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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Aug 19. 2024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책방

이때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여기에서…… 어쩌다 책방을……?"이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이거나 "책방을 왜 여셨어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공통적으로 책방을 대체 왜 하냐는 질문이었는데, 영업 초반에는 "20대 초반부터 작은 책방 다니는 걸 좋아해서요" "그러다가 어떤 대표님이 말씀해주신 책방 창업기도 들어보게 되었고요" "할머니가 되면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였고요"와 같은 말들로 답변을 했다.

똑같은 말을 자꾸 반복하다 보니 지겨워졌고, 지겨워지니 싫어졌고, 싫어지니 점점 삐뚤어졌다. "회사 다니기 싫어서요!" "혼자 있고 싶어서요!" "그러게요. 저도 정말 알 수가 없네요"……. 답변의 각도가 틀어지면서 내가 상대방을 너무 성의 없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어느 시점부터는 그러한 대답만이 진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김성은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을 읽다가 이 책방을 알게 되었는데요. 혹시 서점은 따로 운영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프라인 서점은 운영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프로그램과 글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랬군요. 책을 읽으면서 오래도록 남아있길 바랐는데, 사장님의 마음이 가장 속상하셨을 테니 어떤 말도 조심스럽네요.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출간 시기 후로 코로나가 극심해지면서 모임과 강의 등이 어렵게 되었어요. 여러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요.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폐업이었답니다. 언젠가 또 공간을 꾸리게 된다면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제 책이 계속 읽히고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독자 교정단으로 참여했던 '책과이음'이라는 출판사에서 이번에는 '느린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느린사람'은 이름처럼 책과이음에서 출간된 지 두 해 이상 지난 책을 천천히 읽고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리뷰어 활동이다. 읽고 나서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리뷰를 작성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문장과 형식적인 리뷰를 올리는 경우, 앞으로의 모집에서 제외하겠다는 문장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느리더라도 함께 나누며 꼭꼭 곱씹어 읽고 싶은 분은 신청해 달라는 대표님의 마지막 문장에 조심스레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당첨자 발표가 있었고, 두 권의 책을 받았다. 그중 한 권이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이라는 책이었다.


우선 저자가 나와 나이도, 성별도 같다는 점에서 반가운 마음이 올라왔다. 졸업만 하면, 취업만 하면 이라는 다섯 글자를 곱씹으며 보낸 날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학사모를 썼고, 직장도 옮기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비정상의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녀는 1년의 안식년을 갖는다. 그리고 서울이 아닌 동두천이라는 곳에서 '책방'을 열기로 결심한다. 그녀에게 동두천은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낯선 지역이 아니라, 조금씩 정을 붙여가며 살게 된 동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두리니까. 중심이 아닌 변두리니까 더더욱 읽고 쓰는 공간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변두리라서 아프고 슬픈 이야기가 더 많다. 낭독하다 우는 낮도, 단편소설 한두 편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다 자정을 넘겨버리는 밤도 흔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러한 낮과 밤을 읽고 쓰고자 하는 욕망으로 변두리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변두리의 구석진 책방에서 나는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인구 10만도 되지 않는 소도시의 독서 인구가 그녀를 먹여 살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고, 규모가 더 큰 동네에서 시작하기에는 재정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직접 발품을 팔아 여기저기 부동산을 알아보고, 그동안 꿈꿔왔던 책방의 모습을 뚝딱뚝딱 만들어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쉽지 않은 여정이 펼쳐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언젠가 책방을 열어보고 싶다는 꿈을 마음 한 편에 안고 있기 때문인지 왠지 모를 측은한 마음마저 올라왔다. 사원증을 찍고 출퇴근하던 회사원에서 벗어나 책방의 주인이 된 저자는 혼자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불안감도 풀어냈다. 책방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라 자유로웠지만, 역설적이게도 누구에게나 열려있기에 위험한 공간이기도 했다. 수시로 찾아오는 불청객 때문에 공포에 떨어야 했던 순간도 있었고, 그럼에도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내가 다 속상했다. 이상한 사람은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고, 모든 사람이 선할 거라는 착각은 일찍이 버린 나였기에 더 그랬는지도.


책방의 사장이 된다는 건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만능 재주꾼이 되어야만 했다. 화장실조차 자유롭게 다녀올 수 없고, 책방의 운영시간과는 별개로 하루 24시간 일은 끊임없이 쏟아졌으며, 책을 판매하는 것 외에도 부수적인 아르바이트를 통해 구멍난 재정을 메꿔야만 했다. 방문하는 이들의 반복적인 질문에 피로함을 느끼면서도 마냥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 평소 '부탁'에 취약하고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치는 데 알레르기를 일으키면서도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 순수하게 모임을 좋아했던 과거의 모습과 달리 '모임이 많은 공간' '커뮤니티 공간'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책방이 일종의 상담소가, 책방 주인은 일종의 상담사가 되어가는 피로감도 느껴야 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는 운영에 지친 책방 주인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당초 대략 두 시간 정도로 생각했던 모임이 서너 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남들과의 균형을 고려하지 못한 채 말을 끊을 생각이 없는 사람도 분명 있으니까. 유독 강한 어조로 훈계처럼 쏟아내는 일장 연설을 듣다가 다 함께 위축되어 얕은 한숨만 내쉬는 밤도 있다. 버거운 하루를 보낸 어느 날의 나에게는 그것이 초과 근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해야만 거짓이 없는 정확한 표현이다. 타인의 여가가 나에게 과중한 노동이 되는 날이 잊을 만할 때쯤 한 번씩 꼭 온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곳만큼은 꼭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건물 4층 가장 구석에 있어 찾기는 어렵지만 20평 정도의 크기라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한 면이 모두 커다란 창으로 되어 있어 온종일 해가 드는 곳.


"코너스툴"


어찌 되었든 '코너스툴'은 그렇게 만난 단어 중 하나였다. 퇴사 후 푹 쉬던 1년의 기간 중, 책배가 누렇게 바랜 1998년도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중략)
책을 펴자마자 나오는 첫 수상작의 시작부터 '코너스툴'이라는 의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권투 선수가 잠시 쉬어 가는 의자. 싸움같이 느껴지는 삶을 쉬어 가기 위해 찾는 과수원이 화자의 코너스툴이라고 했다.
퇴사 후의 쉬는 시간은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무엇을 읽어도 그것이 돈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기에 즐거웠다. 낭비가 허락된 시간이었다. 위태롭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 같은 책을 만나지 못했고, 다만 '코너스툴'같이 드문드문 단어나 문장 조각만이 남았을 뿐이다. 책방을 열어야 하니 책방 이름을 지어야 한다. 마음속에서 이 문장을 마무리 짓기도 전에 가장 먼저 떠오른 글자는 '코너스툴'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초록색 창에 '코너스툴' 네 글자를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읽고 쓰는 구석의 작은 의자, 코너스툴'이라는 계정만 있고, '당분간 오프라인 공간은 없습니다!'라는 문장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없어진 걸까? 이것저것 찾아봐도 서점에 대한 최근 소식이 없었다. 2017년에 문을 열었고, 이 책도 2020년 2월에 출간되었으니 시간이 꽤 많이 흐르긴 했다. 그래도 그곳에 잘 버텨주고 있기를 바랐다. 용기를 내어 사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는데, 돌아오는 답변에 마음이 아팠다. 이번 글의 제일 첫머리에 있는 대화가 바로 코너스툴의 사장님이자 이 책의 저자인 김성은 작가님과 나눴던 대화다. 그래,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지. 짧은 대화였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작게나마 인사를 전하고 메시지 창을 닫았다.


아직도 나는 활자의 생태계 안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꿈꾼다. 그게 책방 사장이든, 서점지기든, 사서든, 출판사 직원이든, 편집자든, 작가든. 어느 것 하나 정해지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언젠가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상상을 버리지 못 했다. 어쩌면 이곳저곳 다양한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공간을 향유하는 것도 미래에 그리고 있는 나의 어떠한 모습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코너스툴의 모습에 유독 마음이 쓰였다. 지금껏 수많은 동네 책방을 오고 가며 사라진 곳들도 여럿 봤다. 한 번 찾았던 곳도 있고, 좋아하는 마음에 여러 번 단골처럼 방문했던 곳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소중하게 여겼던 장소가 하나하나 사라지는 경험은 아무리 반복해도 면역력이 생기는 것 같지는 않다.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친구를 잃은 것 같은 서글픔과 헛헛함마저 올라온다. 독서 인구는 해가 갈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데,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펼쳐가는 책방 지기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이번 책에도 담아버리고 말았다. 비록 서점은 사라졌지만 온라인으로 여러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 사장님의 행보를 가만히 응원해 보고 싶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방이 싫어질 때>라는 독립서적의 문장들도 떠올랐다.


언제까지나~라는 표현은 낭만적이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책방이 속한 건물은 오래되어 허물어질 것이며 책방 속의 책들도 빛이 바래고 책장은 서서히 굽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한 시절이 담긴 책방이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이 들릴 것이며 그 소식과 함께 옛 추억도 운영을 멈출 것이다. 그때 그 책방이 아직 문을 열고 있기에 어떤 시절도 되돌아볼 수 있는 거니까. 그런 관점에서 책방 사장님이라는 사람은 그저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페이지를 지키고 있는 파수꾼일 것이다.

<책방이 싫어질 때> 태재


지난주 정말 오랜만에 파주의 <사적인 서점>을 찾았다. 거의 1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사장님은 나의 방문을 반가워하시며 내 이름까지 불러주셨다. 이 따뜻한 공간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될까. 생각이 깊어졌다. 비록 도서관을 애용하다 우수 회원이 되어버린 나지만 이제는 독서인의 책무로서라도, 작은 책방에 방문할 때마다 마음을 울리는 책을 만나면 꼭 한 권씩은 사오자는 다짐도 해보았다(집이 작아 걱정이네). 물론 같은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사면 가격도 저렴하고, 혜택도 많지만 그럼에도 굳이 왜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분들 덕분에 독서생태계가 진실되게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미미한 내 답에 힘이 없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이자 행위에 대한 보답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렇게 나는 <사적인 서점>에서 이번 달 독서모임의 지정도서인 문보영 작가의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이라는 책과 <시와 산책>을 통해 좋아하게 된 한정원 시인의 신간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구입했다. 책방지기님께 또 오겠다는 인사를 건네고 그곳을 나서는데 비 온 뒤라 날이 좋았다. 빗물에 촉촉하게 젖은 푸른 잎과 선선한 바람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파주는 파주스럽게 잘 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가방은 조금 더 무거워졌다. 여전히 이쪽 생태계에 몸을 담고 있는 내가 한층 더 애틋해지는 순간이었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장강명 작가님을 제대로 뵙고 왔다. 2시간가량 진행된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술에 만취하면 메로나가 그렇게 땡긴다고 말했던 나의 농담을 기억하시곤 메론맛 초콜릿을 직접 선물로 챙겨 오셔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웃으면서 은근히 독한 말을 잘 하는 것 같다고 나를 놀리기도 하셨지만 친근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기뻤다. 정말 오랜만에 12시가 넘어 귀가했던, 한 여름 밤의 꿈같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작은 책방들이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임이 열렸던 장소도 서울대입구역에 위치한, 오래된 작은 책방이었으니까. 이제 <코너스툴>이라는 서점은 사라졌지만, 앞으로도 이 작고 소중한 서점들이 더 활발히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단순히 책을 구입하는 공간으로 끝나지 않고, 독서공동체라는 거대한 담론을 위한 하나의 마중물로서 각 지역에 공고히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마음을 깊이, 아주 깊이 담아본다.




여전히 건재한 <사적인 서점>과 내가 남겨 놓고 간 문장으로 입간판을 만들어주신 <시행과 착오>의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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