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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란 Feb 11. 2024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조금 시간이 더 걸릴 뿐,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다른 길은 늘 있다.

2년 반동안 직장생활을 했지만 사실상 취준이란 걸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인턴으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후, 같은 회사에서 쭉 일했기 때문이다. 모르면 용감해진다는 말처럼, 캐나다 학력도 경력도 인맥도 아무것도 없지만, 막연히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단 일주일 만에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현지 취업 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였지만 말이다.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인 캐나다는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곳이다. 그 말은 곧 취업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대들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경쟁자들의 범주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는 학생비자 소지자에게 주 20시간의 근무만을 허용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정책 완화로 취업비자 소지자들과 동일하게 주 40시간의 근무를 일시적으로 허용했다. 그래서 나와 동일한 코업과정을 하는 친구들 중에는 학기 중에도 풀타임 (*캐나다에서는 주 30시간 이상 근무를 풀타임, 이하 근무를 파트타임으로 분류한다.)으로 근무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내가 들은 코업 과정은 5개월 간의 학업, 5개월 간의 인턴십이 결합된 과정이었는데, 앞서 언급한 정책 완화로 10개월 내내 풀타임으로 근무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나는 학업과정을 한 달 정도 남겨두었을 때쯤 파트타임으로 캐나다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는데, 구직할 때 내가 가장 고려했던 부분은 한국 직무와의 연관성이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 채 여전히 방황 중이지만, 일단 비슷한 계열의 업무를 해외에서도 해봄으로써 직무에 대한 시야와 업무 능력을 상승시킴과 동시에 내가 진정으로 그 직무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사실상 거의 환상에 가까웠다. 한국에서 무얼 공부하고, 어떤 일을 했든, 또 현지에서 어떤 공부를 했든 간에 회사에서 채용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비자 기간'이었다. 추후 워홀 비자기간까지 포함시켜도 1년 반이 최대 근무 가능한 기간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 부분을 가장 많이 아쉬워했다. 게다가 면접 경험이 많지 않았고, 영어 면접 경험은 거의 전무했기에 참 많이 허둥대고 스스로에게 아쉬워했다. 허위 기업의 면접을 보고 사기를 당할 뻔하기도 하고, 나를 소개하는 영상을 촬영해 보내기도 하고. 별의별 일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운이 좋게 구직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캐나다에서의 첫 직업을 구할 수 있었다.

⌨️ 디자인이나 개발과 같이 기술적인 직무를 제외하고는 안타깝게도 한국에서의 경력이 캐나다의 구직활동에 많은 영향을 주진 못한다. 현지 기업들에서는 본인이 얼마 큼의 경력이 보유했는지보다도 ‘현지 경력’이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 그리고 앞으로 할 모든 일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늘 기억하자. 경력을 100% 활용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활용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인터뷰 질문에서 이전 직장의 경험을 녹여 답변을 할 수도 있고, 업무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경력자의 '짬'을 보여주어 더 높은 업무 성과를 보여줄 수도 있다.




그렇게 구한 캐나다 첫 직장은 K-POP 그룹 방탄소년단의 팝업스토어였다. 방탄소년단의 앨범과 다양한 굿즈들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포토존과 다양한 이벤트들을 진행하는 공간이었다. 캐나다 내에서는 처음 개최되는 팝업이라 오픈 전부터 많은 팬들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는 장소였는데, 나는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가 오픈 일에 첫 출근을 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팝업 스토어는 토론토 다운타운에 위치한 이튼센터라는 대형 쇼핑몰에 개최되었다. 오픈 전날, 매장 입구부터 시작된 대기줄은 아침에 와서는 층층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매층마다 평소보다 많은 인원의 경비원 분들이 배치되었다. 길었던 대기줄만큼 첫 주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훗날 팝업스토어를 마무리하고 직원들과 이야기를 할 때 다들 “바빴던 건 아는데 너무 바빴어서인지 어땠는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곤 했다.


부족함과 아쉬움이 많았던 첫 근무를 마치고 “큰일 났다! 큰일 났잖아? 큰일이네.." 하며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이 난다. 근무 환경에서 사용하는 영어와 학원에서 사용하는 영어 간에 차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실제 느낀 차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곱절로 크게 다가왔다. 일단 고객들에게 조금 더 정중하고 명확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여러 표현들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스몰톡* 문화에 조금 더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판매로 연결시키는 연습도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소규모 스타트업에서 일했기도 하고, 소위 ‘직장인 패치’가 장착되어 있어 낯 가리는 성격을 그나마 숨길 수 있었는데, 그보다 3-4배의 인원에 오직 현지인들로만 구성된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몇 배의 효과를 지닌 강력한 직장인 패치를 필요로 했다. 

☕️ 스몰톡 (Small Talk)이란, 가볍게 안부를 묻거나 일상을 물음으로써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는 북미의 대표적인 대화 문화 중 하나이다. 친구나 가족과 같이 가까운 지인들 뿐 아니라 직장 동료나 처음 보는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 캐나다에서 이루고 싶은 것 
1. 현지 기업에서 일하기
2. 한국 경력과 연관성 있는 잡 구하기
3. 오피스잡 구직 성공하기
...


내가 생각한 것과 완벽하게 달랐던 해외 직장 생활과 문화는 나로 하여금 또다시 ”모든 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는 중요한 명제를 되새겨주었다. 캐나다 생활 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했다. 완벽주의에 강박적 성향까지 있는 내게 '변수'는 늘 치명적이었다. 변화된 환경에선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변수들이 발생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변수들이 많으면 결과를 더 예측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고. 


혼자서 레쥬메와 커버레터를 수정하고, 완벽하지 않은 그 서류들로 100곳 가까운 곳에 입사지원을 해보고, 낮은 타율이지만 그래도 몇몇 기업들과 면접을 보고... 이렇게 내게 다가오는 변수를 한 두 개씩 쳐내가면서 일단 해봐도 괜찮다는 걸, 실패해도 해보고 실패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깨달은 것들은 내가 내 삶을 대하는 기준이 되었고 나는 하루에 조금씩 더 단단해졌다.


Look, you can't design your life like a building.
It doesn't work that way.
You just have to live it, and it will design itself.

<How I Met Your Mother #S04 E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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