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세계일주 열다섯 번째 이야기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했던 나의 세계일주 중 처음으로 한인민박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이 세계일주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해 준 용인형님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79만 원으로 5년 4개월간 5대륙, 38개국, 258개 도시를 여행한 용인형님.
우연히 SNS으로 처음 접한 형님의 짧은 세계여행 영상은 마지막 고민하던 나로 하여금 항공권 구매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형님은 그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다 '아, 이런 숙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직접 바르셀로나에 민박집을 차린 것이다.
특별히 이 숙소의 최대 장점은 매일 저녁 식탁에 삼삼오오 모여 각자 들고 온 음식을 떼며 서로가 걸어왔던 인생을 들어주고, 또 앞으로 나아갈 삶을 응원해준다는 것.
매일 저녁 식탁에서의 만남은 너무나도 다양했는데,
나처럼 군대를 전역 후 곧바로 떠난 온 이, 졸업을 앞두고 쓸 수 있는 모든 휴학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있는 이, 연로하신 어머니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세계를 돌고 있는 모녀, 그리고 사람들이 소위 우러러보는 대기업의 높은 직급에도 참을 수 없는 공허함으로 퇴사한 후 다시 뛰어보려고 하는 이들.
더욱이 매일 밤 그 식탁이 더욱 소중했던 것은 나이와 성별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사회적 위치였던 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그 식탁에선 ‘사람’ 대 ‘사람’으로 함께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에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애타게 찾는 목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처음 이 말씀을 마주할 땐 ‘과연 아흔아홉 마리를 놔두고 한 마리를 찾으러 가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나머지 양들을 잘 지키려면 길 잃은 양 한 마리쯤은 의당 포기해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에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먹었지.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제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
그 한 마리는 길을 잃으며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다른 아흔아홉 마리 양들처럼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했던 것이야. 아주 탁월한 놈이지.”
맞구나, 그렇구나. 과연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니며 길을 잃지 않은 양과 혼자 길을 찾다 헤메 본 양 중에서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누가 진짜 이 세상에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에겐 모두 남의 뒤통수만 보면서 따라가는 것만이 아닌, 길을 일탈해 길 잃을 자유가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매일 그 저녁의 식탁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나 보다.
마치 평생을 목자의 엉덩이만 보고 달리다 탈이 난 양들이 서로의 삶을 위로해주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