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예매했던 조성진 &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관람 일이 드디어 다가왔다. 오늘, 예술의 전당이다.
일어나자마자 ‘어떤 옷을 입고 갈까’ 고민했다. TPO를 맞추기 위해 검은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단정하고, 우아해 보이는 원피스.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생각해 보니, 몇 년째 조성진 리사이틀 때마다 이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게 생각이 났다. 아무도 모르지만, 왠지 머쓱하여 검은색 원피스를 훌러덩 벗어 던지고 다른 옷을 꺼내 입었다. 현란한 프린트가 그려진 검은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청자켓을 걸쳤다. 바깥 기온은 쌀쌀하지만 홀의 기온은 분명 뜨거울 게 뻔하니까. 공연 관람 N년차 인생의 탁월한 선택일 거로 생각한다.
조성진을 덕질하게 된 건, 우연한 사진 한 장 덕분. 쇼핑 콩쿨에서 우승한 조성진과 지하철에서 우연찮게 만난 팬이 조성진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것. 사진에서 마치 ‘비누향’이 날 것만 같았다. 이후로 줄곧 조성진을 덕질해 오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피터지는 티켓팅에도 참전하며, 매년 리사틀을 보고 있다. 일 년에 딱 한 계절, 조성진의 리사이틀은 마치 내게 축제 같은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도파민이 넘쳐흐르는 일이기도. 예매일부터 가슴이 떨리고, 리사이틀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에너지를 얻고, 격정적인 조성진의 연주를 보고 난 후에는 얼마 동안은 도파민으로 도파민이 샘솟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조성진을 좋아한다고 해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클래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피아노 치는 조성진’을 좋아하는 거다. 조성진을 좋아하니 클래식 좀 들어보자 했는데, 어렵고 난해했다. 그냥 피아노 치는 조성진‘만’이 좋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내면이 단단한 덕분인지 그의 인터뷰는 늘 내게 귀감을 준다. 천재이지만 겸손함,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해서 세계적 반열에 올랐으나 그는 여전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인터뷰 기사는 그가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 저는 아직 성공했다고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워요. 피아니스트로 성공이 뭐냐고 한다면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배워나가는 입장이고, 마흔 살이 되든 쉰 살이 되든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 이 정도면 완성됐다고 마음을 갖는 순간부터 발전이 없다고 생각해요.
- 제가 할 수 있는 조언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콩쿠르 나갈 때 200%를 준비했어요. 200%를 준비해야,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에 100%가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런 후, 잘되길 기도하며 운을 바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조성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탁월한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안주하지 않는 후천적 노력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를 보기 위해 후천적으로 발달하게 된 티켓팅 능력으로, 오늘도 덕질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건 축복이다! 축복 같은 능력을 어디 발휘할 곳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