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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 Dec 29. 2022

<이른 나이에 이른 '기레기'> Essential

보통의 행복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극복기 두 번째     

백종우 경희대병원 교수님께 치료받기 시작한 지도 2년이 되어간다. 정말 많이 좋아졌다. 70% 가까이 치료된 것 같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다. 엊그제인 27일 종로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5년 전부터 여러 사건을 같이 취재해온 JTBC 탐사팀 광일이형에게 취재 비하인드와 개인적 후회, 죄책감 등을 토로할 때가 많았지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처음 꺼냈다. 선배는 낯간지럽다며 갈 때가 됐냐고 하시더라.      


백 교수님에게선 살아간다는 의미와 가치관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이 먼저라는 의미를 정확히 아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평생을 모를 수도 있다. 가치 선정에 따라 갈리겠지만 물질적 가치보다는 존재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     


그 이후의 말씀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산삼주에 소맥 섞어 마셔서 필름 다 나감) 백 교수님의 저 한마디에 정말 많이 공감했다. 동전의 앞뒤가 다르듯 인간의 생각과 사고방식은 정말 한 끗 차이다. 바라보는 시선과 기준을 달리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 것들도 나에게 다른 방향의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광일이형은 나에게 두 달 전 이태원 참사를 취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슷한 경험을 했고 트라우마 증세가 더욱 심해질까 걱정되셨다고 한다. 3주 정도는 그랬다. 다시 과거로 회귀한 것처럼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고 백 교수님과도 제대로 된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백 교수님은 “예전 같으면 몇 달이 걸렸을 거다. 지금은 네가 극복하는 방법과 지옥에 자신을 빠트리는 행위가 타인에게 행복을 전달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에 나아질 수 있었던 거다. 이제는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언행이 무엇인지 찾으면 된다. 농담이지만 예시로 담배와 술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백 교수님은 원래 기자를 해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극단적 상황의 최전선에서 느끼는 감정은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 망가질 수도 있고 성장할 수도 있는 모순이 교차하는 혼란의 영역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나보다는 여러분들이 더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거다.”     


교수님께 “많이 지치실 때도 있지 않으시냐”고 여쭤봤더니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힘든 건 기준을 달리하면 되는 거다. 지칠 수 있겠지만 오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순간의 의미와 행복을 경계하고 회피하는 나도 어느 순간 그 말을 들었을 때 알았다. 나도 이미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자리가 끝나고 술이 깨어가던 다음날 교수님께서 드디어 페이스북 친구를 받아주셨다. “포기하지 않고 극복해주어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정말 큰 위로가 됐다. 2023년 1월 25일이 되면 내가 기자질을 한 지 7년이 되는 날이다. 솔직히 말해 5년은 지옥 그 자체였다. 그 덕에 감정도 무뎌지고 형식적 공감 방법도 알게 됐다. 나 자신의 방어 기제일 수도 있지만 건강해지는 방법은 알았다. 이제 어떻게 살면 될까? 너무 깊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괜찮음 그 자체가 행복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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