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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란 Jan 25. 2023

우연, 인연, 그리고 필연

INFJ의 자기계발 기록ㅣ해외살이 편

  홈맘이 싸주신 점심을 비장하게 가방에 챙기고, 집을 나선 어학원 첫날. 길치인지라 조금 빨리 나왔더니 선생님보다 일찍 도착해 버렸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선생님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나니 하나둘 학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울릴 정도로 텅 비어있던 강의실은 어느새 학생들의 온기가 조금씩 차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자, 학원 로비는 반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로 가득 찼다. 꼭 미니언즈처럼 다들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기 바빴지만 아직 낯가림을 극복하지 못한 겨우 그 틈을 빠져나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낯섦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다. 또 한 켠으로 어렵사리 이곳까지 왔음에도 선뜻 먼저 말을 건네는 용기가 없는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첫날부터 뭐 그리 마음이 급했는지


   다음 날도 밥친구인 크레마를 꺼내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고 있었는데, 몇 자리 건너에 앉은 친구가 점심을 같이 먹지 않겠냐고 먼저 말을 건네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내가, 또 다음 날은 다시 친구가 조금씩 용기를 내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만 괜찮으면, 다른 반에 있는 내 친구들 소개해 주고 싶은데 어때? 오늘 학원 끝나고 만나기로 했거든!" 좋다고 대답했지만, 괜스레 조금 긴장이 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다들 환한 미소로 날 반겨주었다. 그렇게 나 또한 학원 로비 앞 미니언즈들 중 한 명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지쳐서 들어간 푸드코트에서. 맥도날드 햄버거 세트가 15불인 것을 보고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내가 다녔던 어학원은 매월 첫째, 셋째 주 월요일마다 새로운 학생들이 오고, 더불어 레벨 업한 학생들이 반 이동을 했다. 우리 반 역시 새로운 친구들이 여럿 찾아왔는데, 그중 유독 눈에 밟히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저 우연이었는지 운명적인 끌림이 있던 건지는 모르지만, 불과 몇 주 전의 내 모습과 너무 비슷해 보여서 왠지 모르게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K(앞 문단에서 언급한 친구)가 내게 용기를 내어 다가와 준 덕분에 K와 같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그 친구에게 K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고, 뭘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그 마음을 나도 너무 잘 아니까.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이때를 함께 회상하면서 내가 K에게 느낀 감정을 그 친구 역시 나를 통해 느꼈다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캐나다에서 보낸 시간에서 서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참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jpg


  난 지금도 가끔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 기억을 찾는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더라도 그 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그러니 힘들어도 눈 딱 감고 한 번만, 일단 결과 생각 말고 한 번만 용기를 내보자고 스스로에게 손을 내미려고 말이다. 그게 나를 위해서든 남을 위해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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