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를 이루지 못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40대 가장이 잠시 직장을 그만두고 안식년을 갖는다는 것은 웬만큼 미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일 겁니다. 특히나 아이도 있고 집 대출금도 남아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여기 낯선 캐나다 땅에서 안정을 가지려면 직장에서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필수인데 갑자기 불혹의 사춘기가 온 것일까요? 특히나 저라는 사람은 불안에 극도로 예민하며 사소한 걱정에 한숨만 자주 쉬는 남자 인프제입니다. 얼마나 한숨을 자주 쉬면 5살 제 아들이 “아빠, 또 한숨 셨네, 다시 들어마셔. 이렇게 호옵~” 하고 제게 충고해 줍니다. 그래도 충족되지 않는 이 허전함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네요. 무엇이 문제인지. 행복은 단순함에서 온다고 했는데 너무나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까요?
제 머릿속에는 생각 증폭장치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 몇 년 후 제 모습을 상상할 때 뚜렷하게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일할 때 그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혹은 조금 더 편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할 때 활발하게 작동합니다.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엄청난 리서치를 할 때도 유용하게 쓰입니다. 문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이 생각 증폭장치에 공급되면 미친 듯이 폭주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교감신경은 이미 활성화되어 있고 이제 좀 안정을 취하라고 몸에서 신호가 오는데도 이 생각증폭장치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esc키를 연달아 눌러도 멈추지 않고 수십 가지의 미래 시나리오를 도출해 내며 검증하기 시작합니다. ‘만약에 이 일을 그만둔다면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지? 계획대로 안 돼서 돈만 날리면 최저시급으로 맥도널드에서 일해야 하나? 그래도 상관없어,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쓰고 나한테 집중하기 위해 시작한 거니까. 나한테만 집중하자고. 그래도 우리 동네에서 일하면 조금 부끄러우니 다른 동네 가서 하면 될 것 같기도 하고.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새 출발을 해볼까? 이사하면 여기 있는 가구들을 어떻게 다 옮기고 처분하지. 아이 유치원도 다시 보내야 하고, 다른 아이들과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텐데…’ 생각은 다른 쓸데없는 생각들을 2의 배수가 아닌 제곱수로 파생시키고 엔진은 뜨겁게 과열되며 뿌연 배기가스가 계속 한숨으로 나올 때, 얼마 전에 책 속에서 만난 쇼펜하우어가 한 소리 합니다 “잠이나 자라”. 그렇게 자고 나서야 엔진은 식고 다시 평정을 찾지만, 아직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고 있기에 언제 다시 불안과 걱정이 증폭장치를 폭주하게 할지 모릅니다.
언제부턴가 하루하루가 충만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코로나 때부터 재택근무한 지 어느덧 4년이 되어 몸은 편안함을 넘어 나태해졌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하는 일에 자부심도 있었고 외국인 노동자로서 무시가 아닌 오히려 부러움을 받으며 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외부적인 조건들이 저를 충족시켜 주냐는 질문에는 쉽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사회의 쓴 경험을 못해본 철없는 40대의 배부른 소리’라고 말하실 수도 있겠지만 만족하지 못한 삶은 사실입니다. 무언가 계속 허전하고 얼굴은 항상 어두우며 뿌연 가스를 입 밖으로 내쉬는 저의 모습은 와이프와 아들에게도 부정적인 기운만 줄 뿐입니다.
잠시 월급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1년 치 연봉으로 1년 치 시간을 사고자 합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몇십 년 동안 소홀히 했던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무엇을 하고 싶을 때마다 자아는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너를 위한 일을 하라고. 하지만 ‘현실’과 ’ 두려움’이라는 핑계로 그 말들을 무시하고 그저 나아가기 바빴습니다. 단어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자발적 안식년’. 능동적으로 일을 쉬면서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 아직 회사는 그만두지 않았지만, 올해 자발적 안식년을 실천하고 그 과정을 여기 기록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