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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란 Aug 20. 2023

행복하려고 사는 것이 아닌, 살려면 행복해야 함을

저녁형 인간이 아침을 사랑하기까지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 북스, 2021, p.48
행복을 생각하기에 앞서, 행복을 찾는 인간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자. 인간은 동물이다. 행복에 대해 고민도 해보는 똘똘한 면은 있으나, 살아가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다. 생존과 짝짓기. 인간은 좀 더 세련되고 복잡하게, 때로는 대의명분을 만들어 자신도 모르게 그 목표들을 이룰 뿐이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 북스, 2021, p.76


 최근 읽고 있는 책을 통해 나만의 습관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는 날들이 늘어남에 따라 삶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왜 달라졌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았던 그 순간부터, 즉 살려고 만든 습관들이 쌓여 정말 나를 살게 했고, 행복하게 했던 것이었다.



 나는 새벽 시간을 참 좋아한다. 진한 커피를 내리듯 서서히 퍼져가는 어둠은 내 마음도 서서히 편안하게 물들이고, 특유의 그 고요함은 나를 하루 중 가장 차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마냥 흩어지는 그 시간이 아까워 잠을 줄이면서까지 그 시간을 즐기려고 했었다. 그렇게 새벽을 즐기고 다시 해가 채 다 떠오르기 전에 기상해 집을 나서야 했으니 학생 때부터 내내 다크서클이 잘 사라지지 않았던 것도 이제는 납득이 간다. 그랬던 내가 아침을 사랑하게 될 줄이야.


 지난해 제야의 종소리를 기점으로 시작된 이 변화는 당연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변화를 다짐한 계기는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나의 불안을 덜어보고자 함이었다. 해가 바뀌고 나니 출국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실감 났고, 그에 반해 스스로가 준비가 너무 덜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간을 스스로에게 할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떠오른 방법이 시간 쪼개기였다. (시간 쪼개기에 도움을 받은 영상들은 다른 시리즈에 공유해 두었다.) 당시 재직 하던 회사는 자율출근제를 시행하고 있었기에 11시 전까지 자유롭게 출근할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을 기회로 보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새벽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했기에,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요상한 방법으로 시간을 확보했다. 아마 '새해'라는 기간이 주는 효과와 초반의 열정으로 가능했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그때의 기록들을 다시 보면 스스로를 꽤나 혹사시켰던 경향이 있다.


 이후 현지에 와서는 그렇게까지 혹독한(?) 아침 시간을 보내진 않았다. 일찍 일어나 놓고도 무엇을 할까를 계속 고민하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아침 습관을 참고해 여러 습관들을 스스로에게 시험해 보면서 자책도 실패도 참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아침 습관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던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변화를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체감했기 때문이다.



내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습관들 몇 개를 꼽아보자면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첫째, 스트레칭하기

 수년간 겪은 깊은 우울은 결국 신체적 변화로도 두드러졌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운동장보단 그늘 아래 계단에 앉아있던 시간이 더 많았던 학생일 정도로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나였지만, 나의 몸이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왔기에 사실 정말 살려고 시작한 운동이었다. PT나 수영 같은 운동은 시작할 엄두가 잘 안 나기도 했고 그 당시 나는 정말 집순이였기에 집에서 할 수 있는 홈트레이닝, 그중에서도 강도가 그렇게 세지 않은 요가로 첫 운동을 시작했다. 어느덧 3-4년째 홈트레이닝을 이어오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면 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듯싶다. 극적으로 체중을 감량했다거나 하진 않지만 스스로 다른 방안을 고민해 보고 적용해 보고 그로 인해 체감되는 또 다른 변화를 느낄 때, 운동이 재밌다는 생각을 조금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실내 자전거나 덤벨 등 운동 기구에 변화를 주거나 무게를 증량하거나 또는 주기별로 운동 영상의 종류를 다양화한다. 


 이야기가 잠시 딴 길로 샜는데, 아무튼 이렇게 운동을 이어가다 보니 기초 체력과 몸을 풀어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고, 저녁에 하는 홈트레이닝과 별개로 아침에 10-15분 정도의 스트레칭 습관을 추가했다. 처음엔 사실 정말 단순한 동작들이기에 효과가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는데, 확실히 스트레칭을 한 날과 하지 않은 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때 느낌이 다르다. 알람을 끔과 동시에 영상이 재생되기 때문에 가끔은 스트레칭을 하다 졸 때도 있는데, 그러면 그런대로 하기 싫은 날엔 시간을 조금 줄이는 등으로 아침부터 너무 나를 다그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둘째, 정리, 정돈하기

 나의 강박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습관, 청소다. 나는 위생과 정리에 상당히 예민한 편이다. 내가 생각해 둔 장소와 방식대로 정리가 되었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그것들에 신경 쓰느라 다른 것에 잘 집중하지 못한다. 사실 청소하면서 눈앞에 무언가가 정리되는 그 순간순간을 즐기기도 한다. 어학원에 다닐 때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나누어 청소를 했는데, 요즘에는 아침 루틴을 마친 후, 아침을 먹은 다음 청소를 한다. 승진 후, 대부분의 스케줄이 오후-저녁이라서 가능한데, 아침 스케줄이 있는 날에는 저녁에 청소를 하거나 너무 지친 날은 슬쩍 건너뛰기도 한다. 지금은 현지에서 방 한 칸을 빌려 생활하는 것이기에 비교적 관리해야 하는 공간이 많진 않아서 보통 10-15분 내에 청소를 완료한다. 


 먼저 소독 물티슈를 활용해 책상, 서랍장 들에 밤새 쌓인 먼지를 닦아낸다. 그다음엔 베개를 가볍게 털고 옷솔을 활용해서 침대 패드의 먼지를 털어낸다. (이불은 침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정리해 두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 절약은 덤). 마지막으로 요가 매트를 가볍게 털어 세워두고 바닥 청소를 하면 끝! 바닥 청소를 마친 후에는 요가 매트에 소독제를 살짝 뿌려둔다. 운동할 때 깨끗한 매트를 보면 청소한 보람이 더 생기게 운동을 조금 더 집중해서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달까.


셋째, 따뜻한 음료 마시기

 냄새엔 민감하지만 비유가 약한 편은 아닌데 (천엽, 개불 등 많은 이들에게 호불호가 있는 음식들 마저 내겐 최고 애정하는 음식들일뿐), 이상하게 생수를 잘 못 마신다. 냉수는 괜찮은데 미지근한 생수나 온수는 왠지 모르게 그 비릿함이 느껴진달까. 그래서 어려서부터 보리차를 마셔왔는데, 그 구수함과 깔끔함을 나는 참 좋아한다. 얼음을 오독오독 씹어먹고 과일은 무조건 얼려 먹는 걸 좋아할 정도였던 나는 평소 따뜻한 음료와는 거리가 정말 멀었다. 그러던 내가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 건지, 이곳의 길고 짙은 겨울의 영향인지, 작년부터 조금씩 따뜻한 음료를 즐기기 시작했다. 아침 스트레칭을 마친 후, 물을 끓여서 프렌치 프레스를 활용해 보리차를 우리는데, 미처 햇빛이 닿지 못해 차가운 공기 서서히 물드는 은은한 구수함이 몽롱한 나를 촉촉이 적셔주어 아침을 따뜻하게 시작하게 해 준다. 아침에 마시는 온수 한 잔은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심리적으로도 건강적으로도 일석이조의 효과? :)


넷째, 기록하기

  기록의 시작점은 알 수 없지만, 예전부터 꾸준히 산발적으로 기록을 해왔다. 늘 그렇게 듬성듬성 기록해 오다가 작년 여름즈음부터 마음을 먹고 매일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한정적이라 그런 건지 유독 더 빠르게만 흘러가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깊게 기억하고 싶었고 또 너무 엉켜있어 차마 풀 마음을 먹기가 어려운 나의 복잡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공간이 필요했다. 작심삼일만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그 시작을 어느새 1년째 이어오고 있음을 얼마 전 아침에 일기를 쓰며 깨달았다. 그 1년 동안 기록의 과정도 여러 번 변화를 거쳤는데, 지금은 아침 일기는 손으로, 저녁 일기는 타이핑으로 저장한다.


 일기 외에도 목표, 하루 계획, 인사이트, 책, 영화 등 내가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즐기지만 아침 시간에 이 모든 기록을 다 할 순 없으니까? 적당히 타협해서 아침에는 목표-일기-하루 계획 이렇게 세 가지의 기록만 진행한다. 단 한 줄이라도 이렇게 하는 매일의 기록들을 나 스스로가 알아주고, 그로 인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하루 일지라도 매일매일이 ’ 보내야 하는 하루‘가 아닌 ‘채워가는 하루’로 남는다.



 이렇게 풀어써서 그렇지 사실 보통 10-20분 내로 진행되는 간단한 습관들이다. 나의 아침 루틴은 50분 내지 1시간 내외로 진행되는데 조금 무료함을 느낄 때쯤 한 번씩 약간의 변화를 주곤 한다. 너무 익숙한 것들만 반복하게 되면 즐기기보단 해내야 하는 것으로 습관의 목적이 방향성을 종종 잃기 때문에 ^^;


스트레칭 

눈꺼풀 세척 

침구 정리 & 방 환기 

가글 하며 잠 깨기 

전 날 설거지 해 둔 그릇 정리하기 

물 끓이고 차 우리기 

유산균 섭취하기 

차 우러나는 동안 영어 만화책 읽기 

확언 필사 후 짧은 명상(=눈 감고 생각 흘려보내기 :D)하기

일기 작성하기 

하루 할 일 정리 후 일정 계획하기 


최근에는 이 정도의 고정된 루틴을 실행하고 있다. 전 날 늦게까지 놀아 피곤하다거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영 루틴을 할 기분이 아닐 때는 필수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몇 가지를 건너뛰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은 책이나 드라마처럼 언제 결말이 난다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에 꾸준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습관들을 만들고 실행하는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강박적인 성향이 짙은 내가,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제와 비슷하게 흘러갈 오늘도 “일관성은 완벽함보다 중요합니다.”라는 문장과 ”Done is better than perfect."이라는 문장을 늘 스스로에게 되뇌며, 나의 완벽주의를 긍정적인 쪽으로 이끌고자 부단히 애써본다.



완벽하려고 미루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고쳐나가는 것이 낫습니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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