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잔클로드 : 프린츠&북스 展]
브루클린 기반의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MSCHF)에서 쌀 한 톨보다 작은 루이비통 가방을 제작해 화제입니다. 미스치프는 2주에 한 번씩 기발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작품들을 선보이는데요. 패션과 관련된 아이템을 자주 출시하면서 예술계는 물론 패션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소위 '소금 한 톨 루이비통 백(공식 명칭은 마이크로스코픽 핸드백입니다)'은 어떤 작품일까요? 바늘구멍보다 작은 크기로 제작된 이 핸드백은 루이비통의 온더고(onthego) 핸드백을 모티프로 제작됐습니다.(루이비통의 허락은 받지 않았다고...) 3D 프린트 기술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기능을 상실해가는 럭셔리백을 해학적으로 꼬집기도 하고, 어차피 더 작아질 거라면 미스치프의 손으로 나노화를 시켜버리겠다는 장난스러운 접근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요즘 가방은 미니 백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할 만큼 마이크로 사이징 되고 있죠. 백화점이나 셀렉트숍을 방문하더라도 메인 디스플레이는 무척 작은 크기의 백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방이 작아지면 물건은 어디에 담냐고요? 출퇴근 길을 조금만 살펴보더라도 가방에는 핸드폰과 지갑, 팩트와 립스틱 정도를 욱여넣고 그 외 아이템은 종이 쇼핑백에 담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 시간을 맞추지 않고 시계 자체를 액세서리처럼 착용하는 동료가 있는데, 가방도 점점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죠.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점점 작아지는 요즘의 가방 트렌드를 보고 있으면, 벨기에 럭셔리 가죽 브랜드 델보가 떠오릅니다. 델보에는 미니어처 컬렉션이라는 매우 작은 가방 컬렉션이 있는데요.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가방으로 주로 큰 가방에 액세서리(참)의 역할을 수행하는 친구들입니다. 매우 세밀한 가죽 가공 및 디테일 표현을 통해 브랜드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귀여운 아이템이기도 하죠. 제가 이 아이템을 접한 시기가 2010년대 중반 정도였는데, 만약 델보가 이 컬렉션을 통해 미래의 트렌드를 예견한 것이라면 정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물론 아니겠지만요.) 당시 90만 원 전후의 가격을 보고 '이런 장난감이 왜...'라고 생각했던 순간도 기억나는데요. 이번 미스치프의 루이비통 백이 경매를 통해 8천만원이 넘는 금액으로 판매되었다고 하는 점을 생각하면, 델보의 미니어처는 가성비 원탑 나노백으로 재평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작은 것들로 난리법석인 패션계의 소식을 듣고 있자니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미스치프가 가방을 매우 작게 만들어 우리에게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처럼, 많은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상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어떠한 대상이 지닌 본연의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접근을 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대상의 외관 속으로 들어가 부분 부분을 해체해 보는 방법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오늘 소개해 드릴 이 작가는 "그냥... 덮어 버리면 안 돼?"라고 우리에게 새로운 방식을 제안합니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부부는 대지 예술가(land art)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작게는 사물에서 시작해 점점 규모를 키워왔고, 전성기부터 말년까지 건물, 계곡, 섬 등 커다란 구조물과 자연을 천과 밧줄 등을 활용해 감싸는 아이코닉한 작품세계를 펼쳐왔습니다. 불가리아 출신의 남편 크리스토 자바체프가 주로 작품의 구상과 기획을 담당하고, 그의 아내인 프랑스인 잔-클로드가 관공서와 지자체 등을 설득하고 협업을 이끌어 내는 실행과 운영을 담당했습니다. 초반에는 크리스토만 작가로 인정받아왔으나, 잔느의 공헌이 없다면 이들의 대규모 포장 예술(wrapping art)는 그저 스케치에 불과할 것이기에 어느새 '크리스토&잔클로드 부부'가 하나의 예술가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우리가 매트릭스를 제작한 워쇼스키 형제? 자매? 남매?를 하나의 작가 공동체로 인식하듯 말이죠.)
크리스토&잔클로드 부부가 예술 활동을 하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저는 크게 두 가지로 추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누구나 어디서나 예술적인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작품은 입장료도, 운영시간도 없습니다. 작품이 설치되고 철거되는 기간 동안은 누구나 예술을 즐기고 느낄 수 있죠. 이러한 철학을 지키고자 작업을 구현하는데 외부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그 또한 멋지면서도 고집이 보통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는 본질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대상을 벗겨내고 해체하는 것이 아닌 덮고 포장해버린다면, 우리는 이제껏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죠. 수많은 역사를 견뎌낸 독일 국회의사당이나, 퐁네프 다리, 그리고 개선문 등이 하얗고 푸른 천으로 덮여 단순한 형과 색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앞으로 그려나갈 미래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부의 작품은 지속되지 않는 것이기에 우리는 오직 자료를 통해서만 그들의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데요. 마침 IAH Seoul에서 공간을 아낌없이 활용해 프로젝트 별로 사진과 포스터, 도록 등을 큐레이팅 했으니 시간이 되시면 꼭 방문해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을 내서 가주세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잔클로드는 저와 항상 함께 있습니다. 그녀는 저와 모든 순간을 함께 합니다. 물론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적이고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항상 그립습니다.
- 아내 잔클로드가 세상을 떠난 후 '떠 있는 부두'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크리스토의 인터뷰 中 -
<크리스토&잔-클로드 : 프린츠&북스>
IAH 서울(서울 중구, 버티고개역 근방)
2023.06.10~07.15
유료전시(네이버예약) : 3천원(기간 내 재 입장 가능)
월,수,금,토,일 13:00~20:00(화요일 휴관)
주차 가능하나 매우 협소(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