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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즈 May 05. 2024

내 친구 50대

“쌤 왜 그동안 나한테 놀자고 연락 안 했어요? 섭섭하다.” 

“야 네가 맨날 거절하는데 또 어떻게 연락하냐. 내가 스토커도 아니고.” 

“그래도 내가 놀자고 하니까 좋았죠?” 

“응, 좋았어.” 


정쌤은 내가 아는 50대 중 가장 특이한 인간이다. 자칭 '감성'과 '이성'이 함께 발달해 있어서 괴로운 남자, 인생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남자, 실 없는 말 장난을 좋아하는 남자, 별 일 아닌 일에도 까칠하게 구는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남자, 조금이라도 개인사를 물어보면 “야 짜샤 남자의 사생활을 왜 물어보냐. 궁금해 하지마.”라며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남자,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후 외로움에 사무치는 남자. 이처럼 그는 온갖 안 좋은 특이점을 다 가진 사람이다. 그런 데도 그는 내가 아는 50대 중 가장 특이하고 귀여운 인간이다.  


종종 심심하고 외로운 그가 놀자고 성화를 부리는 일이 있다. 산만한 덩치와는 안 어울리게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오늘 모해?’라며 카톡이 날라온다. 그가 내게 놀자고 성화를 부리면 나는 5번 중 4번은 거절한다. 예민하고 까칠하고 잔소리 많은 그가 부담스러워서다. 그래도 거절한 횟수가 좀 많다 싶으면 한 번 정도는 “콜”이라고 시원하게 화답해주기도 한다.  


그런 그가 한 동안 내게 연락이 뜸했었다. 내가 거절한 횟수가 많아서다. 그러면 또 이상하게 내가 그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오랜만에 내가 먼저 그에게 놀자고 약속을 청했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벌써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뀐 뒤였다.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는 여전했다. 잔소리가 많은 것도, 사소한 것에 예민한 것도. 그게 그이니까. 게다가 그는 남에게 누 끼치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하고 절약정신이 몸에 벤 인간이기도 하다. “상추 지금 준 것만 먹어. 고기 고작 이렇게 시켜놓고 상추 더 먹는 건 민폐야. 너 왜 종이컵을 두 개나 썼냐. 어차피 나는 안 쓸 건데. 내 꺼 안 썼으면은 다시 쓸 수 있잖아. 젓가락 그릇에 올려나. 테이블에 세균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 여기에 또 가타부타 한 마디를 덧 붙이면 그의 얼굴은 찡그러지고 잔소리는 두 배로 늘어날 터이니, 눈 한번 흘기고 조용히 고기를 먹는 나다. 그렇게 소주 두 병에 서로의 근황을 물은 뒤, 언제나 그러하듯 2차로 뮤직바에 갔다. 25분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어제는 모처럼 날씨가 좋았다. 오전에는 비가 왔지만, 오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인 하늘이었다.  

“쌤 만날 때마다 맨날 눈이나 비왔는데. 저번에도 비왔잖아요. 오랜만에 아무 것도 안 오네.” 

“그래 맞아. 너랑 같이 눈 두 번 봤잖아.“ 

“맞아요, 한번은 눈 오는 날 쌤이 나 택시까지 바래다줬잖아. 나 대가리 깨진 날.” 

“그랬지. 그리고 또 한  더 왔어.“ 

“나 기억해요. 그날 눈 온 날, 우리 오지오스본 버전 말고 여자 버전 Goodbye to Romance 들었어.” 

“이야 자식 기억하네. 리사 오노 버전.” 

“그럼, 나 다 기억해요. 그날 낭만있었어. 음악 듣고 있는데 창밖으로 갑자기 눈 내렸어.” 

그는 내가 아는 50대 중에 기억력이 제일 좋은 인간이기도 하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다 기억해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감탄사를 내 뱉고는 하는데, 그러면 그는 꼭 멋 없게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나 똑똑한 사람이야.” 


실없는 소리를 하며 그렇게 뮤직바에 도착했다. 그는 내가 아는 50대 중에 열렬히 음악을 사랑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뮤직바에 도착해서 그는 신이 나서 노래를 왕창 신청했다. 노래를 신청하는 모습이 아주 신이 나 보여, 내 음악은 덜 신청했다. 처음에는 호기심 있게 들어주는 척을 했는데, 얼마 못 가 자꾸만 하품이 났다. 결국 몇 번을 졸았다. 졸다 깨다 했더니, 그가 흥을 잃었는지 “이거 한잔만 먹고 일어나자”한다. 맥주를 한 모금 먹었더니 나는 또 금세 잠에서 깼다. 졸던 애가 멀쩡해진 것을 보고 그가 못내 아쉬웠는지 “우리 한 병만 더 마시고 갈까?”한다. “그래요 한 병만 더 마셔요.”라고 내 뱉고 속으로는 ‘한동안은 쌤을 만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다.  


뮤직바를 나서니 벌써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귀가 하는 와중에 그에게 카톡을 했다.  


“쌤 즐거웠시요.” 


그의 답장은 없었다.  


우리의 우정은 이렇게 한시적으로 좋다가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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