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석 May 17. 2022

길 잃은 양들의 식탁

리마인드 세계일주 열다섯 번째 이야기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했던 나의 세계일주  처음으로 한인민박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이 세계일주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해 준 용인형님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79만 원으로 5 4개월간 5대륙, 38개국, 258 도시를 여행한 용인형님.

우연히 SNS으로 처음 접한 형님의 짧은 세계여행 영상은 마지막 고민하던 나로 하여금 항공권 구매를   있게 도와주었다.


형님은 그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다 '아, 이런 숙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직접 바르셀로나에 민박집을 차린 것이다.


특별히 이 숙소의 최대 장점은 매일 저녁 식탁에 삼삼오오 모여 각자 들고 온 음식을 떼며 서로가 걸어왔던 인생을 들어주고, 또 앞으로 나아갈 삶을 응원해준다는 것.

매일 저녁 식탁에서의 만남은 너무나도 다양했는데,

나처럼 군대를 전역 후 곧바로 떠난 온 이, 졸업을 앞두고 쓸 수 있는 모든 휴학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있는 이, 연로하신 어머니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세계를 돌고 있는 모녀, 그리고 사람들이 소위 우러러보는 대기업의 높은 직급에도 참을 수 없는 공허함으로 퇴사한 후 다시 뛰어보려고 하는 이들.


더욱이 매일 밤 그 식탁이 더욱 소중했던 것은 나이와 성별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사회적 위치였던 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그 식탁에선 ‘사람’ 대 ‘사람’으로 함께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에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애타게 찾는 목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처음 이 말씀을 마주할 땐 ‘과연 아흔아홉 마리를 놔두고 한 마리를 찾으러 가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나머지 양들을 잘 지키려면 길 잃은 양 한 마리쯤은 의당 포기해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에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먹었지.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제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

그 한 마리는 길을 잃으며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다른 아흔아홉 마리 양들처럼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했던 것이야. 아주 탁월한 놈이지.”


맞구나, 그렇구나. 과연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니며 길을 잃지 않은 양과 혼자 길을 찾다 헤메 본 양 중에서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누가 진짜 이 세상에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에겐 모두 남의 뒤통수만 보면서 따라가는 것만이 아닌, 길을 일탈해 길 잃을 자유가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매일 그 저녁의 식탁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나 보다.

마치 평생을 목자의 엉덩이만 보고 달리다 탈이 난 양들이 서로의 삶을 위로해주었기에.






작가의 이전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