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중에 어떤 요일이 중요할까? 적어도 나에게 토요일은 꽤 중요한 요일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일요일은 대부분의 갤러리가 문을 닫는다.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일주일 중 토요일과 일요일이 자유로이 허락되고, 그렇기에 나는 토요일을 아주 값지게 사용하려 노력한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고 누가 갤러리를 구경 다니라고 시킨 것은 아니다. 그저 스스로 꾸준히 지켜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다. 친구로부터 전수받은 취미인 전시보기가 어느덧 오 년이 훌쩍 넘어버리면서 이제는 나만의 탈출구이자 해방감을 만끽하는 영역이 되어버리기도 했고, 또 나 자신과 약속한 죽을 때까지 해야할 몇 가지 미션 중 하나로 생각해 주말엔 전시 보는 것이 일상으로 굳어졌다.
최근 이 주간 나만의 미술 생활은 위기를 맞이했다. 한 주는 출장 일정이 토요일까지 이어지면서 갤러리를 다니지 못했고, 이어지는 주 또한 과도한 업무로 인해 토요일은 재택근무로 고스란히 반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밥 벌어먹고사는 입장에서 당연히 회사일을 처리하는 것에 불만은 없었으나, 어디선가 갤러리를 가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최근 '원영적 사고'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원영적 사고란 '아이브'라는 걸그룹의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결국 자신에게 좋은 결과를 일으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버스가 눈앞에서 출발하더라도 '그럼 다음 버스에는 처음으로 탈 수 있을 거니까 자리에 앉을 확률이 높겠지?'라고 생각하는 식인데, 이런 생각 끝에 "완전 럭키비키잖아!"라는 멘트를 붙여주면 문장이 완성된다.(비키는 장원영의 영어이름이다.)
두 주간의 위기 덕분에 일요일에 밀렸던 미술관 전시를 봤다. 예술의 전당, 리움, 현대카드스토리지를 방문했다. 리움은 정말 오랜 기간 묵혀놨었는데 토요일 날아가버린 바람에 드디어 밀린 숙제를 해치우는 기분으로 티켓을 끊었다. 그럼 나도 원영적 사고를 이렇게 적용할 수 있겠다. "토요일에 일하는 바람에, 일요일에 미뤄뒀던 미술관 전시를 봤잖아? 완전 럭키.....비키잖아!"
리움 전시의 주인공인 필립 파레노는 작업을 할 때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음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작품의 방향성이 또렷해진다. 적어도 예술을 감상하고 공감하려는 순간만큼은 조금 더 유연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 안에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 풍선처럼 예술을 좋아하는 본질만 변하지 않는다면 토요일이면 어떻고, 일요일이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