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련함 그 전의 이야기
정착한 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문제는 광고라는 언론사 관행이 지속되면서 오는 자괴감이었다. 참다가 버티지 못했는지 폭발해버렸다. 나라는 인간은 사회라는 '집단주의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회사와 광고주에 불리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기자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몸을 감쌌고 자괴감은 이내 분노로 뒤바뀌었다.
많이 연락하지도 않았던 분에게 연락을 드렸다. 토로이자 고백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기사가 나왔다. 불안했을까? 아니 오히려 후련했다. 과거의 내가 기자로서 저질렀던 갑질과 잘못 등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더 나은 기자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나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의 방향은 더욱 또렷해졌다.
누가 포털에서 기사를 내렸을까
라는 문장을 봤을 때 과거의 경험이 떠올랐다. 비일비재한 '킬'과 기사 수정 등 잘못되고 공정하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며 재발방지대책조차 제대로 꾸리지 않는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썼을 때 맞서 싸우던 적이 있었나?라는 기억 말이다.
2018년 7월, 삼성화재 간부를 인터뷰하며 겪었던 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뉴스타파의 한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었고, 나의 기사가 인용되는 등의 영광스러운 일이 있었다. (사실 기사 제목에 특종이라고 써 놓은 것 자체가 부끄럽다. 저게 무슨 특종인가...)
당시 인터뷰했던 삼성화재 관계자(A 부장)는 밀폐된 곳에서 폭행을 당하고 욕을 먹으며 감사를 받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 장애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삼성화재 씩이나 되는 보험업계 원탑 회사에서 이 같은 반인륜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A 부장은 표적 감사를 받고 삼성화재에서 해고당했다. 사유는 다음과 같다. ▲부하 직원들에게 선물을 요구하여 수수함 ▲판촉물 명목으로 구입한 넥타이를 사적으로 유용 ▲부하직원의 법인카드를 빌려서 사용한 후 경비 처리 시 본인이 최종 결재 ▲부서 직원들에게 감사 방해 목적으로 허위진술 강요 ▲부서 직원들에게 본인에게 유리한 확인서 작성 요구 ▲타인 사칭 및 허위사실 CEO 투서 ▲본인 비위행위를 감사파트에 제보한 직원 협박 ▲2018년 1월 1일 이후 출근명령 거부 및 무단결근 등이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이는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다.
A 부장은 감사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다. 결국 A 부장은 근로복지공단 서울 서초지사에 2016년 실시된 감사로 인해 ‘적응장애’, ‘중등도 우울 에피소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하였다고 주장하며 최초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이후 공단은 A 부장의 의무기록과 자문의 소견, 심리평가 보고서, 건강보험 수진내역, 문답서 및 확인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공단은 A 부장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적응 장애’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상당히 놀라웠던 것은 정부 기관의 이 같은 판단에도 삼성화재는 A 부장이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삼성화재 내부 규정에 따르면 제4절 휴직 및 복직 제26조(휴직사유)에는 근속연수 7년 이상일 경우 직무상 상병으로 계속 근무를 하지 못한 지 1년을 초과하였을 때 휴직이 가능하다. 제27조 (휴직기간)에는 근속연수 7년 이상일 경우 처음으로 2년 휴직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근속연수 7년 미만일 경우 1년 연장이 가능하며 각각 1회씩 연장이 가능하다고 적혀있는데도 말이다.
A 부장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한 여직원이 있었다. 삼성화재 서비스에서 근무하던 이 여직원은 인터뷰를 했을 당시에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된 상황이었다. 그 누가 보기에도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었다.
2018년 8월 4일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이다. A 부장과 같이 삼성화재의 감사를 받은 후 우울증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사가 빠진 놈처럼 감정적으로 취재했고 기자가 지켜야 할 객관성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 기사의 문장 하나하나가 주관이었고 감정적이었으며 팩트를 기반으로 상대방의 인간성을 깎아내리려 안간힘을 썼다.
내가 희열을 느끼면서도 분노가 치밀었던 이유는 삼성 관계자의 요구였다. 그는 데스크 마냥 나에게 기사 수정을 요구했고 "살려주세요", "한 번만 봐달라"는 등의 부탁을 했다. 사실상 삼성 측이 아플만한 부분을 빼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다음과 같은 연락이 왔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내 기자질 인생 중에서 가장 분노했던 경험 중 하나였다. 난 정의의 사도도 공정하거나 바른 사람도 아니다. 다만 주관적 옳음과 그름의 선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연휴가 끝나고 이제 내일이면 또 출근을 하기 시작한다. 또 새로운 '킬'과 '딜'을 해대는 벌레들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그들이 싫지만 어쩌겠나....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