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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하늘 보는 시간 Nov 18. 2024

필요 이상의 것이 나에게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는 늘 무언가를 원하며 살아간다.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이든, 손에 닿지 않는 관계든 상관없다. 내가 원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은 내게 필요가 된다. 마음속에 새겨진 결핍의 감정이 속삭인다. ‘이것만 있으면, 이 사람만 있으면, 나는 더 나아질 거야.’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며 필요를 쫓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쓴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손에 쥔 물건들, 마음속 욕망들, 스스로를 꾸미기 위해 걸친 가면들까지. 내가 정말로 필요한 것과 필요 이상의 것 사이의 경계를 가늠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그저 익숙함에 기대어 "더 많은 것이 더 나은 것"이라는 사회의 속삭임에 무감각하게 따라왔던 것은 아닐까?


그것들이 정말 내게 필요했던 것인지, 아니면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인지. 내가 쌓아온 스펙과 경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들. 그 모든 것이 정말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남이 나를 칭찬하고 인정해 주길 바라는 욕망이 만든 것일까? 내 인생의 주체는 과연 나였는지, 아니면 남의 기대와 시선이었는지 묻게 된다.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과도하게 노력하고, 진정한 나의 감정을 감추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얻은 관계가 진정 내게 의미가 있었을까? 아니면 나를 소진시킬 뿐인 무의미한 연결들이었을까? 필요 이상의 책임감과 부담감은 관계를 더 깊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피곤하게 하고, 때로는 진정한 친밀감을 가로막기도 했다.


내가 쫓아온 길과 내 삶의 방향이 남의 삶을 충족시키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나 돌아보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나'의 삶을 살아온 것일까? 아니면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아온 것일까? 이 질문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결국 나라는 존재 자체가 필요 이상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내가 필요 이상의 욕망과 기대를 쌓아왔듯, 내 존재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한 걸음 물러서서 나를 들여다본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내가 진짜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몇 가지는 외부에서 주입된 환상일 뿐이었다. 


남들이 바라는 나, 사회가 요구하는 나에 맞추다 보니 진짜 나 자신은 그 그림자 속에서 희미해져 있었다. 필요 이상의 것은 나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본질을 감추는 껍질이었던 것이다. 나의 내면에는 얼마나 많은 소리와 욕망이 섞여 있을까? 내 마음을 가득 채운 것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필요 이상의 감정들, 남의 시선 속에서 길러진 나의 모습들. 그것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나면, 진정한 내가 남아 있을까? 혹은 그저 텅 빈 공간이 남을까?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진 삶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덜어내는 것, 그리고 비우는 것이다. 물건을 비우고, 욕망을 내려놓고, 관계에서 나답게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덜어낼 때 비로소 나에게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마음이 편안한 공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진실된 시간,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소박한 삶. 그 이상을 욕망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 필요 이상의 것들은 오히려 나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삶은 단순할 때 더 풍요로워진다. 필요한 만큼만 갖고, 필요한 만큼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은 나에게 더 깊은 만족과 평화를 가져다준다. "필요 이상의 것"이란 나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그 비움을 통해 나 자신을 되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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