보면 그냥 나이 먹어서 소화기의 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폭우가 오거나 폭염이 아니라면 밥 먹고 나면 늘 산책을 한다. 원래도 걷는 것을 좋아했지만 산책을 꾸준히 하는 편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밥 먹고 나서 산책이라니. 일하는 사무실 바깥 풍경이 좋을 때(출판단지, 혁신파크 같은 곳들)는 산책을 종종 했지만 소화를 위해 산책을 하지는 않았는데 요즘엔 밥 먹으면 일단 나간다.


그러다 보니 10년 넘게 살아온 동네에서 첫 가보는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늘 다니던 길의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곳에 이런 꽃이 있었나' '이 나무는 까치들의 휴식공간이구나' '이맘때 이 길에선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구나. 이거 <제철 산문>에서 읽은 가을 냄새 같은데' 처음에는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듣거나 노래를 들으며 걸었는데 갈수록 이어폰을 두고 나오는 일이 많다. 특히 아침 산책 때는 낮의 분주함이 아직은 깨어나지 않은 시간, 새들의 소리가 더 선명해서 일부러 이어폰을 빼고 나온다. 그렇다고 내가 막 생태적인 인간이고, 새소리 들으면서 무슨 새인지 구분하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침부터 번잡스럽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밖에도 떨어진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나는 예전보다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눈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일상생활에서도 외출할 때 선글라스를 챙기게 되었다. 마음도 예전보다 쉽게 물러지는지라 보살핌과 돌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나부터 주변 친구들을 챙기고 돌보려는 노력도 예전보다는 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여러 변화들을 들여다보니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쪽으로 바뀌어 가는 게 아닌가. 역시 결핍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나는 20대 시절 그 체력이 그립다. 새벽까지 술 마셔도 다음 날 멀쩡하게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던, 하루 종일 행진을 하고 밤에 술 마셔도 다음 날 아침 거뜬하게 일어날 수 있었던, 하루에 몇 개씩 약속을 잡아도 시간이 부족할 뿐 에너지가 부족하지는 않았던 시절. 그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물론 지금 들인 좋은 습관들-기록하고, 산책하는 나 그대로인 채로 20대의 체력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만약 20대 체력을 회복한다면, 기억력도 좋아지고 소화력도 좋아진다면 나는 또 기록하지 않고 산책하지 않으며 살아가겠지.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면 알고도 못 고치는 것도 인간의 속성. 알아차린 것에 감사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라도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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