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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 Feb 01. 2023

<이른 나이에 이른 '기레기'>Turmoil

잘못된 판단... 난 아직 성장해야 할 때

2023년 1월 25일은 내가 기자가 된 지 7년이 되는 날이었다. 곧 30살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연차가 쌓인 특이 케이스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고요하고 조용했던 달이었다. 매해 연말 연초에는 징크스와 더불어 폭풍 같은 이슈가 휘몰아치면서 죄책감 속에 빠져 살았었다. 힐링의 기회였을까? 


아니다. 고요함은 오히려 나에게 불안함과 어색함을 선사해 줬다. 내가 아무런 취재도 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낯설기만 하다. 물론 해마다 특종을 쓸 수 없고 의미 있는 보도를 할 수 없다. 메이저 기자도 아닌 난 생각보다 많은 제보를 받지 않기에 내 발로 직접 뛰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건을 접촉해야 한다. 


요즘은 이른바 '아이템'이 없어 허무하고 의미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는 듣고 있지만 증거가 없어 한숨만 쉬는 게 일상이다. 그렇다 보니 술을 마시고 가끔은 우울감에 잠식될 때도 있다. 지난주가 그러했다. 날마다 약과 동시에 술을 연달아 마시면서 잠들고 일어나면 내일은 다르겠지라는 희망을 가졌으나 '역시나'였다. 


그러던 중 소중한 사람이 같이 전시회에 가자고 제안했다. 평소 취재와 기사 작성 등이 내 일상이었던 터라 최근에는 책 읽기를 제외하면 문화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예술 관련 전시회는 약 5~6년 전 '프레스' 개목걸이를 차고 몇 번 다녀왔던 게 전부다. 


지난주에 찾았던 전시회는 을지로에 위치한 한 백화점에서 열린 '모네 인사이드'였다. 약 1시간가량의 영상 중 모네가 빛과 물에 광적으로 집착한 모습과 세상을 떠난 아내의 시신을 보며 그림을 그린 이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일반이라는 평균적 생각과 판단이 아님을 뒤늦게 자각하는 모습이 공감됐기 때문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은 전시회였다. 감히 '문화생활'을 만끽하려 할 수 없는 전시회였다. 즐거움보다는 정말 큰 위로를 받았다. 전시회를 찾은 시민들은 영상이 끝난 후 사진을 찍고 나가기 바빴다. 그저 사진 찍기에 그친 걸까? 인상파의 대가가 살아간 삶이 극적이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의 광적 여유가 담겨 있다는 걸 이해하려 했을까? 


두 아내와 아들을 잃고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여러 그림들을 보면서 난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더라 사실 이상한지도 모르겠다. 웃음이 아닌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저 그림은 아름답고 풍요로워 보이나 실체는 그렇지 않다. 그리움과 극적 감정이 담겨 있다. 모네는 자신의 극단적 상황이라는 감정을 대조해 그림으로 승화시킨 예술가다. 어떻게 해야만 저럴 수 있을까?" 정말 감탄을 자아내면서 모네 인사이드 감상을 마친 내 결론이다.   


굉장히 큰 위로를 받은 날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혼란이 찾아왔다. 지난달 31일 한 인물에게 연락이 왔다. 미스맥심 모델 출신 엄상미씨다. 엄씨는 황하나·바티칸 킹덤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2021년 황하나 마약 사건 단독 보도 당시와 이후에도 난 그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화류계와 강남 바닥에서는 바티칸 킹덤 이모씨의 사건에 연루된 모델이 누구인지 대부분 아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엄씨가 지난달 출소 후 다시 SNS를 시작하면서 그 사건의 인물이 본인이라는 듯한 게시물을 여럿 올렸다. 왜 그런 자충수를 두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과거인 2020년 말 사건 보도 이전 내가 속한 취재팀은 엄씨가 바티칸에게 뒤통수를 맞은 피해자라고 판단했다. 우릴 속일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가 명확하게 마약을 투약했다는 물적 증거가 없었다. 엇갈리는 진술과 정황만 존재할 뿐 100% 마약을 투약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마약 사건에서의 불확실성은 상당하기에 공판 과정을 지켜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만큼 수사기관의 수사가 이뤄지기 전부터 마약 투약에 대해 확신을 갖고 기사를 쓰는 것은 위험한 시도다. 검찰과 경찰이 피의자를 압박해 진술을 받아내거나 강요하면서 벌어지는 무리한 송치·기소 케이스 사건도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잘못된 판단에 갇힌 나와 취재팀은 황하나 사건에 연루된 제보자와 피해자 여러 명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죄책감 아닌 죄책감에 찌들어 살았다. 엄씨에게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본인을 집어삼킬 것이다. 우울함에 잠식되는 본인을 내버려 두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도와주지 않으면 또 하나의 취재원을 잃을 것 같다는 불안감과 나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가 악화될 것 같다는 우려가 공존했다. 


얼마 전 우릴 속여서 죄송하다는 연락이 왔고 본인의 죄를 감추기에 급급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사실상 우리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리 고생할 이유도 도와줄 필요도 없었던 것이었다. 


이젠 그냥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템이 필요했고 당시 취재하던 과정에서 우리의 또 다른 실수는 없었는지 검증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제까지는 열이 뻗쳐 잠을 제대로 청하지도 못했는데 생각을 전환하고 나니 한편으론 속이 시원하다. 모든 인간은 악랄하다는 내 결론은 같았고 대부분의 의혹은 해소할 수 있게 됐기에. 단순하게 보면 욕망의 컨트롤 차이가 괴물인지 아닌지로 나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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