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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란 Nov 30. 2022

낯섦은 변화의 신호

INFJ의 자기계발 기록ㅣ해외살이 편

  비행기에 탑승하고 승무원 분들과 인사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내 출국을 여전히 실감하지 못했다. 출국을 실감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였다. 사실 큰 기대와 달리 토론토에서의 일주일은 내게 무척이나 차가웠다. 가장 큰 이유는 지독한 멀미 때문이었다. 운이 좋게 가족 마일리지로 난생처음 비즈니스석에 탑승하게 되어 유튜브에서 후기도 찾아보고 엄청 기대를 많이 했는데,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한 것과 와인을 여러 종류 시음해보지 못한 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14시간 중 첫 2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내내 멀미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비행기에서 먹는 라면이 맛있다는 사람들의 말을 그때 처음으로 이해했다.


기대에 부풀어서 주문한 첫 기내식이었지만 한 술 뜨자마자 기체가 흔들려서 고작 세 술 밖에 먹지 못했던


한숨 자고 나니 나아져서 주문한 라면. 재밌는 영화와 맛있는 영화의 조합이란 역시. 듄 너무 재밌다!


라면 먹고 나니 입이 심심해서..


상태가 좀 나아져서 다시 부푼 기대감을 갖고 기내식을 받았는데, 또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비행기가 내가 밥 먹는 걸 싫어했던 걸까



  내리자마자 내가 해야 하는 것은 1. eSim을 설치하고 2. 와이파이를 연결해 픽업 기사 분께 연락을 드리고 3. 위탁 수하물을 찾는 일이었다. 쉬운 일이었지만, 문제는 무게였다. 전자기기로 가득 채운 배낭과 별로 든 것도 없는데 왜인지 무거운 타포린 백, 그리고 미처 캐리어에 넣지 못한 옷을 겹겹이 껴입은 나까지.. (도합 10kg 가까이 됐던 것 같다.) 히터가 가동되는 따뜻한 공항에서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바퀴도 없는 타포린 백을 캐리어처럼 끌며 찾는 출구가 정말 무슨 몇 km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공항 출구에 서서 들이마신 토론토의 첫 공기는 새벽처럼 차가왔다. 4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도 눈이 흩날리는 걸 보고 있자니 '캐나다는 역시 겨울의 나라이구나.' 싶으면서 낯섦이 공기에 녹아든다면 꼭 이런 냄새와 느낌을 지녔을까 싶었다.


  시차 적응은 크게 힘들지 않게 무난히 넘어갔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멀미 때문에 꼬박 이틀 간을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더니 고슴도치가 된 것 마냥 뾰족뾰족 날카로워졌다. 유학원 오리엔테이션까지 남은 3일 간 한국에서 알아봤던 방들을 뷰잉 할 예정이었는데, 이런 낯선 모든 것에 더해 두어 차례의 인종차별까지 겪게 되어 나의 예민 곡선은 하향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기운이 빠져서 구운 식빵마저도 한 입 먹고 채 먹질 못했던. 내가 빵 한 쪽도 채 다 못 먹었다니 말도 안돼.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 언제쯤 사라질지 따지고 싶은 멀미, 그리고 처음 지내보는 셰어하우스의 낯섦까지. 단 이틀 만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침대에 무거운 몸을 뉘이고 늘어졌다. 그렇게 누워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졌고, 생각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모든 일은 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고, 쉬운 일 하나 없는 건 늘 알고 있었으면서, 그저 들뜸에 기대에 온갖 좋은 상상으로만 나를 가득 채워두니 고작 며칠 만에 지쳐버릴 수밖에. 문화도 환경도 처음으로 가득한 이곳에서의 처음이 쉬울 리가 있겠느냔 말이야. 벌써부터 이렇게 지쳐한다면, 앞으로 남은 2년은 어떻게 보낼 건데? 어영부영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그 시간들을 곱씹으며 후회할 작정이야 예전처럼? 심지어 그땐 원해도 다시 못 올 수도 있는데. 그렇게 원해오던 거잖아. 지나간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이전 경험으로 깨닫고 또 깨달았잖아. 덜 후회할 오늘을 살아."



  그랬다. 나는 오기 전에 얻었던 깨달음들을 고작 도착한 지 며칠 만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이미 보낸 어제를 지울 순 없지만, 새로운 하루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경험 그리고 습관들로부터 알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다시 각인시켰다. 오기까지 했던 생각과 행동의 시행착오들을. 낯섦은 곧 변화의 신호라는 것을. 언젠가 낯섦이 익숙함으로 변하는 순간 이 낯섦마저 애정할 순간이 올 거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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