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고 Sep 20. 2023

대충 살고 싶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느슨한 싱가포르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야외 테라스에서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와 테이블 아래 졸고 있는 강아지. 느릿느릿 산책길을 가로지르는 도마뱀. 그 사이를 무심하게 넘어가는 한 손에 커피를 든 여자.

무언가빼곡히 채워지지 않은 여백이 있는 풍경이다.

이 풍경에 놓여 적당히 여유롭게 대충 살고 싶었다.

이곳에 있으면 그리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적당히 대충처럼 보이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는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마음의 실타래 몇 가닥만 자연스럽게 늘어뜨려, 무심하고 여유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쓰며 살고 있다.

느슨함을 즐길 여유조차 없는 빼곡한 마음을 가진 나는, 평화로운 이 풍경에 맞지 않는 장르이다.


지나친 욕심,

건강하지 못한 관계,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

묵은 감정들은 수북하게 자라 무성해지고 있다.

오늘은 좀 잘라내야지.

조금 힘들고 아플지도 모른다.

잘려나간 빈 공간에 여유가 생기기를.

느릿느릿 한없이 고요한 그 당당함을 소망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게으른 작가의 소박한 새해소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