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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란 Feb 26. 2023

'슈퍼 면역자'가 되어보자

INFJ의 자기계발 기록ㅣ해외살이 편

 근 2년 동안 동동거렸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캐나다에 오고 나서는 코로나를 거의 실감하지 못했다. 한국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방역 조치가 더 엄격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나라가 이렇게까지 덤덤할 줄은 미처 몰랐다. 더군다나 내가 출국할 당시까지만 해도 테스트 결과와 백신접종증명서류까지 제출해야 했기에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정반대로 마치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세상 같이 느껴졌다. 당연했던 것들에 낯섦을 느끼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묘할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한편으론 예상된 일이었다 싶다. 2년 동안 잘 피해 다녔던 녀석을 캐나다에 오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아서 결국 마주하고 말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운동하던 중에, 애플워치에 알림이 떴다. 룸메 언니에게 온 카톡이었다. “나 며칠 전부터 기침이 있어서 검사해 봤는데 양성이야.. 너도 키트 한 번 해봐..” 증상이 전혀 없긴 했지만, 유증상보다 경미하거나, 증상이 없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늘던 걸 알기에 워치를 일시정지하고 부랴부랴 짐을 뒤적여 검사키트를 찾아 코를 찔렀다. 몇 번 해도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 불편한 코 찌르기를 마치고 언니와 통화하기를 5분쯤 지났을까 선명한 한 줄이 드러났다. “나는 음성 나오긴 했는데, 혹시 모르니 몇 분 더 기다려볼게.” 내가 말했다. 그렇게 다시 몇 분이 지났지만 그대로 한 줄이었다. 버리려던 찰나, 미세하게 옆으로 한 줄이 더 보였다. 내가 갑자기 침묵하자 언니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이거.. 양성인가..?”


 결국 새로 뜯은 키트에서는 확신의 두 줄을 보았다. 이로써 내가 '슈퍼 면역자'가 아니었음이 확인되었다. 얼굴에는 마스크를, 손에는 두 줄이 선명한 키트를 들고 방문에 기대서서 홈맘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할지 실랑이를 하다,  결국 셋을 세고 동시에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갑작스러운 우리의 격리 생활이 시작됐다.   

* 캐나다는 2022년 초부터 자가격리가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었으며, 기간도 5일로 짧았다. 따로 관리감독 하지 않다 보니 며칠간 격리를 하는 지도 대중이 없다. 워낙 격리자 감독이 잘 되는 우리나라와 너무도 다르게 운영되는 체제에 다시 한번 놀랐던 경험이.. 0_0


새 키트에서 선명한 두 줄을 보고 나서 첫 번째 키트도 점점 확신의 두 줄로..


 격리 생활은 다행스럽게도 꽤나 순조로웠다. 둘 다 목 통증과 약간의 기침을 빼고는 큰 증상이 없었고 코로나 부작용 중 폭발하는 식욕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잘 먹고 잘 잤다. 실제로 격리가 끝나고 나서 부쩍 몸이 무거워진 것을 체감하기도 했다.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 나는 ‘코로나 블루’를 꽤나 짙게 겪었다. *정식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당시의 내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 단어인 것 같다. 가까운 지인들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집에 찰떡 같이 붙어있는 집순이이기에 단순히 외출을 못해서 답답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불안하고 예민한 기질이 담긴 컵에다 오만가지 불안 요소들이 결합된 코로나를 콸콸 들이부으니 그 불안과 예민이 가득 차다 못해 넘칠 수밖에.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높은 불안도와 스트레스를 보이는 내게 코로나는 독약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무기한으로 연기된 출국 계획, 이게 맞는 건지 계속해서 스스로를 의심하는 직장 생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포기한 인간관계, 그리고 이외에 내가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상황들의 반복


 식욕이 아예 없거나 과식을 하거나,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하나에 꽂혀 모든 시간을 거기에 쏟거나,  모든 선택이 이렇게 극과 극을 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그 상황들을 나름 잘 통제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갤러리를 보고 놀랐다. 내가 이때 이렇게 표정도 없고, 살이 빠졌었던가 싶어 가족들과 통화하며 이야기를 꺼냈더니 “맞아. 너는 아니라고 괜찮다고 했지만, 그때 너 정말 안 괜찮아 보였어. 살도 눈에 띌 정도로 빠지고 그렇게 잘 먹던 애가 뭘 잘 먹지도 않고. 출퇴근할 때면 마치 태엽 인형 같았달까.”라고들 말했다. 마음의 감기는 내 생각보다 훨씬 지독한 거구나 싶었다.



 어떠한 선 없이 마냥 존재하는 것 같은 것들에도 분명 어떠한 형태로든 끝이 있다. ‘내게 놓인 이 모든 상황들이 정말 이렇게 힘들어할 만큼 내게 힘이 든 상황인 걸까. 어쩌면 그저 내내 따뜻한 방 안에만 있어서 추위가 더 쉽게 느껴지는 것처럼, 내가 그간 너무 평온하게 지내서 별 것 아닌 것에도 쉬이 마음이 흔들리는 건 아닐까.’ 하루를 후회하는 끝자락엔 늘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돌이켜보면 그런 상황에 놓여봤기에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고, 그렇게 확장된 생각은 곧 시야와 마음 그릇도 넓혔다. 그릇을 넓히고 나니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단번에 들어왔고, 그것들을 그릇에 채우면서 지난 한 해를 보냈다. 얼마나 오래, 깊이 후회하고 아파하는 데 시간을 썼든 간에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성장했다면 그걸로 되었다. 요즘도 종종 마음의 잔병치레를 앓지만, 이전처럼 회복을 재촉하려 들며 아픈 곳을 후벼 파기보다 그냥 아프면 아픈가 보다 하고 상황 자체를 그저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려 애쓴다. 한 번 두 번 잔병치레를 겪을 때마다 이렇게 애쓰다 보면 비록 코로나에는 슈퍼 면역이 없었지만, 마음에는 슈퍼 면역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다짐해 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 :)


“살면서 힘든 날이 없기를 바랄 수 없다. 어떻게 쉽기만 할까? 인생길 다 구불구불하고, 파도가 밀려오고 집채보다 큰 해일이 덮치고, 그 후 거짓말 같은 햇살과 고요가 찾아오고 그러는 거 아니겠나. 도망간다고 도망가질까.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해도 시간의 힘으로 버티는 거다.” 

- 양희은, 『그러라 그래』, 김영사, 2021,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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