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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글

by 내민해
내가 쓰고 있는 게 소설이 맞는지, 그렇다면 소설이란 게 뭔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알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다행인 것. 하나의 장르이면서 장소가 되어준다는 것. 내가 한번 경험하고 느낀 것은 어떤 것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수 없다는 약속이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내 집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 집에서 앞으로도 진실 같은 상상, 상상 같은 진실을 계속 쓰고 싶다. 그러다 언젠가는, 마침내는, 그 두 개가 하나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아무런 두려움도 걱정도 없이.

<당신을 기억할 무언가> 강민선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감기. 감기를 손님이라고 표현하면 좀 그러려나. 그래도 난 손님이라고 부를래. 그럼 뭔가 좀 잘 대접하고 싶잖아? 넉넉하게 보내주고 싶기도 하고. 병원을 찾은 것도 오랜만이었다. 병원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건 아닌데, 내 나름의 기준이 있고 이번에 찾은 병원도 그런 곳이었다. 집 근처도, 회사 근처도 아닌 곳을 굳이 굳이 찾아가는 마음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어쩌면 이것도 감기를 좋게 보내주려는 나의 세심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헛소리가 꽤 길었는데(하지만 이런 헛소리는 좀 좋아한다), 집에 도착해서는 약을 먹었다. 좀 이상한 말일 수 있지만 나는 감기약을 좋아한다. 그래, 역시나 쓰고 보니 매우 이상하다. 감기를 손님이라고 칭하더니 감기약을 좋아한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을 지도. 그니까 감기약이라는 건 말이다. 어떤 의미로는 술과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나는 술을 맛으로 먹기보다는 취하려고 마신다. 거기까지는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려나. 그러니까 내가 혼자 있을 때 술을 찾는 경우는 정확히 하나의 목적만 있다. 감각에 둔해지기. 그러려면 안주도, 맛있는 술도 다 필요 없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알코올만 있으면 된다. 가성비도 중요하다. 집으로 오는 길, 편의점에 들러 참이슬 오리지널을 하나 사 품에 안고 돌아오면 그뿐이다.


특별한 잔도 필요 없다. 머그컵에 졸졸졸 술을 따르고, 차를 음미하듯 천천히 남기지 않고 마시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빈속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몸의 감각은 서서히 둔해진다. 마치 젤리가 된 것마냥 흐물흐물 물렁물렁. 들려오는 소리가 희미해지고, 뚜렷했던 시야의 자극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은 내가 세상을 조금 더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짧고도 간편한 방식이다. 가끔은 팩 소주를 사들고 편의점을 나서기도 한다. 누가 보면 빨대를 물고 두유라도 마시는 줄 알겠지만 틀렸다. 산뜻한 표정으로 마시고 있는 건 알코올이다. 다만 자주 하지는 못한다. 이 방법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고, 자칫 중독이 될 수도 있으니. 내게는 그저 연례행사와도 같은 것이다(라고 하기에는 안 한지 몇 년이 지났다).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것이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눈에 들어오는 날, 온갖 자극에서 벗어나 암실에 들어가고 싶은 날이면 종종 이 선택을 하곤 했다. 그럼 다시 아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감기약이 술과 같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몸살기가 있어 안 그래도 머리가 멍한데, 거기다 감기약까지 더하면? 약 성분 때문에 합법적으로(?) 몽롱해지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 과정이 은근히 좋다고 말하면 좀 이상하려나? 근데 나는 좋던데. 그래서 지독한 감기가 아니라면 가끔 이렇게...


살면서 술을 가장 많이 마셨던 시기는 대학생 때였다. 정확히는 20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겁도 없이 잘도 마셨다.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사람처럼, 취하고 깨고를 반복하며 원 없이 마셨다. 지금의 내 모습과는 상반된 발랄함이 있었다. 좋게 말해 발랄함이지 그냥 광기였다. 주변인들에게 가끔 내 과거 이야기를 할 때면, 하나같이 거짓말하지 말라고(20대 초반에 함께 어울려 놀았던 이들과는 연락을 끊은지 오래니까) 한다. 믿지 않는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사실인걸. 그때의 나는 이것저것(주종을 가리지 않았다) 섞어 마시길 좋아했고, 밤늦게까지 사람들과 술자리를 이어갔고, 막차가 끊겨 첫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적도 많았다. 그야말로 술의 전성기였다. 그럼 지금의 나는 어떨까?


글쎄, 말간 얼굴로 '술이 뭐예요?'까지는 아니고, 가끔 약속이 있을 때나 살짝 입에 대는 정도? 그마저도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가볍게 말이다. 가끔 어린 날의 그때를 기억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놀고 싶은 욕구가 올라올 때도 있지만, 그저 한순간의 감정일 뿐이다. 빠르고 간편하게 쾌락을 추구하기보다는 복잡하고 심오한 즐거움을 천천히 감각하는 것. 이제는 그게 더 소중하다는 걸 알아버렸다. 단순하고 단편적인 것보다 구체적이고 지속 가능한 게 좋았다. 그게 나라는 인간에 더 적확한 표현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책바를 만났다. 사실 그 공간의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다. 나의 지난 연인 중 그 공간을 아끼던 이가 있었고, 그때만 해도 연희동에 있던 책바가 이제는 망원동으로 이전해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당인리책발전소를 방문하기 위해 망원동을 몇 번 찾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아니면 책바가 위치한 곳이 당인리책발전소와 반대 방향이라 더 낯설었는지도 모르겠다. 역에서 내려 책바까지 걸어가는 길은 지도에서 언뜻 봤던 것보다 체감상 더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길이 심심하지 않았던 건 오랜만에 만난 시장 풍경 덕분이었다.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재래시장이 망원동 구석구석 펼쳐져 있었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를 걷는 게 얼마 만인지. 걷는 내내 반가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미아동에 사는 동안, 그 동네를 지독하게 싫어했지만 그럼에도 딱 한 가지 좋았던 걸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시장이라 답하곤 했으니까. 그 시장에는 단골이 된 과일가게도 있었고, 상인분들의 다정한 인심에 마음이 넉넉해져 집으로 돌아갈 때도 많았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추억을 떠올리며 자분자분 걷다 보니 어느새 책바 앞에 도착해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여는 순간, 은은한 조명과 함께 내 시야에 쏟아지듯 들어온 그곳의 모습은 뭐랄까.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딛는 기분이랄까. 커다란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책들, 귀를 자극하지 않는 부드러운 음악, 틀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좌석들까지. 모든 게 정성스러웠다. 사장님의 감각적인 손길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듯했다. 홀로 앉아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행과 함께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 그들이 나누는 건 수다가 아니라 대화였다(이 차이가 크다). 나는 책바를 천천히 구석구석 둘러봤다. 이곳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분위기를 차근차근 흡수하며 오랫동안 머금고 싶었다.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더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날 왜 그곳을 찾았는지는 비밀로 붙여두겠다. 모임의 일환이었다고 하면 조금 더 나은 표현이려나. 모임이었지만 모임이 아니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 미쉐린 가이드 식당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정성스럽고 섬세한 음식의 맛처럼, 책바에서 추천받은 술도 그랬다. 술이 이렇게 세밀하게 표현될 수 있구나, 술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술이 이렇게 아름답고 오묘할 수 있구나. 20살 때, 막무가내로 마셨던 술과는 결이 달랐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돌아갈 길을 생각하면 그만 일어나야 했다. 책바를 나와서는 그 동네를 조금 더 걷다가 역으로 향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밤 산책이 이 낯선 동네에서도 이어지고 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분위기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그날의 나는 오랜만에 나풀거리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꽤 늦은 시간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몇 대를 보내고 나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취향을 알아간다는 건 내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그 취향을 서서히 발화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테지. 정인성님에게 책바가 그런 공간이지 않았을까. 이곳에 방문하기 전, 책바 대표인 정인성님의 인터뷰를 읽었다. 9월에 올라온 글이라 꽤나 최근 글이었다. 책바라는 공간을 10년째 운영하며 자리 잡은 그의 소신이 견고해보였다. 앞으로도 즐거운 마음으로 낭만과 현실을 추구하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문장이 울림처럼 남았다. 나에게는 그게 글이었다. 활자에서 유영하는 삶은 실로 아름답다. 자유롭기도 하고. 문학에는 선이 없어야 한다던 모 작가님의 음성이 귓가에 댕댕댕. 더 제대로 글을 연구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짓고 싶다. 문장을 더 세밀하게 다듬어야 하는 이 과정을 게을리하고 싶지가 않다. 누군가에게는 술이, 나에게는 글이. 평생을 배워도 모자랄 것 같다. 앞으로도 나에게는 읽어야 할 글이 많다. 풀어야 할 이야기가 많다. 그렇게 또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탈락한다 해도 괜찮다. 준비하는 동안 충분히 즐거웠으니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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