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청담에 위치한 루이비통 플래그십 스토어(루이비통 메종 서울)에 보고 싶은 전시가 있어 짬을 내 방문했습니다. 알차게 도슨트까지 들으며 작품를 감상하고 났는데 시간이 살짝 남더군요.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있는 남성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만약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을 방문하신다면 일반 매장에서도 갖추고 있는 의류보다는 흔히 보기 힘든 워치나 주얼리를 먼저 눈여겨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인데요. 저는 애초에 관심사가 워치인 점도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워치와 주얼리가 있는 섹션을 향했습니다.
루이비통 메종 서울 ⓒ 아보퓨레
루이비통의 워치가 얼마나 발전했을지 궁금했습니다. 럭셔리 패션 3대장인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는 최근 몇 년간 진지한 워치 메이커로서 자리 잡기 위해 워치 매뉴팩처를 인수하고, 부품 제조 공방을 인수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에르메스와 샤넬은 럭셔리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샤넬은 'J12'를 뚝심 있게 업그레이드했고, 에르메스는 '아쏘 레흐 드 라 룬' 같이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주는 하이엔드 모델을 선보여왔죠. 루이비통은 '땅부르' 컬렉션을 필두로 열심히 그들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차이는 크지 않지만 아직 감성적인 한 방이 필요해 보이는 느낌이 드는 상황입니다.
땅부르 오토매틱(스틸, 40mm), 공홈가 27.9백만,출처: 루이비통 홈페이지
그럼 시계 이야기는 이쯤 하기로 하고 오늘은 시계 옆에 디스플레이되어 있던 작고 얇은 팔찌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실버 락킷 팔찌'인데요. 플래그십 매장에서도 멋지게 자리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팔찌는 루이비통이 유니세프와 손잡고 전 세계 취약아동을 돕기 위해 제작한 특별한 제품 라인입니다. 2016년 첫 제품을 선보였을 때는 품귀현상까지 있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매년 새로운 제품들이 출시되어 소비자에게 기부를 유혹, 아니 유도하고 있죠. 소비자 입자에서도 일반 제품보다 저렴하게 루이비통 맛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부까지 된다고 하니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요? 저 같아도 버질 아블로 형님께서 계셨던 시기의 락킷 팔찌 하나는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실버 락킷 X 버질 아블로 팔찌, 블랙 티타늄, 69만원, 출처: 루이비통 홈페이지
캠페인 하나로 루이비통은 사회공헌도 열심히 하는 브랜드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쏠쏠하게 챙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럭셔리 브랜드는 물론 상업활동을 하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불가리는 2009년 세이브더칠드런과의 협업을 통해 'Give Hope' 캠페인을 시작했고, 불가리의 대표적인 제품들을 실버로 제작하여 판매 수익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루이비통의 기부 선배라고 볼 수 있죠.
세이브더칠드런 링, 75만원, 출처; 불가리 홈페이지
또 다른 브랜드들은 여성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까르띠에는 여성창업을 지원하는 '우먼스 이니셔티브(Women's Initiative)'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매년 대상자를 선발합니다. 올해는 멘탈케어 솔루션 기업 '포티파이'를 이끌고 있는 한국인 문우리 대표가 선발되어 더욱 화제가 됐습니다. 선발된 이들은 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방면의 지원을 받으며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키는 데 집중할 수 있겠죠. 여성에 대한 지원은 디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디올은 이화여자대학교와 산학협력을 맺고 재학생을 대상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2년 F/W 패션쇼를 이화여대에서 진행할 정도로 디올의 이대 사랑은 각별한데요. 2017년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전 세계 모든 셀럽이 입게 만들었던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2022년에 이화여대 과잠을 입는 스토리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죠.
이화여대 과잠바를 입은 디올의 CD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출처: 미상
이런 럭셔리 브랜드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정말 박수받아 마땅한 것이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외층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 주길 바라는 마음도 드는 것도 솔직한 욕심입니다. 만약 브랜드가 사회공헌을 위하 아티스트를 찾고 있다면 저는 프랑스 출신의 설치미술가 'JR'을 추천할 것입니다. JR의 대표작 중 하나는 캄보디아, 인도, 케냐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진행한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인데요. 작품의 배경이 된 곳들은 빈민가이거나 내전으로 인해 전쟁이 끊임 않는 곳들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분류되곤 합니다. 사회적 시스템이 정상적이 작동되지 않는 곳에서 여성들은 폭력이나 강간 등의 위험에 너무나도 쉽게 노출되기 쉽죠.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 작품들 ⓒ 아보퓨레
JR은 이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오래된 다리에 얼굴 사진을 붙이는 작업을 할 때는 이를 지켜보던 반군 남성들이 작업을 거들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요. 이렇게 작품 설치를 손수 도와주는 남성들이 알고 보면 사진 속 여성들에게 피해를 입힌 가해자일지도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작업에서 JR은 여성들의 두 눈만을 확대하여 방수가 되는 대형 비닐에 프린트합니다. 이것을 각 가정집의 지붕에 설치하는데요. 하늘에서 바라본 대지가 여성의 눈들로 덮여 있는 것처럼 연출함으로써 한 가족, 하나의 공동체를 존속하게 만드는 주체는 위대한 여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동시에 해당 작품은 실제 비를 막아주는 방수포의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예술 작품이 이상과 현실에서 동시에 유효한 순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JR, <여성은 영웅이다, 키베라>, 2009 ⓒ 아보퓨레
우리는 아트 콜라보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백, 수천 건의 콜라보가 이루어져 누군가의 브랜드 티셔츠에는 아티스트의 그림이 프린팅되고 있겠죠. 이들이 협업하는 범주가 어서 빨리 확장됐으면 좋겠습니다. 브랜드들이 하루 빨리 JR처럼 세상을 바꾸고 약자를 대변하며 그들의 환경을 개선하는데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