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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K Feb 01. 2020

30대 문과생,  
캐나다에서 개발자 되기

캐나다 정착 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기 까지



인트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될 거라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이 곳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아직까지 낯선 캐나다에서 말이다. 항상 우유부단했던 내가 캐나다로 유학 이민을 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대 후반에 물류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입사한 지 2년도 안된 채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유학 이민을 오는 '인생 도박'을 한 것이다.


입학하기까지


회사 다니면서 주말엔 강남 해커스어학원에서 아이엘츠를 공부하며 입학성적을 만들어놓고 국내 유학원을 통해 캘거리에 있는 2년제 전문대학 SAIT에 지원했다. 전공은 Welding Engineering Technology인데 거창하게 말하자면 '용접 엔지니어링 기술' 학과이다. 나의 전공은 정치/외교와 가까운데 전혀 관련 없는 학과에 지원하게 된 것은 적성과 흥미는 뒤로 한 채 외국에서 취업해서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졸업하면 용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용접 인스펙터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캘거리는 오일샌드로 경기 부흥을 누리는 도시이고 그만큼 석유/용접 관련 종사자는 고수익을 누리고 있었기에 여기다 싶었다. 확신이 섰다. 캘거리 용접 학과로 가면 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결국 나의 자신감 넘쳤던 패기와 저 멀리 사라졌고 선견지명이라 여겼던 나의 미래 시나리오는 180도 빗나갔다. 그리고 나를 육체적 심리적으로 곤두박줄 치게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학교생활


한국에서 초중고를 나왔다면 처음 유학 왔을 때 이렇게 다짐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로 다시 돌아가서 수험생 마인드로 무조건 학점 A 받아야지.' 나도 그랬다. 순진하게 높은 학점은 취업 가능성과 정비례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매일 수업이 3~4시에 마치면 바로 학교 도서관에서 밤 10~11시까지 공부하는 이런 생활을 반복했다. 주말에도 텅텅 빈 학교 도서관에 가서 복습 예습을 했다. 도시락은 점심 저녁 이렇게 항상 2개를 준비했다. 한국에서 학식과 외식에 적응되어 있어서 도시락은 다소 번거로운 일이긴 했지만 캐나다에서는 학교에서부터 직장에서 까지 도시락 문화는 당연하다. 여기 햄버거 가격과 영양가를 생각한다면 도시락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가 도시락을 잠시 셌는데 도서관에 가면 아시아계 유학생들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을 보면 내가 매일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학점이 높아서 장학금도 받고 당당히 여기 현지인들과 경쟁해서 프레젠테이션도 1등 해서 상금도 받았다. 그리고 방학 동안 공부해서 캘거리에서 에드먼턴까지 운전하며 용접 인스펙션 필수 자격증도 제일 먼저 취득했다. 이제 졸업만 하면 취업이 바로 될 것 같은 기대감으로 학교생활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생존을 위한 JOB 뜻밖의 잡 오퍼


2014년 9월에 입학했었는데  아마 이때부터 세계 고용불안과 겹쳐 앨버타주 경기가 하향세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앨버타 주는 오일샌드 관련 석유 가스 산업의 의존도가 높아서 사우디와 미국이 오일 전쟁을 하는 동안 국제유가가 점점 내려갔고 따라서 앨버타 경기도 악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해고당하기 시작했다. 2016년 졸업 당시 소수의 캐나다 현지 학생들과 유학생들은 취업을 했지만 인맥이 없거나 경험이 없는 나를 포함한 많은 졸업생들은 계속 이력서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졸업하기 전 2016년 초부터 2016년 10월까지 적지 않은 이력서를 보냈었다. 한국에서 자기소개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커버레터도 함께 이력서와 보내야 하는데 몇몇 회사는 친절히 불합격 통보를 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답이 없었다. 경기 상황과 인맥 같은 환경을 탓하고 싶지만 결국 되는 사람은 된다는 신념으로 계속 지원했다. 그러다가 아는 중국인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마침 캘거리 공항 증축을 완공해서 사람을 많이 채용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공과는 거리가 먼 커스터머 서비스 잡이었지만, 무슨 일이라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었다. 그 날, 그 친구가 알려준 인사 담당자 이메일에 지원서를 보냈고 인터뷰 후 10월 중순에 입사하게 되었다. 머리를 쓰지 않는 공항을 이용하는 고객들을 도와주는 단순 노동이었지만, 급여도 2주에 한 번 꾸준히 나오고 이제 공과금과 집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고 외식도 할 수 있는 수준도 되었다. 돌이켜보면 잠시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 직업을 2019년까지 거의 3년이나 하게 된 사실에, 내가 너무 나태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태함 - Comfort Zone


처음 취업을 하면, 그 직업이 애초에 원하던 직업이 아니었더라도, 낯선 환경과 일에 대한 긴장감과 동기부여된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다. 주위 동료들과도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고 캐나다에서의 첫 직장인만큼 빨리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단순노동이고 힘들지 않은 일이기에 나의 몸은 계속 나태함에 물들어져 있었고 퇴근하면 책상에 앉아 유튜브를 보고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 잔을 걸치고 있었다. 내가 원래 전공헀던 분야에서의 취업은 점점 멀어져 갔고 자기 계발이란 단어는 피곤하고 게으른 나에게 별로 와 닿지 않은 말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뇌는 굳어져 가고 있었고, 약 2년 3개월의 시간이 '나의 발전 없이' 흘렀다. 중국인 동료 친구가 취업을 준비하다며 일을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그 말을 들었을 때 갑자기 급습하는 긴장감과 호기심에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재도전 - Out of Comfort Zone


그 친구는 어린 딸아이가 2명인 가장이었다. 와이프도 캐나다에서 명문대를 나왔지만 항공사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며 육아를 하며 도서관에서 IT 직군 관련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친구도 고민 끝에 와이프와 같은 결정을 내려 같이 취업하기로 한 것이었다. 참고로 그 친구도 친구의 와이프도 컴퓨터 공학과는 거리가 먼  다른 전공을 가지고 있었다. 싱글이면 모를까 아이도 있고 모기지(주택담보대출)도 갚아야 하고 차 대출도 있는데 정말 대단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전혀 관심이 없었단 아이티 직군 개발자 취업에  조금씩 흥미가 생기게 되었다. 비전공자도 취업할 수 있는 분야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그 친구와 같이 일하며 (일에는 집중을 안한채) 계속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어떻게 시작하면 되고 무엇이 필요한지. 그 친구는 유튜브와 다른 온라인 강의 (영어와 중국어 모두)를 들으며 공부를 하고 모르는 것은 와이프와 같이 코딩 문제를 풀면서 피드백을 교환한다고 했다. 그 날 친구가 추천해준 강의를 훑어보고 온라인에 있는 관련 비전공자 취업 글을 보면서 조금씩 개발자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운과 타이밍


추후 캐나다 취업에 관련 글도 공지할 예정인데 나는 취업에 있어서 아니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노력' 만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운과 타이밍의 요소도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존버'가 중요한 것 같다. 노력은 하는데 안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한다. 왜냐하면 그걸 이루기 위한 타이밍이 오기 전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텨야 한다. 계속 힘들어도 그 운과 타이밍이 터지는 순간 성공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내가 문과생으로서 낯선 외국 땅에서 개발자 취업을 결심한 그때 엄청난 기회가 왔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를 포함한 그 중국인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와이프까지 모두 개발자로 취업을 했다. 그 과정 속에는 물론 많은 심적 고민과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엔 우리 셋 모두 단순 노동직에서 벗어나 개발자로 취업을 했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이 과정이 길고 재미있기에 다음 2부에서 다루고자 한다. 


Episode   

30대 문과생,  캐나다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 되기까지 1 - 캐나다 정착부터 개발자로 커리어 전환


30대 문과생,  캐나다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 되기까지 2 - 커리어 전환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30대 문과생,  캐나다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 되기까지 3 - 배운 점과 몇 가지 나누고 싶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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